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민영화 2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30일 진행된 'KT 미래포럼'에서 AI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리벨리온'의 박성현 대표가 강조한 발언이다.
5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SKT), KT 등 국내 이동통신사는 향후 국가 전략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AI 반도체 수급과 국산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상·문장 분석뿐만 아니라 창작으로 AI의 활용처가 확대됨에 따라 초거대 AI 학습과 운영(추론) 능력에 직결되는 AI 반도체의 수요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전 세계 1·2위 AI 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AMD에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중단하라고 통보하는 등 AI 반도체의 전략물자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부분의 초거대 AI 학습이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에서 진행되는 상황에서 관련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지면 중국 정부와 기업의 초거대 AI 상용화는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국내 AI 반도체 수급과 국산화는 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이동통신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SKT는 누구, 에이닷, 슈퍼노바 등 자사 AI 서비스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지난 2016년부터 AI 반도체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2020년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 'X220'을 선보인 데 이어 지난해 12월 관련 연구개발 조직을 분사해 AI 반도체 설계 기업인 '사피온코리아'를 설립했다.
정무경 사피온코리아 R&D센터장은 인터넷 경제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현재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가 독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시장이 급성장하는 만큼 사피온을 포함한 다른 AI 반도체 기업에도 기회가 올 것"이라며 "구글, 아마존 등 클라우드 빅테크도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이고 AI 반도체 기술을 내재화하기 위해 대규모 연구개발·인수합병 등을 통해 자체 AI 반도체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피온의 AI 반도체는 엔비디아의 GPGPU(AI 반도체 종류)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전력 소모량이 적은 장점이 있다"며 "SKT만 쓰는 것을 넘어 다른 기업에도 AI 반도체를 공급하기 위해 사피온 분사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정 센터장은 AI 반도체 사업이 성공하려면 △기술력 △사용사례(레퍼런스) △안정적인 재원 등 세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AI 반도체 분야에서 다른 기업보다 2~3년 앞서가고 있는 구글클라우드는 2012년 연구개발에 착수해 2017년 실제 AI 반도체를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AI 반도체는 안정적인 기술력을 토대로 오랜 연구개발을 통해 실제 AI 반도체를 개발한 이력이 있어야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사피온은 2020년 AI 반도체 실물을 상용화한 데 이어 내년에 후속 모델을 출시할 계획인 만큼 경쟁사보다 유리한 지점에 서 있다고 정 센터장은 강조했다.
또 정 센터장은 "이렇게 개발한 AI 반도체를 현업에 적용해 실제 AI 모델 운영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을 검증받을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사피온의 AI 반도체는 SKT와 NHN의 데이터센터에 공급되어 실제 AI 서비스 운영에 활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 센터장은 "AI 반도체 개발은 장기간의 연구개발이 필요한 만큼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사피온은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SK그룹이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영업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향후 SKT·SK스퀘어·SK하이닉스 등 SK ICT 패밀리로부터 다양한 금전적·기술적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사피온은 출범과 함께 SK ICT 패밀리에게 8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현재 SK하이닉스와 AI 반도체에 차세대 메모리(HBM3) 탑재를 논의하는 등 개발 관련 협력도 이어가고 있다.
KT는 엔비디아에서 영국의 AI 반도체 기업 '그래프코어'로 AI 반도체 공급망을 확대한 데 이어 리벨리온에 300억원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며 AI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KT 입장에선 저전력 고효율 국산 AI 반도체를 확보할 수 있고, 리벨리온 입장에선 시리즈 A로 620억원 투자받은 데 이어 300억원을 추가 확보함으로써 AI 반도체 개발을 위한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하게 됐다.
양사는 KT클라우드의 GPU팜에 엔비디아·그래프코어의 제품뿐만 아니라 리벨리온의 차세대 AI 반도체도 추가하는 등 전략적 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KT는 AI 반도체를 해외 공급망과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수급하고, 리벨리온은 대규모 AI 반도체 사용사례를 확보하는 '윈윈' 전략을 꾀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초거대 AI 모델이 보여주는 소름 끼치는 성능을 보고 있으면, 초거대 AI를 개발하고 서비스할 수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벽이 나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이번 규제는) 경쟁국의 AI 개발과 서비스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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