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의 토끼가 있다. 한 마리는 물가고, 다른 한 마리는 경기다. 둘 다 잡을 수 없다. 2022년 경제는 물가를 잡기 위해, 빅스텝과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며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경기침체를 용인하더라도 물가를 우선 잡기 위한 행보다. 물가를 잡을 수 있을지도 고민이지만, 놓쳐버린 경기는 언제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커져가고 있다. 이른바 금리의 역습이 시작되었고 경기는 예보되다시피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세계 경제가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이른바 ‘R의 공포’가 시작되었다. 통상적으로 장기금리와 단기금리의 격차가 좁혀지거나 역전되면 경기침체(Recession)의 전조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2022년 들어 이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2021년 중반부터 미국 10년물 국채금리와 2년물 국채금리의 격차가 좁혀져 왔다. 통화정책 기조가 긴축적으로 빠르게 전환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2022년 들어, 장단기 금리 차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7월에는 7일 연속 역전되는 일이 일어났다.
세계 주요국들의 경기침체가 이미 시작되었다. OECD 경기선행지수가 100을 밑돌아 하락하고 있는 현상은 향후 경제가 더 좋지 않을 것을 예고해 준다. 2022년 7월의 경제 성적표, 즉 실업률, 소매판매, 무역수지, 경제성장률 등의 경기지표는 8월이 되어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체감적으로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초인플레이션은 이른바 스티커 쇼크(sticker shock)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고물가로 오른 상품 가격표를 소비자가 보고 놀라 소비가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기대 이상의 비싼 가격으로 소비자가 받는 충격을 일컫는 말이다. 제품 가격표(스티커)를 본 소비자들이 충격(쇼크)을 받을 정도로 물가가 올라 소비가 침체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산 가치마저 급락하면서 소비심리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고, 기업들의 투자심리도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레버리징(Leveraging) 시대에서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레버리징은 부채를 발생시키는 것을, 반대로 디레버리징은 부채를 축소하는 것을 뜻한다. ‘영끌에서 투자’하던 시대는 끝났다.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대출해서 투자하려는 생각은 상상하기도 어려워지고 저축성향은 강해지고 있다. 저축은 곧 현재 소비를 줄임을 뜻하는 바 소비위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2022년 하반기 들어 부상하기 시작한 리스크 요인이 디레버리징 심화다. 금리 인상기에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위험관리에 나서면서, 신규대출을 보수적으로 제공하거나 대출금리를 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곧 원리금 상환부담을 가중시켜, 가계는 소비를 기업은 투자를 줄이는 내수침체로 연결된다.
볼커 시대 재현되나?
41년 만의 최고치인 9.1%라는 미국의 6월 물가상승률은 세계경제를 긴장감 그 자체로 내몰고 있다. 초인플레이션 현상 그 자체도 그렇지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중앙은행의 긴축행보가 더욱 세계경제를 긴장하게 만든다. 미국 연준은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 행보에 이어 7월 26~27일간 열리는 FOMC에서 울트라스텝(기준금리 1.0%p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
제3차 오일쇼크 시대를 재현하는 것인가? 하는 우려가 가득하다. 1970년대 당시 미국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그 자체였다. 당시 베트남 전쟁으로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돈을 많이 찍어냈고,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쇼크가 찾아왔다. 1971년 8월 닉슨 대통령은 오히려 경기부양을 우선시 하며 금본위제까지 폐기했고, 달러와 금의 연결성이 끊어지며 달러가 엄청나게 추가 발행되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은 더욱 가중되었고, 오일쇼크(석유파동)까지 찾아왔다. 1973년 원유는 1년 만에 4배나 올랐고, 초인플레이션을 야기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같이 찾아온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경기부양에 초점을 둔 미국경제는 악순환의 늪에 빠졌던 것이다.
영웅이 등장했다. 1979년 8월 볼커 시대가 시작되었다. 폴 볼커(Paul Volcker, 1927~2019년)는 경제사적으로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라고 평가받는 전 연준 의장(1979~1987년)이다. 물가와 경기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만 잡겠다는 의지로 하이퍼스텝(기준금리 4%p 인상) 조치를 단행했다. 1981년 미국 기준금리는 21.5%까지 인상되었다.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부채에 허덕이는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연준 건물을 봉쇄하며 시위하기도 했다. 엄청난 소동들이 벌어졌고 연일 위협에 시달렸지만, 볼커는 권총을 몸에 지니며 재직해야 할 정도였다. 그는 굴하지 않고, 14%의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경기후퇴를 용인해야 하는 결정이었다. 1980년대 미국은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에 내몰리고,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경기가 급격히 침체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중에 풀렸던 유동성이 회수되기 시작했고, 1982년 4%, 1983년 2%대로 물가상승률이 떨어졌다. 물론, 경제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물가를 우선 잡지 않으면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물가를 우선 잡고, 다시 경기를 부양시키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후 미국 경제는 안정을 찾았다.
이른바 볼커 시대의 귀환이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다. 물가를 우선 잡는 것이 필요한 상황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2022년 하반기와 2023년은 경제적으로 고통의 시간이 올 것이다. 긴축의 시대, 객관적으로 세계경제의 흐름을 판단하고, 고통의 시간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글로벌 리세션의 시대 취해야 할 전략
정부의 대응책은 매우 중대하다. 어제 수립했던 계획으로 내일을 살아가면 안 된다. 아무리 좋은 공약도 늘 좋을 순 없다. 경제상황에 맞게 유연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글로벌 리세션에 대한 우려조차 없었던 어제 세운 계획이 그 우려가 현실화한 지금에도 유지되면 안 된다. 이제 경기침체기에 맞는 대응책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 특히, 경제주체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이나, 무분별한 확장적 사업을 유도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렇다고 위기 상황에 내몰리고, 삶의 질이 실추되고 있는 취약계층을 보살피는 일에는 게을리함이 없어야 한다. 세계 주요국들의 역동성이 줄어들고, 신흥국들의 위기 가능성이 고조되는 위험한 경제이기 때문에 안전하고 보수적인 방향으로 나라 살림살이를 지휘해야 한다.
기업도 긴축전략(tightening strategy)으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소비규모가 수축되는 경제구간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과도한 부채에 의존해 확장적인 사업을 추진할 경우 그 충격이 클 수 있다. 성장성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캐시 카우(cash cow)에 집중하는 사업방향을 취해야 할 것이다. 경기침체의 바닥을 형성하는 구간이 찾아왔을 때, 그때 역동적으로 유망·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라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가계는 주요국의 통화정책 기조를 예의주시하고, 이로 인해 야기되는 자산시장의 영향을 그려야 한다. 하루 종일 주식차트만 보면, 그 주가가 올라갈지 떨어질지 이야기 해주는가? 일희일비하는 투자 방식이 아니라, 시대를 규명해야 한다. 긴축적 통화정책 행보가 지속되고,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는 구간을 맞이하고 있다. 2022년 하반기 경제를 전망하고, 주요 변수들을 진단하며 대응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 일희일비하면 지고, 시대를 규명하면 이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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