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향후 대중국 무역에서 지난 30년과 같은 성장세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첫해를 제외하고 줄곧 흑자를 이어온 '대중국 수출'이 최근 적자의 늪에 빠졌다.
대중 무역 역조가 중국의 코로나 도시 봉쇄와 경기 침체 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일각의 주장도 있다. 하지만 산업 고도화와 첨단 산업 육성에 나섰던 중국이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과 경쟁하는 위치에 오르면서 향후에도 무역적자가 구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이달에도 적자를 기록하며 한·중 수교 이후 처음으로 4개월 연속 적자가 유력하다. 관세청이 22일 발표한 이달 1~20일 대중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6억6700만 달러다. 대중 무역수지는 올 5월 10억9000만 달러 적자를 시작으로 6월과 7월에도 각각 12억1000만 달러, 5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정환우 코트라(KOTRA) 선임전문위원은 "최근 10여 년간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우리의 대중 무역흑자가 경향적으로 감소해 왔다"며 "향후에도 미·중간 무역분쟁에 따른 우리 기업의 중국 내 사업 여건 악화로 대중교역은 예전과 같이 크고 지속적인 흑자를 기록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간 우리나라는 기술 우위를 기반으로 중간재를 중국에 공급하고 중국은 이를 가공해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수직적 분업 구조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중국의 적극적인 기술 투자로 자체적인 중간재 조달과 완제품 생산 능력을 갖추면서 우리나라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고 있는 상황이다.
대중 수출이 10여 년간 정체된 상황에서 중국의 산업 구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의 산업·외교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중국이 기술 격차를 좁혀오면서 기존의 국제무역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돼 버렸다"며 "중국의 필요로 우리나라가 흑자를 유지할 수 있는 수출 구조가 이어졌지만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지금과 같은 (무역적자) 상황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중국도 (산업적 측면에서) 우리나라를 여전히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국의 규제가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가 외교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구조적으로 대중국 수출이 늘어나기 어려운 환경에서 무역 정책의 변화와 수입선 다변화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까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장으로 근무했던 정하늘 국제법질서연구소 대표는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많이 줄면서 우리나라의 수출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도 전략 산업 육성 위한 지원을 늘리고 있는 만큼, 우리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자유무역 기조에서 벗어나 정부가 전략 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 대표는 "다만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무역 장벽을 세우는 조치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며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국가들과 양자 또는 복수 FTA를 체결해 최근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늘고 있는 첨단 제품의 소재·원자재의 대체 수입선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미국 주도의 공급망 동맹 참여를 검토하면서 대중국 수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정부의 참여 검토로 중국의 반발을 산 반도체 동맹 '칩4'를 비롯해 중국 견제 성격의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이 우리에겐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산업연구원 김동수 해외산업실장은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우리나라가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며 "앞서 중국의 화웨이 5G 장비가 서방국가들에 많이 구축되다가 미국 등의 제재 조치가 이뤄지면서 삼성 등 우리 기업의 수주 확대로 작용한 것도 일례"라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등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분야 발전이 지연될 경우, 우리나라가 기술적 우위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또 김 실장은 장기적으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 인력 확보를 위해 학과와 정원 확대 방안을 내놓은 정부의 대응은 적절하다고 본다"며 "다만 생산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전공과 관계없이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관련 강의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획기적인 방안도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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