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기소하면서 여야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검찰은 8일 이 대표를 공직선거법 허위사실공표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당장 민주당은 “야당 탄압을 멈추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역사상 유례없는 정치 기소”라며 각을 세웠다. 이어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고발하고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하며 세 결집에 나섰다. 대선에서 0.73% 포인트 차이로 패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이 정면 대결로 치닫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의혹은 선거 전부터 거론돼 온 사안이다”면서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하라”고 압박했다. 여야 공방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이 대표는 6일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예상했던 행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며 민주당과 이 대표를 비판했다. 대선 패배 이후 이 대표는 당내 부정적 기류에도 불구하고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와 당 대표 출마를 강행했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이른 등판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은 주를 이뤘다. 특히 당대표 출마는 개인 리스크가 당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이 비등했다. 하지만 이 대표와 지지자들은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강한 야당이 필요하다며 출마 당위성을 앞세웠다. 검찰 소환 불응, 윤 대통령 고발, 김건희 특별법으로 이어지는 강경 기류는 방탄 출마와 사당화 우려를 구체화 시켰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정치적 의도로 망신 주려는 것, 이 대표는 꼬투리 잡기 정치탄압에 끌려 다니지 않을 것”이라며 소환 불응 배경을 설명했다. 허위사실공표 혐의도 반박했다. 백현동 개발사업과 관련 “‘국토교통부가 용도 변경을 협박했다’고 한 발언은 당시 언론도 취재했고, 기자 취재확인서 또한 수사기관에 제출됐다”고 했다. 또 대장동 개발과 관련 “‘새누리당 압박 때문에 공공개발을 포기했다’는 발언 역시 당시 언론 보도로 확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고 한 발언 또한 “시장이 산하기관 실무팀장을 기억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관련기사
이 대표는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수사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 지난 1일 검찰 출석 통보와 출석을 하루 앞두고서야 뒤늦게 서면답변서를 제출했다. 선거법상 공소시효는 9일이다. 그러니 이 대표가 수사 협조는커녕 방어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배경에 의문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수차례에 걸쳐 자신은 당당하다고 밝혔다. 혐의가 없고 정당하다면 검찰 출석 요구에 당당하게 응해야 했다. 또 자기 방어를 위해서라도 서면조사 적극 대응하는 건 당연한 조치였다. 그런데 수사를 기피함으로써 ‘방탄 배지’(국회의원)와 ‘방탄 갑옷’(당 대표)이라는 비난을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기소된 혐의는 수사 중인 다른 의혹에 비하면 사소한 편에 속한다. 백현동·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수사 결과에 따라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의원직 상실은 물론 민주당은 대선 선거비용 434억 원을 반환해야 한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이러한 의혹에 적극 대응하고 해명할 필요가 있다. “죄가 없다. 정치 탄압이다”라는 말로 어물쩍 피할 게 아니다. 만일 ‘김건희 특검’으로 물 타기를 의도한다면 국민적 공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진영대결로 몰아갈 일이 아니다.
검찰 또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야 한다. 그래야 공감을 얻고 야당으로부터 불필요한 반발을 사지 않는다. 사실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한 건 ‘태산명동서일필’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대장동 개발 특혜, 변호사비 대납, 성남FC 후원금과 관련 이 대표가 깊숙이 개입한 것처럼 흘렸다. 그런데 검찰은 몸통은 조금도 건들지 못한 채 허위사실공표 혐의만 기소함으로써 정치적 의도라는 비판을 샀다. 반면 김건희 여사는 무죄 또는 불기소 처분함으로써 형평성 시비를 초래했다. 검찰 수사가 형평을 잃을 경우 민주당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공감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린 채 오른 손엔 저울, 왼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눈을 가린 이유는 편견 갖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 검찰은 눈을 뜬 채 기울어진 저울을 들고 마구 칼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김건희 여사 의혹 또한 제대로 규명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재명이든 김건희든 죄가 있다면 공평한 잣대로 정의를 구현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검찰이 휘두르는 칼이 춤을 춘다면 진영대결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 또한 수사는 응하지 않으면서 정권과 수사기관 비판으로 일관한다면 말의 힘은 떨어진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미흡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 근거로 들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살아 있는 권력의 죄는 덮고 야당에 대해선 없는 죄도 만들기 위해 바닥 긁기도 모자라 땅굴까지 팔 기세”라며 검찰 수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검찰은 김 여사를 둘러싼 주가 조작 및 허위 경력 기재 의혹을 있는 그대로 규명해야 한다. 민주당이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에 의해 이재명 의혹 수사가 정쟁으로 덮여서는 안 된다. 이재명이든 김건희든 누구도 특권이 아닌 법 앞에서 만인은 공평하다는 원칙을 보여줘야 할 때다. 그럴 때 정치검찰이라는 오명도 씻을 수 있다. 법과 원칙대로 수사하는 게 정의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