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왕이 회담] 시험대 오른 칩4 동맹···尹정부 한·중 관계 첫 변곡점

박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8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위한 중국 방문을 앞두고 외교부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공항을 출발해 중국 산둥성 칭다오로 향한다. [사진=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중국에서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한다. 윤석열 정부 고위급 인사의 첫 방중으로,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와 한반도 및 지역 문제, 양국 간 상호 관심사 등이 논의된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가입과 관련된 입장 조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칩4는 미국의 우호국·동맹국들이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 쇼어링'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칩4를 자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기구로 인식한다. 대만의 참여에도 매우 부정적이다.
 
박 장관은 8일 오후 중국 산둥성 칭다오로 출국하기에 앞서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중 기간 한·중 외교장관 회담, 만찬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와 공급망 안정 등 안보와 경제 분야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할 것"이라며 "당면한 현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칩4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위한 협의체"라며 "어느 특정 국가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의 우려를 해소할 의지를 밝혔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서 칩4 참여와 관련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관련 부처와 잘 살피고 논의해서 우리 국익을 잘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전달한 상태다.
 
반도체 업계에선 칩4 참여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미국의 반도체 설계·장비가 없다면 국내 반도체 생태계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도 "칩4 가입은 기정사실화됐다"며 "반도체는 고도로 분업화된 구조이기에 어느 누가 빠지면 무용지물이 된다"고 설명했다.
 
중국 역시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이날 공개된 국내 언론사와 공동인터뷰에서 "중국을 배제한 협의체는 옳지 않다. 칩4를 할 거라면 중국까지 포함해 칩5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싱 대사가 '칩5'를 언급한 것은 자기들 역시 한국과 대만이 생산하는 반도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그렇기에 일각에서 우려하는 노골적인 보복은 아예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박 장관과 왕 부장의 회담에서는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운용에 관한 논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측은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언급된 이른바 '사드 3불(不)'이 양국 간 합의사항이며, 윤석열 정부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드 3불은 △한국에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한국이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결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경북 성주 사드 기지 정상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박 장관은 "우리의 안보 주권에 관한 사항"이라며 "중국도 (한국의) 안보 주권을 존중해야 한·중 관계가 원만히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중국의 한한령 해제, 수교 30주년 계기 교류 확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등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