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G2(주요 2개국)'로 불릴 만큼 미국과 세계 1~2위를 다투는 경제대국 반열에 올랐다. 최근 양국은 중국의 기술력 향상과 자국 기업 육성 정책으로 경쟁 관계에 돌입하며 일방향 통상 관계에서 양방향 경제 관계로 전환됐다. 분업 협력에서 경쟁 체제로 전환된 셈이다.
22일 본지 취재에 응한 현역 국회의원과 외교 전문가 6명은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외교를 펼칠 것을 당부했다. 양국 관계가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망 외교를 위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尹정부, 사자 용맹과 여우 교활함 必"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한·미 동맹 강화를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미·중 간 균형외교 기조를 접고 중국 견제 성격을 띤 경제협력기구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대미 접근 기조를 드러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먼저 양국 정상 간 만남을 제안했다. 이 의원은 "한·미 동맹 못지않게 한·중 외교도 중요하다"며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윤석열 대통령 간 만남을 주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 우리 정부는 중국과 외교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국회 외통위 소속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제사회에서 서로 친분을 돈독히 해서 우리 국익을 관철하는 게 외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외교의 원칙과 기본을 모르는 것 같다. 상대(중국)가 믿지 못하도록 계속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한·미 동맹을 강화할 것을 천명했지만 중국과 외교 정책에 대한 비전은 제시하지 않았다. 미·중 갈등 기조 속에서 실리 위주 외교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마키아벨리 '군주론'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군주는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교활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용맹만 있는 것 같다. 결정된 것을 그냥 밀어붙이는 식"이라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챙길 것 챙기는 여우와 같은 테크닉은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중 갈등은 향후 30년가량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로섬 게임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과 관계를 원만히 유지해 나가는 게 쉽지가 않다"고 분석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미국 기업인 테슬라와 애플 공장 대부분이 중국에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미국 역시 중국의 공급망 리스크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전 소장은 "상하이에 세계 최대 규모 전기차 공장이 있고 아이폰과 아이패드 90%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미·중 관계가 중요할까"라고 반문했다.
가장 큰 리스크는 '반도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대중 수출 비중이 지난 20년 새 13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1년 기준 대중 수출의존도가 가장 높은 산업군은 '정밀기기' '정밀화학' '반도체' 순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한국의 '칩4'(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 참여에 견제 메시지를 내면서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 속도전과 공급망 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라는 분석이다.
전 소장은 "공급망 리스크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반도체 전체 원자재 중 40%, 배터리 전체 원자재 중 60%가 중국에서 오고 있다"며 "원자재 다변화를 어떻게 실행할 것이지 정부가 5개년 계획을 세워서 기업에 제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도 거론됐다. 미·중 전략 경쟁으로 2016년 불거진 이후 잠잠해진 사드 갈등은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주한미군 사드의 X-밴드 레이더가 중국 군사 움직임을 탐지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9일 중국 칭다오에서 만나 사드가 양국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데 뜻을 모았지만 중국 측은 다음날인 10일 이른바 '사드 3불(不)'을 내세우면서 1한(限)까지 들고 나왔다.
박 교수는 "(향후 한·중 관계 변수는) 사드와 '칩4' 문제를 들 수 있겠다"며 "미·중 간 대립 구도 속에서 경제와 안보 두 가지를 놓고 계속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표나리 국립외교원 교수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서로에 대한 비우호적인 인식이나 혐오 정서를 해결하는 게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G2’ 경쟁 속 '신냉전'···"균형외교로 풀어야"
한국 수출액 중 25% 안팎을 차지하는 한·중 교역은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이었지만 대중국 교역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한국이 외교안보 정책을 펼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이 의원은 "한·미 동맹 강화 못지않게 한·중 외교도 중요하다는 것을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며 "외교는 균형 있게 해야 한다. 반드시 5대5 비율을 맞추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굉장히 민감한 시기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의원은 "우리 처지에서 중국은 최대 수출국이자 최대 무역 흑자국"이라며 "미·중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시기에 우리가 한쪽 눈치를 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양쪽 관계를 잘 풀어왔는데 지금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중과 관계를 국익 차원에서 판단해 잘 풀어나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정 전 장관은 "지금은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2010년부터 미국과 중국 사이에 공력 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중국은 힘이 커지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태양'은 서산 너머로 저물어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삼각 동맹'을 만들려고 시도하다 보니 '신냉전' 체제가 시작된 형국이 됐다"고 말했다.
표 교수는 "우리가 너무 조심하면서 민감하게 다루거나 줄타기를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우리로서는 조금 안보적인 퇴보가 아닐까 하는 그런 평가도 있다"며 "우리도 양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