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는 왜 '법과 원칙' 적용이 어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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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 기자
입력 2022-07-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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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 3조-4조 충돌...'통치행위'의 적법성 여부도 논란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올바른 북한인권법을 위한 시민모임(올인모) 관계자들이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탈북어민 강제북송 책임자 처벌 및 북 인권재단 설립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이하 남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이 1991년 채택하고 1992년 발효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르면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다.

특수관계라는 단어에는 서로가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뜻이 담겼다. 기본합의서 본문 25개 조항은 크게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협력 등 3개 범주로 구성돼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각자 알아서 잘 살고, 가능하면 사이좋게 지내자'다.

남북기본합의서는 구체적 이행방법을 갖추지 못했다는 한계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평화통일 지향 원칙'을 양측 총리의 서명이 날인된 문서로 확인한 의미있는 협정이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역대 정부 대북 정책의 중요한 기준점으로 평가받는다.

◆'북한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법원...규범과 현실의 부조화

남북의 특수관계는 현행 헌법에서도 발견된다. 헌법 3조(영토조항)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인 한반도 북부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이자 반란단체다. 북한의 존재를 용인하는 것 자체가 위헌인 셈이다.

반면 헌법 4조(통일조항)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한다. 3조가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4조는 평화통일의 대상으로 그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 또 헌법 3조는 국적법이나 국가보안법의 근거조항이며, 4조는 남북관계발전법, 남북교류협력법 등의 근거조항이다.

대법원 판례는 영토조항과 관련해 북한의 법적 지위에 대해 어떠한 통치권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996년 대법원 판결은 북한 공민증을 지닌 북한주민도 영토조항에 근거해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판시했다. 이는 최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북어민 북송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주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동시에 대법원은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이 충돌할 경우 죄형법정주의원칙에 입각해 예외적으로 피의자에게 유리한 법 적용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영토조항(3조)에 기초해 북한을 '반국가단체'이자 평화통일(4조)을 근거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라는 이중적 지위로 해석하고 있다.
 

통일부는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지난 12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사진은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는 모습. [사진=통일부]

◆남북대화는 '통치행위' vs 법원 "과정은 심사 가능"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하는 행정부는 사법부와 달리 북한의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남북 간 다양한 합의서가 채택됐고, 남북정상회담도 수차례 성사됐다. 1990년대 남북이 국제연합(UN)에 동시 가입하면서 이미 남한은 북한을 암묵적으로 국가로 승인했다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정부의 남북 대화 노력은 법의 영역이 아닌 '통치행위' 영역에 속하게 된다. 통치행위는 행정부의 수반이 행하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 사법심사 대상으로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판결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그 집행이 곤란한 행위를 뜻한다.

과거 박근혜 정부의 황교안 국무총리는 2016년 당시 '개성공단 폐쇄'가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야당의 지적에 "박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라며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변한 바 있다. 

영국에서도 '국왕은 불법을 행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통치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이나 독일 등도 '사법부의 자제(심사 회피)'로 통치행위 효력을 인정한다. 우리 사법부도 2003년 '대북송금' 사건 등에서 통치행위 개념을 인정했다.

대북송금 사건은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4억달러를 지원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했다는 의혹이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노무현 정부에 특검을 강하게 요구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내 동교동계의 반발에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이를 수용했다.

특검 결과 외국환거래법 위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 확정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 박지원 전 비서실장(문재인 정부 국가정보원장) 등 대북송금관련자 전원에 유죄가 선고됐다.

대법원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자체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닌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도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북송금 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판결했다.

◆남북관계 바라보는 진보와 보수 차이점

즉 대법원의 판결은 남북 대화는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위가 현행법을 위반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한 여의도 관계자는 "헤엄은 칠 수 있지만, 손발을 움직이는 것은 들키지 말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역대 모든 정부가 북한과 소통에 나섰지만, 유독 진보 정부에서 잡음이 많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러한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진보 정부는 보수 정부의 '남북 대화 통치행위'를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일을 사법심사로 끌고 가진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육군 소장 출신이자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남북대화 분야에서 활약하며 '남북기본합의서' 등을 이끌어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중용했다.

임 전 장관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총괄했다. 또 과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접촉 시도에 대해 진보 진영은 딱히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보수 진영은 입장이 다르다. 김형동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21일 논평에서 "파도 파도 끝이 없는 '탈북어민 강제 북송' 의혹, 국민은 진실을 원하고 계신다"며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인권'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위해 진실 규명에 나설 것을 국민께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남북 관계도 인권이라는 보편적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이를 '신북풍'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임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사실 딱히 관심도 없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내세워 정국을 들쑤신다는 시선이 강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6·25미제반대투쟁의 날에 즈음하여 24일 근로단체들에서 복수결의모임을 진행했다"고 6월 27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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