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수출 둔화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간 정부가 자신하던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면 'R의 공포'가 현실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25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292억1300만 달러에 이른다. 이는 1956년 무역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66년 만에 최대치다.
이 같은 추세면 당장 이달 누적 무역적자가 300억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7월 상품수지가 10년 3개월 만에 처음 적자로 돌아섰고, 8월에는 경상수지도 적자로 전환했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하면서 "근본적으로 무역·상품·경상수지에 관한 문제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며 "8월 경상수지가 다소 우려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선진국, 특히 중국 등의 경기 둔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 반도체 사이클과 맞물리면서 과거보다 악화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당분간 적자 행진을 계속하며 경제에 부담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역수지 악화가 약세를 보이는 원화 가치를 추가로 떨어뜨리고 이는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무역적자 규모를 늘리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건전성 지표 가운데 하나인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면 경기 침체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무역적자는 증시에도 악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무역수지 감소로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환차손 우려로 한국 증시의 투자 매력이 낮아져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 압력이 커진다고 발표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수출 호재'라는 공식은 옛말이 됐다. 원화뿐 아니라 다른 수출 경쟁국의 통화가치도 함께 떨어져 환율 효과를 누리기 어려워진 것이다.
오히려 환율 오름세는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운다.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보면 올해 상반기 환율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0.4%포인트 끌어올렸다.
재정적자가 지속되는 가운데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 쌍둥이 적자 위험마저 커진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누계 기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86조8000억원이다. 정부는 연말 관리재정수지가 110조8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9년 이후 올해까지 4년 연속 재정수지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세계 경제 침체로 수출이 둔화하면 향후 우리 경제의 성장세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7%에 그친 데는 무역 부문 영향이 컸다.
2분기 경제성장률에 대한 내수 기여도는 1.7%포인트를 기록한 반면 순수출은 성장률을 1.0%포인트 끌어내렸다. 3분기 이후 교역 실적을 볼 때 하반기에도 경제 성장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스태그플레이션 경험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올해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2% 초반대까지 떨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봤다.
김예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물가와 수입물가 사이에 괴리가 지속되면서 연내 무역수지는 적자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생산 약화는 소비 부진으로 이어져 경기 수축 국면 진입 시그널이 보다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