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미술 작품은 만든 이의 철학, 사유, 경험, 존재 이유 등 삶의 뼈대가 응축되고 세계의 질서가 추상화된 결정체입니다. 내가 이들을 마주할 용기만 발휘한다면, 이들은 기꺼이 나의 감정을, 욕망을, 결핍을 왜곡하지 않는 거울이 되어 줍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지난 20일 발행된 신간 ‘인생, 예술’(을유문화사)에서 예술 에세이를 쓴 이유를 적었다.
많은 것이 담겨 있는 현대 예술은 삶의 굽이굽이마다 변하는 나를 비추는 소중한 거울이다.
‘인생, 예술’은 2020년부터 2022년 여름까지 지난 2년 반 동안 ‘하퍼스 바자’에 연재한 아트 에세이에서 출발했다. 매체의 지면 한계로 미처 내비치지 못한 속내들, 기사를 마감한 후에 더해진 생각과 바뀐 마음들, 그사이에 탄생한 예술가의 신작이나 새로운 전시 소식 등을 더했다.
2022년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지는 전시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부터 2012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서도호의 ‘틈새 호텔’까지 저자의 예술 경험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년 넘게 문화 예술의 현장에서 일해 온 저자의 ‘거울’은 다양하다. 이 책에서는 한국은 물론 덴마크·미국·브라질·스위스·알바니아·영국·이집트·인도·프랑스 등 여러 국가의 예술가들이 소개되고, 회화·영상·사진·설치·개념·조각·그래픽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
28명의 현대 예술가와 그 대표작들에 대한 지은이의 사적인 경험이 ‘감정, 관계, 일, 여성, 일상’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은이는 프롤로그에서 “이 키워드들이 현재 나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다”라며 “각각의 이야기 안에는 허우적거리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헤매고 싸우고 갈등하고 의심하고 냉소하고 좌절하고, 가끔은 환희에 찬 내가 존재한다. 에세이라는 형식이 아니었다면 내보이지 못했을 고백들이 담겨 있다”라고 털어놨다.
저자는 예술 에세이를 통해 더 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자신의 인생과 마주하기를 바랐다.
윤 이사는 이 책에 대해 “직업 특성상 작품들이 세상에 보이는 그 경계 가까이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자의 열린 시선에 더 가깝다”며, “현대 미술의 복합적인 난해함에 떠밀려서 어렵게 펼친 시선과 감성, 그리고 사유의 장을 황급히 닫아 버리고 싶지 않았던 노력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어떤 이유로든 관람객과 독자들이 미술 생태계에서 소외되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는 이 책이 작품 앞에서 밀려드는 막막함과 막연함을 독자만의 감성과 해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지도 정도로 쓰이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그는 LP로 음악을 듣기 위해 해야 하는 과정들이 ‘음악을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처럼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한 모든 과정이 ‘미술을 경험한다’는 느낌을 선사한다고 적었다. 이 책은 미술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꼭 필요하고 든든한 작은 손전등이다.
저자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매우 중요한 5개의 키워드는 책에 쉽게 빠져들게 한다.
예컨대 ‘Ⅰ. 감정’에서는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통해 두려움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업 세계에서 인간의 불완전함과 불안을, 장-미셸 오토니엘의 전시를 통해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의 색다른 정의를 생각하게 한다.
유명한 예술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나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라는 글에서는 세계적 예술가인 양혜규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양혜규 작가는 2004년 선보인 ‘창고 피스(Storage Piece)’를 통해 당면한 현실을 작품으로 만들다. 둘 데도, 찾는 이도 없어 폐기 처분 직전의 작업들을 포장 상태로 그대로 모아 항공용 나무 팔레트 위에 쌓아 두는 시도를 했다.
지은이는 책 속에서 “‘창고 피스’만큼 사적인 계기와 뼈아픈 상황을 직설적으로 고백하는 작품은 드물다”라며 “이 작업을 구성하는 가장 주요한 요소는 ‘내게 작품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는 명백한 현실이기 때문이다”라고 짚었다. 용기 있는 결정으로 세상에 나온 ‘창고 피스’는 이후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했다.
‘Ⅱ. 관계’에서는 우고 론디노네 전시를 통해 자연과 우주와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야기하고, 안리 살라의 작품을 통해서는 전쟁과 이에 대한 인류의 태도를 다룬다.
'Ⅲ. 일’에서는 함경아의 작업을 소개하며 통제할 수 없는 일의 수많은 변수를, 유영국의 생애와 철학을 통해 끝까지 성실하게 일하는 마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술에서 인생을 인생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다. ‘Ⅳ. 여성’에서는 루이즈 부르주아, 한국 추상 회화를 이끈 최욱경과 같은 여성 작가가 등장한다. 그들을 통해서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불가사의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고통과, 상처 그리고 회복에 대해, 자기 세계를 꿋꿋하게 구축하는 자세에 대해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Ⅴ. 일상’에서는 줄리언 오피의 작품을 통해 코로나 시대에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을, 박진아의 회화에서 몰두하는 사람들의 작고 소중한 순간을, 구본창의 달항아리 작품으로 사소한 선택들이 가져다주는 희망을 포착한다.
윤 작가는 20년 넘게 문화예술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며 동시대 예술 거장들의 삶과 철학을 전달해 온 에디터다. ‘필름 2.0’의 창간 구성원으로 에디터 생활을 시작한 후, ‘하퍼스 바자’와 ‘보그’에서 피처 디렉터로 오랜 세월 활동했다.
패션과 예술의 공존을 조명하는 ‘바자 아트’를 창간했으며, 저서로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2020), 공저로 ‘김중업 서산부인과 의원: 근대를 뚫고 피어난 꽃’(2019)이 있다. 현재 국제갤러리 이사로 재직 중이며, ‘보그’, ‘하퍼스 바자’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지난 20일 발행된 신간 ‘인생, 예술’(을유문화사)에서 예술 에세이를 쓴 이유를 적었다.
많은 것이 담겨 있는 현대 예술은 삶의 굽이굽이마다 변하는 나를 비추는 소중한 거울이다.
‘인생, 예술’은 2020년부터 2022년 여름까지 지난 2년 반 동안 ‘하퍼스 바자’에 연재한 아트 에세이에서 출발했다. 매체의 지면 한계로 미처 내비치지 못한 속내들, 기사를 마감한 후에 더해진 생각과 바뀐 마음들, 그사이에 탄생한 예술가의 신작이나 새로운 전시 소식 등을 더했다.
20년 넘게 문화 예술의 현장에서 일해 온 저자의 ‘거울’은 다양하다. 이 책에서는 한국은 물론 덴마크·미국·브라질·스위스·알바니아·영국·이집트·인도·프랑스 등 여러 국가의 예술가들이 소개되고, 회화·영상·사진·설치·개념·조각·그래픽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
28명의 현대 예술가와 그 대표작들에 대한 지은이의 사적인 경험이 ‘감정, 관계, 일, 여성, 일상’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은이는 프롤로그에서 “이 키워드들이 현재 나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다”라며 “각각의 이야기 안에는 허우적거리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헤매고 싸우고 갈등하고 의심하고 냉소하고 좌절하고, 가끔은 환희에 찬 내가 존재한다. 에세이라는 형식이 아니었다면 내보이지 못했을 고백들이 담겨 있다”라고 털어놨다.
저자는 예술 에세이를 통해 더 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자신의 인생과 마주하기를 바랐다.
윤 이사는 이 책에 대해 “직업 특성상 작품들이 세상에 보이는 그 경계 가까이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자의 열린 시선에 더 가깝다”며, “현대 미술의 복합적인 난해함에 떠밀려서 어렵게 펼친 시선과 감성, 그리고 사유의 장을 황급히 닫아 버리고 싶지 않았던 노력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어떤 이유로든 관람객과 독자들이 미술 생태계에서 소외되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는 이 책이 작품 앞에서 밀려드는 막막함과 막연함을 독자만의 감성과 해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지도 정도로 쓰이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그는 LP로 음악을 듣기 위해 해야 하는 과정들이 ‘음악을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처럼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한 모든 과정이 ‘미술을 경험한다’는 느낌을 선사한다고 적었다. 이 책은 미술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꼭 필요하고 든든한 작은 손전등이다.
예컨대 ‘Ⅰ. 감정’에서는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통해 두려움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업 세계에서 인간의 불완전함과 불안을, 장-미셸 오토니엘의 전시를 통해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의 색다른 정의를 생각하게 한다.
유명한 예술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나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라는 글에서는 세계적 예술가인 양혜규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양혜규 작가는 2004년 선보인 ‘창고 피스(Storage Piece)’를 통해 당면한 현실을 작품으로 만들다. 둘 데도, 찾는 이도 없어 폐기 처분 직전의 작업들을 포장 상태로 그대로 모아 항공용 나무 팔레트 위에 쌓아 두는 시도를 했다.
지은이는 책 속에서 “‘창고 피스’만큼 사적인 계기와 뼈아픈 상황을 직설적으로 고백하는 작품은 드물다”라며 “이 작업을 구성하는 가장 주요한 요소는 ‘내게 작품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는 명백한 현실이기 때문이다”라고 짚었다. 용기 있는 결정으로 세상에 나온 ‘창고 피스’는 이후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했다.
‘Ⅱ. 관계’에서는 우고 론디노네 전시를 통해 자연과 우주와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야기하고, 안리 살라의 작품을 통해서는 전쟁과 이에 대한 인류의 태도를 다룬다.
'Ⅲ. 일’에서는 함경아의 작업을 소개하며 통제할 수 없는 일의 수많은 변수를, 유영국의 생애와 철학을 통해 끝까지 성실하게 일하는 마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술에서 인생을 인생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다. ‘Ⅳ. 여성’에서는 루이즈 부르주아, 한국 추상 회화를 이끈 최욱경과 같은 여성 작가가 등장한다. 그들을 통해서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불가사의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고통과, 상처 그리고 회복에 대해, 자기 세계를 꿋꿋하게 구축하는 자세에 대해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Ⅴ. 일상’에서는 줄리언 오피의 작품을 통해 코로나 시대에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을, 박진아의 회화에서 몰두하는 사람들의 작고 소중한 순간을, 구본창의 달항아리 작품으로 사소한 선택들이 가져다주는 희망을 포착한다.
윤 작가는 20년 넘게 문화예술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며 동시대 예술 거장들의 삶과 철학을 전달해 온 에디터다. ‘필름 2.0’의 창간 구성원으로 에디터 생활을 시작한 후, ‘하퍼스 바자’와 ‘보그’에서 피처 디렉터로 오랜 세월 활동했다.
패션과 예술의 공존을 조명하는 ‘바자 아트’를 창간했으며, 저서로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2020), 공저로 ‘김중업 서산부인과 의원: 근대를 뚫고 피어난 꽃’(2019)이 있다. 현재 국제갤러리 이사로 재직 중이며, ‘보그’, ‘하퍼스 바자’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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