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정치만 제대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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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7-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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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가기 위해 인천공항을 찾은 건 2년 8개월 만이다. 떠나는 날, 공항청사를 감싼 공기 속에서 모처럼 설렘과 긴장감을 느꼈다. 해외를 다니다보면 사소한 일로도 종종 감동 받는데, 이번 취재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카자흐스탄은 한반도 15배 크기, 세계에서 9번째로 넓다. 반면 인구는 1900만명에 불과하다. 시가지를 벗어나면 좀처럼 사람 구경하는 게 쉽지 않다. 소소한 감동은 해발 2750m 아시(Assy) 고원에서 찾아왔다. 알마티에서 아시 고원까지는 비포장 도로를 포함해 3시간 30분을 달려야 하는 먼 길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톈산 정상에서 BTS와 우리말을 만났다. 말로만 듣던 BTS 아미였다. 한국에서 왔다는 내게 그들은 서툰 우리말로 “BTS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수줍게 말했다. 10여 년 전, 중국 윈난성(雲南省) 소수민족 자치구에서 들었던 ‘강남스타일’만큼이나 놀라운 경험이었다. 함께 간 동료 교수 입에서 “정치만 잘하면 되는데”라는 한탄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해외에 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국뽕’에 취한 과잉 애국심일 수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있다는 방증이다. 이에 비해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와 문화에서 한국은 이미 세계 수준이다. 알마티 시가지를 뒤덮은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LG광고는 단적인 예다.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알마티 중심 아르바뜨에는 LG 거리가 있다. 또 시가지를 주행하는 자동차 절반은 현대기아차다.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렸던 침블락(Symbulak)산 스키슬로프에는 대형 삼성전자 애니콜 간판이 우뚝 솟아 있다. 이런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20년 전 잉카제국 수도, 페루 쿠스코에서도 동일한 경험을 했다. 해발 3400m 쿠스코를 누비는 대우 '티코'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고산증 때문에 숨이 막히는 그곳에서 연소되지 않는 배기가스를 뿜으며 달리는 '티코'는 작지만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경제력 규모 세계 11위, 군사력 세계 6위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이후 2년 연속 GDP기준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OECD와 G20 가입국이기도 하다. 유엔은 한국을 공식 선진국으로 선정했다. 문화의 힘은 더 이상 거론할 여지가 없다.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사상 처음으로 자막을 달고 작품상을 포함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미나리’, ‘오징어게임’까지 연거푸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한국을 알고, 방문하고, 국적을 취득하려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었다. 열풍이라는 말로도 충분치 않은 한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매년 새로운 단어를 업데이트한다. 지난해는 무려 한국어 26개를 등재했다. 대박, 언니, 오빠, 한류, 먹방, 치맥, 삼겹살, 김밥 등이다. 이 정도면 ‘국뽕’이라고 폄하할 일만은 아니다.

경제와 문화적 성취에 비하면 정치는 초라한 게 현실이다. 한국 정치는 표면적으로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념적 지형으로 구분하는 건 부질없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득권을 강화하고 탈환하기 위한 싸움을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지향하는 당론과 정책, 공약은 큰 틀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념적 경계선도 무너진 지 오래다. 진보진영에 속했던 인사들은 보수진영으로, 보수진영에서 활동했던 정치인들은 진보진영으로 넘어가는 판국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좋은 본보기다. 김종인 위원장은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을 넘나들며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 김한길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권교체에 힘을 보탰다. 이런 판국이니 여당과 야당이 정책과 이념으로 경쟁한다는 건 옹색하다. 이해관계와 기득권을 놓고 이합집산을 반복한다는 게 보다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진보정부라고 자처했던 문재인 정권은 5년 만에 단명했다. 국가 운영을 이념 편향적으로 몰아간 탓이다. 민주당은 도덕적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자신들이 하는 건 무조건 옳다는 무오류와 독선, ‘내로남불’로 5년을 보냈다. 인사정책은 물론이고 탈 원전, 소득주도 성장, 주 52시간, 부동산정책을 이념으로 색칠했다. 결과는 서민들 삶을 피폐하게 했다.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겠다며 정권을 잡은 국민의힘은 어떤가. 출범한 지 두 달된 정권 지지율은 32%(갤럽 7월 12일)로 추락했다. 역대 전례가 없다. 국민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주요 자리를 검찰공화국이라는 비난을 자초할 만큼 검찰 출신으로 채웠다. 비판 여론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이전 정부는 민변으로 도배하지 않았느냐”며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답변을 늘어놓았다. 또 능력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했지만 ‘서오남(서울대 출신 60대 남성)’ 편중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편향동화를 초래했다. 김건희씨 악재도 발목을 잡았다. 도어스테핑(즉문즉답)에서 윤 대통령은 “대통령을 처음 해봐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주라”고 답했는데 무책임했다.

야당은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실책을 반기는 모양새다. 거대 의석을 발판으로 발목잡기에 혈안 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정운영 동반자로서 협치는커녕 잘못되기를 비는 무당이나 다름없다는 비아냥이 흘러나온다. 실정을 불쏘시개 삼아 제2의 촛불을 꿈꾸는 것이라면 위험한 망상이다. ‘정치만 잘한다’면이라는 바람은 이래서 나온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서민들은 유가와 전기요금, 은행이자, 생필품 급등에 허덕이고 있다. 반면 주식시장과 원화가치는 폭락해 기업환경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여야가 힘을 합해도 어려운 판국이다. 오만한 여당, 발목 잡는 야당이라면 기대할 게 없다. 카자흐스탄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다시 한번 ‘국뽕’을 실감했다. 알마티를 떠나면서 고압적이고 번거로운 수속 절차 때문에 짜증났기에 인천공항 서비스는 한층 돋보였다. 첨단 시설과 물 흐르듯 신속한 입국 절차는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출국장을 나서면서 ‘정치만 잘하면 될 텐데’를 되뇌었다. 제발 정치만 제대로 해주길.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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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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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좋은 정치는 국민이 투표를 잘 해야 만들수 있는거죠.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정부하는 짓 보면 속상하고 황망하기 이를데 없지만, 결국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이니 1차 책임은 국민들에게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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