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들이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대신 외환보유고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도, 태국,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올해 들어 총 1150억 달러가 줄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 광폭 행보에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서, 이들 신흥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고에 쌓아둔 달러를 대거 판 영향이다.
올해 들어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9% 넘게, 태국 통화인 바트 가치는 8% 넘게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신흥국들이 자국 통화 가치 방어에 금리인상보다는 달러 매도 전략을 계속 취할 것으로 봤다. 이들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서 소폭의 금리인상에 나설 수는 있지만, 미국의 기준금리를 따라잡기 위해서 연속해서 빅스텝(50bp 인상, 1bp=0.01%포인트)이나 자이언트스텝(75bp 인상)을 밟을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는 “신흥국들은 상대적으로 느린 소폭의 금리인상을 통해 경제를 침체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고물가를 누를 수 있길 희망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실제 인도는 올해 기준금리를 단 90bp 인상했다. 반면 외환보유고는 620억 달러 가까이 줄었다. 인도중앙은행(RBA)은 조만간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연준이 올해 금리를 총 225bp 올린 점을 감안할 때 상승 폭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한국의 기준금리 역시 미국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신 한국은행 역시 외환보유고를 적극 활용해, 외환보유고가 250억 달러 가까이 줄었다. 태국의 외환보유고는 약 280억 달러 줄었다.
비슈누 바라탄 싱가포르 미즈호은행의 경제 및 전략 부문장은 “아시아 신흥국의 중앙은행들은 경쟁적인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통화 가치 하락과 수입 상품 가격 상승발(發)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통화 가치 하락은 수입 상품의 가격을 높여 인플레이션 상승을 야기하곤 한다.
추아 학빈 메이뱅크 투자은행의 이코노미스트는 “다수 아시아 중앙은행은 미국의 저금리 기간 외환보유고를 많이 쌓았다”며 “통화 안정성 유지는 작고 개방적인 경제에 대한 위협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노무라 홀딩스의 인도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소날 바르마는 “금리인상이 통화 방어에 항상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중앙은행들이 통화 가치 평가 절하를 일부 허용하면서 외환보유고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연말까지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신흥국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연준 강성 매파로 통하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연내 금리를 3.75~4%까지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토비아스 에이드리언 국제통화기금(IMF)의 통화 및 자본시장 부문장은 폴리티코에 “(연준의 인플레이션 억제 노력은) 매우 건전한 일부 신흥시장에도 일정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신흥국 자금 이탈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흥국의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마크 소벨 전 재무부 관료이자 ‘공식통화 및 금융기관 포럼’ 의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성장했다”며 “중국과 기타 신흥시장의 부상으로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역할이 다소 줄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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