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증권 범죄를 저지르는 결정적인 동기는 결국 '돈'이다. 불법으로 취득한 막대한 이득을 환수하지 못한다면 처벌 효과도 반쪽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범죄를 통해 얻은 수익을 환수하는 것이 범죄행위 자체에 대한 대응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런데 웬만한 범죄수익은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세탁을 거쳐 쪼개지고 분산된 상태에서 해외로 빠져나가기 쉽다. 범죄의 종국적인 목적이 불법수익의 은닉이라면 그 수단이 세탁인 셈이다.
얼마 전 '국내 은행들에서 해외로 송금된 불분명한 자금이 총 8조5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는 언론보도를 봤다. 물론 그중에는 정상적인 거래 결제대금도 포함돼 있겠으나 상당수는 범죄수익의 세탁 및 해외 빼돌리기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신용장도 없이 어느 무역법인 계좌로 모인 뒤 해외로 송금된 사례들은 뭔가 정상적인 거래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가격 폭락으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테라와 루나 발행사 테라폼랩스가 2019년 4월 법인 앞으로 테라 10억 개(당시 환율로 1조5600억원 상당)를 사전발행했다고 하는데, 이 역시 범죄수익 세탁의 관점에서 검찰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된다.
금융·증권 범죄 수익의 세탁과 환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추적 기술 외에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제도적 장치이다. 현행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자금세탁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가상자산사업자를 포함해 금융회사에게 불법의심 거래내역 등을 보고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프랑스는 자금세탁에 대처하고자 2013년 형법을 개정해 범죄수익으로 의심되는 자금이 발견됐을 때 그것이 범죄와 무관함을 당사자가 입증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했다. 형사사법에서 입증책임은 검사가 부담하는데 이를 전환하는 것이 타당한지 논란이 됐으나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필요에 따라 위와 같이 입법됐다. 우리도 프랑스의 고민을 진지하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간 실효적인 공조이다. 필자는 오래 전 프랑스 파리지방법원 예심수사판사실에서 연수를 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 수사판사의 수사는 한국 검사의 수사와 비슷하다. 하루는 지도수사판사가 장시간 통화를 하고 나서는 "내용을 설명해주겠다"며 필자를 불렀다. 요지는 "벨기에 검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자금세탁 등 혐의로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프랑스에 잠입했으니 프랑스 내 피의자의 계좌를 동결하고 피의자의 소재지를 파악해 체포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치 서울에 있는 검사가 부산에 소재한 검사에게 연락해서 공조를 요청하는 것 같아 놀라웠다. 유럽은 형사사법공조에 관한 기본협약 외에도 범죄인 인도 및 형사사법공조에 관한 베네룩스조약, 자금세탁방지에 관한 협약 등에 기초해 국가간 실질적인 수사 공조를 지향하고 있는데 그것이 일정 부분 현실적으로 가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초국가적 범죄(transnational crime)에 대한 국가간 협력은 하루이틀 주장된 의제가 아님에도 일부 유럽국가를 제외하고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다. 그 사이 범죄는 갈수록 국경을 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금세탁범죄도 그중 하나이다. 우리는 1991년 4월부터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을 시행해 형사사건의 수사나 재판과 관련한 외국간 공조의 법적 근거를 이미 갖춘 상태다. 하지만 실질적인 국제공조는 법률이나 국가간 근사한 선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상대국의 실리추구를 넘어서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의지가 중요하며 개별사건마다 발로 뛰어야 한다.
우리 자본시장은 '꾼'들이 한탕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다. 그리고 금융증권범죄는 국경을 초월해 저질러지고 있다. 더 이상 발본색원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특히 금융증권범죄 수익의 세탁과 환수에 국가적인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증권범죄수사대응TF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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