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가 이종욱 조달청장을 만나 공공조달 시장의 규제를 개선해 달라고 촉구했다. 공공조달 시장은 전체 참여기업의 97%가 중소기업이며, 지난해 전체 공공조달 금액 중 77%인 119조원을 중소기업이 납품할 정도로 중소기업 비중이 크다. 하지만 불합리한 관행 등으로 인해 중소기업계가 납품 손실을 떠안는 등 피해가 잇따르면서 개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기중앙회 찾은 조달청장··· 중소기업계 애로 청취
중소기업중앙회는 12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조달청장 초청 중소기업인 간담회’를 열고 공공조달 관련 중소기업계의 애로 사항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을 비롯해 배조웅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 등 업종별 중소기업 대표들이 참석했다.
조달청에서는 이 청장을 비롯해 구매사업국장, 구매총괄과장 등이 함께 참석했다. 이 청장은 지난 5월 취임 후 첫 행보로 중기중앙회를 방문한 데 이어 이날 두 번째로 중앙회를 찾았다. 중소기업 현장 애로를 청취하고 개선방안을 논의한다는 취지다.
저가 계약 관행에 과다 경쟁··· 적자 가격 납품 빈번
간담회에 참석한 중소기업들은 조달계약 단가 산정 기준을 개선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조달은 중소기업의 판로 지원을 목적으로 하지만, 참여기업의 과다 경쟁 및 최저가를 유도하는 제도로 인해 중소기업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조달 규정에 명시된 최고 우대 가격 조항 때문에 발생한다. 조달청은 가장 좋은 가격을 선택한다는 취지에서 이 같은 조항을 두고 있지만, 중소기업계에서는 사실상 시장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정부에 납품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에 따라 조달 가격이 최저 수준 마진으로 책정되거나 적자 가격으로 납품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중기중앙회의 지난 5월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8.2%가 공공조달 입찰 시 손해를 보면서도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KBIZ중소기업연구소는 공공조달 시장에서 저가 계약 관행으로 인해 발행하는 기업 손실을 연평균 13조20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반월패션칼라사업협동조합 측은 지나친 가격 경쟁으로 왜곡된 조달계약단가를 객관적이고 적정한 수준으로 완화해 달라고 조달청에 요청했다. 정부가 인정하는 기관 등의 표준원가 산출을 통해 적정 원가 수준을 설정한 후 조달청과 가격을 협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도 가격 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호소했다. 특히 조합 측은 MAS 2단계 경쟁제도로 인해 이윤을 포기하고 적자 납품을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제도는 공공구매기관이 MAS 계약으로 일정금액(일반 제품 5000만원, 경쟁제품 1억원) 이상 구매 시 의무적으로 2단계 경쟁을 시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홍성규 조합 이사장은 “MAS 제도로 인해 저가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일반제품은 하한율이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며 “납품 실적이 있어야 다음에도 납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납품 가격이 마음에 안 들어도 손해를 보면서 납품하는 현실이다. 제값 받고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조합 측은 MAS 2단계 경쟁 적용 기준 금액을 일반 제품의 경우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경쟁제품의 경우 현행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반제품 하한율 기준을 90%로 신설하고 경쟁제품은 현행 90%에서 95%로 상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가 오르는데 단가도 조정해야”··· 납품단가 연동제 촉구
최근 물가상승에 따라 계약단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건의도 잇따랐다. 코로나19 및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 가격과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제조원가가 급증한 점을 반영해, 입법화 논의 중인 납품단가 연동제를 정부 계약에도 적용해 달라는 요청이다.
특히 한국기계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MAS 계약단가 신속 조정을 주문했다. 연합회 측은 MAS 계약 기간인 3년 동안 납품가격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제조 원가 인상분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계의 이러한 목소리를 반영해 이미 조달청에서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계약금액 조정제도 지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규격‧모양 차이만 있는 유사 품목들의 개별 원가계산서를 요구해 서류 비용 부담이 과다하고, 신청부터 조정까지 기간이 오래 걸려 적자 납품이 누적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 중기중앙회의 지난 5월 조사에 따르면 MAS 계약단가 인상 조정을 요청한 기업 중 47.9%는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조정이 이뤄지더라도 과반수가 3개월 미만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연합회는 원가계산방법 현실화 등을 통해 신청‧검토 기간을 줄이고, 현재 조정 신청‧검토 중인 품목에 대해 조속히 단가를 인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물가 변동 반영, 규격 변경 등 수정계약이 용이하도록 MAS 계약기간을 현 3년에서 1~2년으로 조정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달청 “일부 건의 당장 개선 어려워… 대안 찾겠다”
조달청은 중소기업의 건의에 대부분 공감하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MAS 2단계 경쟁 금액 기준 및 가격 제안 하한율 상향이나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관련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응걸 조달청 구매사업국장은 “현재 논의되는 납품단가연동제는 하도급법이기 때문에 국가계약법 적용대상이 아니다”라며 “기업 입장에서 가격이 많이 오를 때 계약금액을 상승시키는 것에는 동의하겠지만 내려가는 시점에서도 자동 조정하는 것을 원치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개별 품목별로 검토해 적절한 대안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이 청장은 “MAS 계약 기간 탄력 적용은 기준을 정해놓고 개별 품목의 특수성에 맞춰 적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MAS 하한율 상향은 기재부나 수요부처 예산 부담 등도 고려해야 하므로 이 자리에서 결론은 어렵지만, 물가 인상 등을 감안해 금액 기준 등을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답했다.
이 청장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 글로벌 공급망 대란, 인플레이션 심화 등 여러 사태로 인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며 “이번 간담회에서 제기된 중소기업의 애로사항 및 정책제언은 조달업무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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