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시간) 타스 등 러시아 국영 언론은 중앙 임상병원을 인용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숙환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개혁을 통해 소련의 붕괴를 이끈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소련의 권위주의를 멈추고 분열됐던 유럽이 평화롭게 재결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등 서방에서 그는 자유주의의 글로벌 영웅으로 칭송받았지만 1991년 소련의 종말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자국 내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소련 붕괴를 “20세기의 가장 큰 재앙”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했다는 짧은 성명만 발표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역사적 역할과 그의 유산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러시아 언론들도 조용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트위터에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던 시기에 소련을 개방하려는 그의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모범으로 남아 있다"고 적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54세 때인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 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는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만나 양국 간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초석을 놨다. 이후 1998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이던 소련군을 철수했고, 1989년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1990년 여름에는 동·서독 통일을 수락했다. 냉전을 끝내는 데 기여해 199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가 발생한 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공산당 활동을 정지시키고 내각을 갈아엎었다.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 발트 3국에 대해 독립을 승인하는 조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그해 12월 소련 소속 11개 공화국이 독립국가연합(CIS) 결성을 선언하며 소련에 종식을 고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 언론인인 알렉세이 베네딕토프는 지난 7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권위주의 전환에 대해 화를 냈다고 포브스 러시아판에 밝혔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러시아 정책을 담당했던 다니엘 프리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불가능한 일, 즉 소련을 개혁하려고 했다”며 “비록 실패했지만 조국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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