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신탁운용의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가 사실상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되면서 수백억원의 손실이 전망된다. 특히 거래정지 직전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렸던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손실은 개미들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지난 4일 국내 유일의 러시아 ETF인 'KINDEX 러시아MSCI(합성)'에 장외파생상품(스와프) 계약 조기 종결 가능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이 ETF는 러시아 실물 주식을 담지 않고 스와프 계약을 통해 지수 성과를 추종하는데 계약 상대인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세계 최대 러시아 ETF 'iShares MSCI Russia ETF'(ERUS)를 청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투운용에 따르면 블랙록은 2023년 12월 말까지 러시아 자산 매각을 추진, 처분가격에 비례해 환급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러시아 금융당국이 외국인 투자자의 러시아 주식 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장기간에 걸쳐 현금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러시아 금융당국의 외국인 투자자 주식 매도 금지 조치가 해제되더라도 환급금은 미미한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ETF는 상장폐지될 때 순자산가치(iNAV)를 기준으로 환급금이 결정되는데 이날 현재 KINDEX 러시아 ETF의 iNAV는 502.11원에 불과하다. 또 블랙록은 처분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분배금을 보장하지 않고 청산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 한 푼도 돌려보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스와프 계약 상대방의 청산으로 합성형 ETF가 상장폐지 수순을 밟는 것은 처음 있는 사례"라며 "투자자 손실 규모는 계약 당사자인 한국투자신탁운용과 블랙록의 협상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상장폐지에 따른 손실의 대부분은 개미의 몫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로부터 3월 7일 거래정지 직전까지 이들 개인 투자자가 러시아 ETF를 대거 순매수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월 21일부터 3월 4일까지 10거래일 동안 개인은 러시아 ETF를 280억900만원어치 순매수했다. 183억3800만원어치를 사들이며 가장 많은 개인 매수세가 몰렸던 2월 25일 종가(1만9590원)에 매수해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의 경우 8월 현재 iNAV 기준으로 전액 환급을 받더라도 손실이 97.44%에 달하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개인들의 순매수세가 대거 유입되는 상황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대처가 신속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2021년 말부터 전쟁의 징후가 관측됐던 만큼 최소한 침공 직후에라도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실 위험을 경고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전쟁 발발 직후 개인의 러시아 ETF 순매수는 리스크를 지나치게 수반한 투자였다. 결국 전쟁 사실을 알고도 투자한 개인의 책임"이라면서도 "하지만 한국투자신탁운용 입장에서는 개인의 책임이라고 반발하기도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투자신탁운용 관계자는 "ERUS 자산 현금화 및 청산 등 향후 진행과정을 주시하고 현재 펀드 내 장외파생상품 계약이 종결될 경우의 향후 절차에 대해 유동성공급자(LP)들과 협의할 것"이라며 "러시아 ETF 관련 내용은 공시 및 운용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안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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