고물가 대책, 첫 시험대 오를 듯
이에 따라 기시다 내각은 향후 주요 선거가 하나도 없는 이른바 ‘황금 3년’을 거머쥐게 됐다. 오는 2025년 여름 열리는 차기 참의원 선거까지는 기시다 총리 본인의 신념 하에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금까지 당내 기반이 탄탄하지 않을뿐더러 아베 전 총리의 입김으로 인해 본인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산케이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참의원 선거 승리에 힘입어 국정 운영에서 정책 추진이나 인사 주도권을 잡기가 수월해졌다”고 평했다. 과거 굵직한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둘 때마다 아베 내각의 파워가 세졌듯, 기시다 내각도 이번 선거 승리를 통해 힘을 얻게 됐다는 설명이다.
기우치 노보에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의 예상을 깬 자민당의 압도적인 승리는 정치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을 올려, 금융시장에서 주가 강세, 엔화 약세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시다 총리의 색깔을 볼 수 있는 첫 시험대는 고물가 대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저물가에 시달렸던 일본이 고물가라는 새로운 경제 환경에 직면한 만큼, 기시다 내각이 이를 헤쳐 나가는 방법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주요 중앙은행들이 긴축으로 통화정책을 선회한 가운데 유일하게 '비둘기'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이 변화할 것인지도 시장의 관심사다. 기시다 총리는 내년 4월 임기가 끝나는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를 대신할 신임 총재를 결정해야 한다. 기시다 내각이 초금융완화주의자를 새 총재로 지명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보는 시각도 나온다.
방위비 증액 역시 관심사다. 자민당은 향후 5년 이내에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는 기존 방위비의 두 배에 달하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여지가 있다. 기우치 이코노미스트는 “방위비 증액의 규모를 억제하거나 재원을 확보하는 등 재정건전성에 중점을 둘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외신은 아베 전 총리가 설계한 ‘강력한(assertive) 일본’ 노선이 지속될 것인지에도 주목했다. 일본 우익의 주축이던 아베 전 총리는 대중국 견제 노선을 취하며 미국 주도의 서방 외교·안보 정책의 중추 역할을 했다. 쿼드의 씨앗을 뿌리고,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꿈을 키웠으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아베 전 총리는 최근까지도 국방비 증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일본이 미국의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시다 정책, 뼈대 없다…졸속 우려도
기시다 총리는 소득재분배 강화와 금융소득세 인상의 필요성을 밝히는 등 ‘신자본주의’를 강조한다.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 신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선봉장인 아베노믹스를 거스르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기시다 총리는 최근 “금융소득세 개편을 당분간 생각하지 않겠다”며 뒤로 물러서는 움직임을 보였다. ‘상왕’으로 통하는 아베 전 총리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현재, 신자본주의 추진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기시다 표' 경제정책을 추진하기에는 정책이 설익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궤도를 수정하기에 앞서 정책을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 보수 성향 온라인매체인 겐다이비즈니스는 “‘신자본주의’나 ‘분배중시’는 말만 거창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기시다 내각의 주요 정책인 스타트업 활성화의 경우 ‘육성 5개년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7월 초 기하라 세이지 관방부 부장관이 “스타트업 담당 각료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초안조차 나오지 않았다.
기우치 이코노미스트는 “뼈대로 내세운 신자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기시다 내각은 살을 붙이는 등 정책을 다듬어야 한다”며 “(정책을) 졸속으로 추경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아베파’의 움직임도 주요 변수다. 자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아베파가 기시다 총리를 중심으로 결집할지, 아니면 제2의 아베가 나올지, 파벌이 무너질지 등 아직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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