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면치기 시대에 밥상머리 예절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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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2-08-2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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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치기' 강요 방송…음소거 먹방엔 면박

  • 식사 소리 권장 문화, 식습관 해칠 우려

  • 잘못된 식습관, 시기 놓치면 교정 어려워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어린 자녀가 직접 쓴 식사 예절. [사진=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먹을 때 소리 내 먹지 말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어린 자녀에게 첫 번째로 강조한 식사 예절이다. '후루룩 쩝쩝' 소리 내 먹는 식습관은 상대방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크게 소리 내 먹는 행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의 식사 예절에도 어긋난다. 쩝쩝 소리는 함께 식사하는 이의 귀를 거슬리게 할뿐더러 입을 연 채로 먹다 보니 입 안 음식물이 상대에게 그대로 노출된다. 맞은편에 앉은 이의 눈과 귀가 고역인 셈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도 선비 집안 예절을 다룬 수양서 '사소절'에서 소리 내 먹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소절'이 나온 지 약 400년이 지났어도 쩝쩝 소리에 대한 거부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때 온라인에선 소리 내 먹는 이들을 '쩝쩝충'이라 비하하며 밈(meme·유행 콘텐츠)으로 소비했다.
 
하지만 요즘 방송가에선 크게 소리 내 먹는 이들을 대접하는 기묘한 문화가 형성됐다. 국물을 사방에 튀겨가며 후루룩 쩝쩝 면발을 흡입하는 이에게 엄지를 치켜든다. 음식을 즐길 줄 아는 미식가로 묘사하는 건 덤이다. 어린 시절 배운 밥상머리 예절이 언제 통째로 뒤바뀌었나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소리 내 먹지 않는 이에겐 면박을 주기 일쑤다.

지난 13일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배우 이정재가 비빔국수 면발을 이로 끊어낸 뒤 소리 내지 않고 삼키자 게스트들은 이해할 수 없단 반응을 보였다. 이를 본 방송인 이영자가 "국수를 (먹으면서) 소리를 안 내요?"라며 물은 뒤 '후루룩' 소리 내며 면을 빨아들이자 게스트들은 "이렇게 먹어야지"라고 거들었다. 이정재는 깜짝 놀란 눈으로 이영자를 바라봤지만 다른 게스트는 "존경의 눈빛"이라고 포장했다.
 

배우 이정재가 방송인 이영자의 면치기(면발을 끊지 않고 먹기)를 보고 깜짝 놀란 모습. [사진=MBC '전지적 참견 시점' 방송화면 갈무리]

문제는 식사 소리를 권장하는 방송 문화가 왜곡된 식사 예절을 부추길 수 있단 점이다. 특히 기본 생활 습관이 형성돼 가는 초등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 벌써 유튜브나 틱톡 등엔 '면치기(면발을 끊지 않고 먹기) 도전'을 외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식습관을 자랑하듯 올린 초등학생들의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의 경우 식습관을 길들일 타이밍을 놓치면 고치기도 쉽지 않다. 밥 먹을 때 소리 안 내기, 면 먹을 땐 국물이 튀지 않게 유의하기 등 면치기가 판치는 세상에 밥상머리 예절이 간절한 이유다.

한편 이영자의 후루룩 소리를 듣고 놀란 이정재 표정을 본 누리꾼은 이렇게 말했다. "천민 먹부림을 보고 놀란 대감집 영감". 이 댓글엔 1800명 이상이 공감을 뜻하는 '좋아요'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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