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주는 소프트 파워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한국을 연상하는 이미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워드 클라우드(Word cloud)를 제작하고 있다. 워드 클라우드는 특정 단어의 빈도나 중요성을 글자 크기로 나타낸 이미지를 뜻한다. 세계 전역에서 한국 연상 이미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단어는 K-팝이다. 2위를 기록한 한식(Korean food)과 3위를 기록한 IT제품(IT Product&Brand)을 넘어선 한국을 연상케 하는 절대적인 이미지인 것이다. 수년 동안 북한(North Korea)이나 한국전쟁(Korean war)과 같은 북한 관련 연상 이미지는 미미해지고 있다. 더욱이 뷰티(Beauty), 태권도(Taekwondo)와 같은 문화 콘텐츠가 상당한 순위에 있어 콘텐츠가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증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프트 파워 개념을 정립한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Jr.) 하버드대학교 석좌교수도 한국은 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상당한 소프트 파워를 확보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콘텐츠는 산업이라는 관점에서도 한국 경제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콘텐츠 산업의 성장 속도는 한국 경제성장 속도를 초과하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5%도 채 안 되는데 콘텐츠 산업의 연평균 매출액은 2013~2021년 연평균 5.2% 증가했다. 즉, 콘텐츠 산업은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유망 산업인 것이고, 콘텐츠 산업이 없다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한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라면 수출이 급증하거나, 해외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나 가전제품과 같은 내구재 브랜드가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는 현상을 보면 콘텐츠가 주는 경제적 의미는 분명 그 이상이다.
콘텐츠 산업 연평균 매출액 증감률
콘텐츠 산업 패러다임에 변화가 일고 있다. 첫째, ‘팬더스트리(Fandustry)’의 부상이다. 이는 팬(Fan)과 산업(Industry)의 합성어로, 팬덤을 기반으로 한 산업을 가리키는 합성어다. 팬더스트리의 핵심은 팬과 스타를 연결하는 팬덤 플랫폼에 있다. 팬덤 플랫폼의 서비스는 크게 콘텐츠와 커머스로 구성되어 있다. 맴버십 구독자에게 오리지널 독점 콘텐츠를 제공하고, 기념품, 콘서트 티켓 등을 판매하는 커머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최근 음원 수요도 줄고, 코로나19로 대면 행사들이 중단되면서, 엔터테인먼트업계가 돌파구를 찾으며 부상하게 된 산업이다.
선두에 선 플랫폼은 ‘위버스(weverse)’다. 하이브의 자회사인 위버스컴퍼니가 개발·운영하는 플랫폼으로, 네이버와 YG엔터테인먼트와도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BTS뿐만 아니라 30여 팀의 팬 커뮤니티를 확보하고 있다. 월 약 500만명의 활성 이용자 수를 확보하고 있고, 플랫폼을 통해 아티스트의 독점 콘텐츠를 공유하고 있다. 2020년 2월 SM엔터테인먼트 자회사 디어유(DearU)가 JYP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팬덤 플랫폼 ‘버블(bubble)’을 론칭했다. 위버스가 커머스 기능을 강화한 반면 버블은 팬과 아티스트 간 일대일 소통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유니버스(Universe)’는 2021년 1월 게임사 NC소프트가 출시한 것으로, 월 이용자 330만명 중 80%가 해외 팬들이다. 게임사가 론칭한 플랫폼답게 팬들에게 미션을 제시하고 이를 수행하도록 유도한다. 가수의 아바타를 만들거나 메타버스 공간에서 팬덤 활동도 할 수 있다.
둘째, 콘텐츠 산업의 ‘탈경계화(Boarderless)’가 진전되고 있다. 탈경계화는 산업 간 경계가 무너져 기존의 산업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업종 간에 융합이 빈번해지는 경향을 말한다. 특히 게임산업의 강자들의 콘텐츠 기업으로 다각화하는 행보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앞서 거론했듯 게임회사 NC소프트가 엔터산업에 진입한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넥슨은 ‘넥슨 필름&텔레비전(Nexon film & Television)’ 조직을 신설하고, 게임 IP(지식재산권)를 기반으로 영화·만화·굿즈 등을 생산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컴투스는 미디어 콘텐츠 기업 위지윅스튜디오(Wysiwyg Studios)를 인수하고, 게임을 영화나 웹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콘텐츠 미디어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영화관과 OTT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 CGV는 2021년 9월 넷플릭스에서 독점 상영됐던 한국 영화들을 모은 ‘넷픽(NETFIC IN CGV)’ 특별전을 개최하는 일이 있었다. 극장이 OTT 작품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구분 짓던 과거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음을 시상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9월 미국 에미상 시상식(Emmy Award)에서 넷플릭스는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감독이나 배우들도 새로운 대세를 기회로 삼고 있다.
셋째, ‘초실감(Ultra Reality)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컴투스와 그룹 계열사 위지윅스튜디오, 엔피가 공동 설립한 컴투버스(Com2Verse)는 금융·문화·라이프 전반을 온라인으로 구현해 실생활과 연계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큐브엔터테인먼트는 글로벌 최대 메타버스 플랫폼인 ‘더 샌드박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한국복합문화공간(K-village)’에서 다양한 K콘텐츠를 전파할 계획이다. KEB하나은행도 더 샌드박스의 ‘랜드(Land)’ 내에 가상 지점을 오픈하고, 메타버스 생태계에 참여하는 회사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스마트미디어는 차원이 다른 초실감화를 실현시키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에 메타버스와 오감 정보처리 기술 등을 적용한 미디어가 확산하면서 차원이 다른 콘텐츠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있다. 특히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환경을 제공하고, 청각, 촉각 등 오감 정보를 데이터화하여 처리함으로써 몰입감을 높이는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스마트미디어산업은 2021년 기준 약 1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2023년에는 15조원 규모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한다(OTT 시장은 통계에서 제외).
스마트미디어산업 부문별 매출액 현황 및 전망
콘텐츠 산업 성장 지원을 통해 소프트 파워를 확보해야 한다. 콘텐츠 산업이 주는 직접 효과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콘텐츠 산업 패러다임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도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글로벌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콘텐츠 유형을 찾고, 빠르게 변화하는 콘텐츠 트렌드를 캐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중소 콘텐츠 기업들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를 조성하고, 글로벌 선도 기업들에서 인사이트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
기업들은 차원이 다른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콘텐츠 기업에만 국한되는 메시지가 아니다. 금융회사든, 유통회사든, 제조회사든 그 경계는 없다. 콘텐츠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소프트 파워를 장착해야 한다. 특히 전 산업에서 펼치고 있는 플랫폼 경쟁에 있어서도 해당 플랫폼에 오래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 전략이 되고 있다. 콘텐츠를 확보함으로써 소비자를 사로잡고, 플랫폼에 오래 머물게 하며, 다양한 커머스 활동으로 연결하게 하는 ‘리텐션 효과(retention effect)’를 기억해야 한다. 쿠팡이 대표적인 예다. 쿠팡플레이를 통해 소비자를 지속적으로 방문하게 하고, 유통서비스와 금융서비스(쿠팡파이낸셜)를 연계하는 행보는 우연이 아니다. 콘텐츠는 콘텐츠 기업만의 것이 아니다. 콘텐츠는 산업 이상의 것이고, 전략이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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