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봐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촌동생이었다. 그는 초·중·고등학교 당시 학교생활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노력해 수능시험 성적을 잘 받아 국내 최상위권 대학의 자연과학부에 진학했다. 이후 대학생활도 충실했고 학점도 제법 좋았다. 학부과정을 마치고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을 쳤다. 그러나 무난하게 통과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결과는 낙방. 이후 재 도전을 했지만 두 번 더 떨어졌다. 지금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동생이 약학 시험에서 불합격한 결과를 놓고 주변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초시 합격은 정말 어렵고, 인강이 학원비 교재비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간다" "시험도 머니(돈) 싸움이다. PEET 계 1타 강사들 연봉 수십억씩 버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나. 학생들 주머니를 턴 것" "(PEET가)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네... 과목 난이도부터 공부하는 양까지 수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경험담부터 풍문까지 무수한 말들이 동생 주변을 맴돌았다.
왜 불합격했을까? 타인의 관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의지가 부족했을까? 공부하고 시험 치는 시간이 동생의 삶 대부분을 차지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익숙한 삶이었을 것이다. PEET는 총 4과목을 치른다. 각 100점씩 총 400점 만점이다. 21학년도 PEET 응시자 수가 1만 5108명이었고, 같은 해 약대 티오는 1813명이었다. 11학년도 PEET가 도입된 첫해와 달리 지원자 수는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시험제도가 막바지로 가면서 시험을 준비한 첫해에 합격하는 학생은 많이 줄었고, 최소 두 번 혹은 세 번을 봐야 합격이 가능한 시험이 됐다.
즉 재수와 삼수생들이 합격을 많이 하는 구조로 변형됐고, 합격생 다수는 스타강사와 합격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광고하는 대형 학원을 통해 배출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의지와 함께 얼마큼의 비용을 내며, 어떤 교육 환경을 통해 학습을 하는 것인가? 가 시험이 고도화되면서 합격에 필요한 능력이 되었던 것이다.
유사한 구조를 가진 수학능력시험
수능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2022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 최초 합격자 중 삼수생 이상의 비율이 역대 최고에 해당하는 20.5 % 가 나왔다. 5명 중 1명은 삼수생이라는 것이다. 상위권 10개 대학을 수능 성적으로 합격하는 재수생 이상은 70%에 육박한다. 이러한 현상은 PEET 시험의 막바지와 유사하게 재수생 이상이 합격을 많이 하는 구조로 변화했다. 그리고 학생이 갖추어야 할 능력은 의지와 노력을 넘어서 어떠한 교육 환경 속에서 학습하는 것인가?라는 부분으로 변모했다. 합격한 학생이 전국의 다양한 고등학교 출신들이긴 하지만, 재수 이상의 기간에 월 3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기숙 학원을 포함한 대형 학원에 속한 학생들이 대다수라고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 시험의 변화 그리고 사교육 시장의 건재함
예비고사 (1969년~1981년)와 학력고사(1982년~1993년)가 추론 없이 암기만을 강요해왔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부는 미국의 시험제도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미국의 수학 능력 시험인 SAT (Scholastic Ability Test)를 중심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형 SAT 개발을 시작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총 7차례의 한국형 대학수학능력시험 CSAT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실험평가'를 실시했다. 5지선 다 형의 문제 방식이 도입되고 영어 듣기 평가가 도입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후 1994년부터 현재까지 대학수학능력 시험인 수능이 학생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도입이 되고 연관된 학습능력 향상을 위한 방식의 공교육이 진행됐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수많은 자원이 투입이 되었지만, 결국 스타강사를 앞세우고 공부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고, 어떤 후천적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인가? 가 여전히 중요한 능력으로 대우받고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2007년부터 초·중·고교 학생 사교육비 규모를 통계로 작성한 이후 2021년은 23조 4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학교 등원이 안되어진 상황까지 더해져서 1:1 개인 맞춤형을 포함한 소규모 수업 및 스타강사 중심인 초대형 학원들의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사교육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심리학자 아들러(Adler)는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그렇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 ‘목적 지향성’ 과 투자 대비 최적의 결과물을 성취하고 싶은 ‘효율성’이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고 봤다. 입시 결과를 단기적인 목적으로 두어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 준비를 할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에 속하여 효율적인 결과를 원하는 것이다.
사교육의 역사
고려 시대 (1053년) 최초의 사학으로 기숙사 시스템을 도입하여 고려 시대에 과거 급제생을 가장 많이 배출한 ‘문헌공도’(구재학당)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서원 등을 거치면서 사교육은 지속됐다고 본다. 이후 신분제 가 폐지되어 (1894년~) 과거시험이 의미가 없어졌다가, 6.25 전쟁을 거치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지나면서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사교육을 선택하는 이유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시험의 결과’는 ‘신분 상승’의 목적을 달성시켜주는 도구이고, ‘사교육’ 은 목적을 달성시켜주는 ‘효율성’을 갖춘 수단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부터 지금까지 집단에 속하게 하기 위한 방법인 시험 합격을 위해 준비시켜주는 기관이다.
MZ 세대가 생각하는 집단의 의미
소위 MZ 세대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다. 이는 모바일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며, 정보의 접근성 또한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기 때문에 굉장히 빠르고 정확하다. 더불어, 통화와 같은 이전의 의사소통 방식과 달리 카톡 등을 활용한 글자나 이모티콘 등을 활용해 소통하며 나의 상태나 감정을 타인과 보다 정확하고 자유롭게 교환하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이를 통해 MZ 세대는 집단을 대표하여 나를 나타내기 보다, 나 중심적으로 표현하고 나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하며 사회관계를 만들어 가는 특징이 있다고 본다. 기성세대의 집단은 나를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MZ 세대에서 집단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대학이라는 집단은 나를 보호하는 기능을 갖춘 과거와 달리,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잠재력은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을 위해 필요한 건 관찰자의 역할이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관찰자로서 노력을 그리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관찰자는 자신의 경험이나 가치관을 아이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의 특징을 잘 관찰하고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차이점을 바르게 인지하는 게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MZ 세대가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가진 개인 중심적인 사고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이러한 특징이 틀리거나 나쁜 것이 아닌 자연스럽고 당연히 다른 것이라는 인식이 어렵지만 적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을 현재의 교육 환경에서 갖추어지기는 어렵다.
세계 유수 기관들이 선정하는 우수한 교육 환경은 이제 점진적으로 변화하면서 훌륭한 관찰자로서 아이의 잠재력을 관찰하여 성장시키는 것을 해 주는 기관으로 흘러가고 있다. 작은 관리 인원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주입식으로 동일한 것을 학습시켜 결과를 배출하였던 것과 상반되는 많은 관리 인원으로 적은 학생들을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잠재력을 발현 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교육 환경을 의미한다. 공통적으로 이들 기관은 모두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사고 및 도전을 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방향으로 잡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학교들이 국내 대학 은 물론 해외 대학에서도 우수한 입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구청장 인수위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교육비 절감 방안에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관찰자로서 역할을 잘 하기 위해 공교육에서 학생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기 위한 수단을 보강해 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교육에서 학생 개별 특징을 교사들이 파악할 수 있다면, 교사들에 대한 학생들의 의존도는 높아질 것이며, 결과에 의해 본인에게 필요한 교육과 불필요한 교육을 분류만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지출이 되고 있는 불필요한 사교육비는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원하는 다양한 입시제도 중 개인에게 적합한 입시전형을 추천하는 방법과 기술을 제언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공교육에서 손쉽게 학생 개인의 기질을 발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교내 수행평가 및 동아리 활동을 집중해 선호하는 학과를 지향하기를 희망하는 학생은 수시전형 지원을 만족하고 준비할 것이다. 반면 수학 능력 시험과 같은 일반적인 학습에 집중하며 수능과 같은 객관적인 시험을 선호해 성취를 이룬 후 대학 지원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경우 정시전형 지원을 만족하고 임할 것이다.
공교육은 최장기간 학생과 호흡을 하는 기관으로서 학생의 개별 특징을 분류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학생의 특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공교육의 추천에 의해 학생들은 사교육을 선택할 것이고 이를 통해 사교육이 우선되는 현재의 분위기에서 사교육은 공교육의 보조 역할로서 공교육이 제공할 수 없는 다양성을 제공하는 기능에 집중하는 기관의 역할을 충실하게 될 것이다.
필진 주요 약력
▷런던대 경제학과 졸업 ▷강남구 국민의힘 교육특보 ▷강남구 국민의힘 교육정책분석 위원 ▷(주)영잘국&북테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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