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대만 방문 후폭풍] 한국 전쟁 이후 최악 상황 "미ㆍ중 관계 회복 쉽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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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진 기자
입력 2022-08-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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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 향하는 보복 미국까지 번질 가능성

오른쪽 넷째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사진=UPI·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격화된 미·중 갈등이 '한국 전쟁 이후 최악' 수준으로 고조됐다. 중국 정부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되는 처사며 주권 침해라고 즉각 반발했다. 중국은 대만 포위 작전과 극초음속 미사일 공개 등 무력 대응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미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항공모함을 포함한 전함 4척을 배치하면서 양국 간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21세기 버전'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펠로시 의장 행보 속에서 악화한 미·중 관계가 이전과 같은 상태로 회복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권 거론하며 중국 아픈 곳 찌른 펠로시 의장
대만을 방문한 펠로시 의장은 거침 없는 언행과 행보를 보였다. 3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주요 외신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입법원 방문, 차이칭통 총통 예방, 중국 반체제 인사와 만난 것에 주목했다. 이 같은 일정은 모두 중국 정부를 격앙시킬 만한 여지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며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펠로시 의장이 입법기관을 방문하고 행정수반과 공식적으로 만난 것이다. 

게다가 펠로시 의장은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에 망설임이 없었다.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권과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펠로시 의장은 징메이 인권문화공원에서 톈안먼 학생지도자 등 중국 반체제 인사들과 면담까지 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비공개로 1989년 중국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학생 지도자였던 우얼카이시, 2015년 중국 공산당 비판 서적을 취급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납치돼 구금됐다 풀려난 홍콩 퉁뤄완 서점 점장 출신 람 윙키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국가 정권 전복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돼 5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지난 4월 만기 출소한 대만 출신 중국 인권운동가 리밍저도 참석했다. 

펠로시 의장이 중국 반체제 인사를 만나는 것은 단순한 만남 이상으로 의미를 지닌다. 펠로시 의장 본인이 중국 인권 상황 비판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87년 펠로시 의장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스시코 하원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고 2년 뒤인 1989년 중국 베이징 톈안먼 사태가 발발했다. 그로부터 2년 뒤 펠로시 의장은 베이징을 찾아 중국어와 영어로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펼쳐 제지당했다. 

이후에도 펠로시 의장은 중국 인권 문제를 끊임없이 문제 삼았다. 2007~2008년 티베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2017년 홍콩 민주화 시위 국면에서는 민주화 운동가들을 지지했다. 올해 2월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땐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위구르족(무슬림 소수 민족) 인권 탄압을 이유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 보이콧을 요구하기도 했다. 
군사적 충돌 없어도 미·중 이전 같은 관계 회복 쉽지 않을 것
중국 정부의 경제·군사 보복 행위는 아직까지 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미국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 CATL은 이번 달로 예정됐던 북미 투자 계획 발표를 9월이나 10월 이후로 보류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미·중 양국 간 회담도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전문가들은 미·중 관계가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아도 사실상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회복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낸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미·중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고 미국의 동맹국을 난처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니 글레이저 독일 마셜펀드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시기상조였다. 중국과 관계를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것을 미국이 깨닫게 될 것"이라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바이든 정부는 점점 더 레임덕에 빠져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가디언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 자체로 전쟁이 벌어지지는 않으나 미·중 갈등은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토드 홀 옥스퍼드대학교 차이나센터 교수는 "중국이 미국에 대해 과감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들을 취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주중 미국 대사를 지낸 로버트 데일리 우드로윌슨센터 키신저연구소장은 토드 홀 교수 진단에 동의하며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상황을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만에 대한 보복을 우려한 목소리도 많았다. 앨런 카슨 프리스턴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중국이 보복을 할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문제는 시진핑이 대만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 손에서 대만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조치를 취할 것인가"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만을 둘러싼 진짜 위기는 펠로시 의장이 떠난 후 시작된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번 방문의 부담이 결국 대만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대만을 군사·경제·외교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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