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정치인의 언어, 대통령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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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9-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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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이 일파만파다. 비속어 논란은 진실 게임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언론은 “윤 대통령이 22일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 참석 후 이석하는 과정에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느냐’고 했다”고 보도했다. MBC가 자막을 달아 최초 보도한 이후 다른 언론도 가세하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대통령실은 다른 해명을 내놓았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16시간 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고, 미국 의회가 아니라 대한민국 야당을 향한 발언이었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저개발 국가 질병 퇴치에 1억 달러 공여를 약속했는데,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도와주지 않을 경우 민망한 상황을 우려한 발언이었다는 게 요지다.

언론 보도를 통해 비속어 논란이 확산되자 야당을 중심으로 국격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반면 국민의힘은 MBC가 악의적으로 짜깁기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MBC가 발언을 왜곡했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피력했다. 발언 당사자인 윤석열 대통령 또한 강경 대응 기조로 돌아섰다. 윤 대통령은 26일 기자들과 만나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바이든’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정면 돌파를 택했다. 윤 대통령은 해당 발언을 미 의회 또는 바이든 대통령과 연결 짓는 건 “동맹을 훼손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진상 규명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과보다는 야당 공세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윤 대통령과 여당 반응을 보노라면 아직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바이든’이든 ‘날리면’이든, 미국 국회인지 대한민국 국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국가 지도자가 외교 무대에서 비속어를 사용하고, 또 국회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화에 나선 국민의힘 의원들 주장 또한 궤변에 불과하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흡족하지 않더라도 국가대표로서 국익을 위한 활동이니 응원하고 격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쟁 대상이 되어 성과를 깎아내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김석기 사무총장도 “제 얼굴에 침 뱉기, 스스로 얼굴에 먹칠하는 꼴”이라며 민주당을 상대로 날을 세웠는데 뜬금없다.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가르치려드는지 헛웃음이 나온다. 저속한 말로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가와 국민 얼굴에 먹칠한 사람은 누구인가. 거꾸로 국민을 나무라고 국익을 운운하고 있으니 가당치 않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바꾸고, 대한민국 야당이었다고 눙치면 끝날 일인가. 야당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인정해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오히려 야당을 적으로 여기는 인식에 문제가 있다. 겉으로는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를 강조하면서 속으로는 야당을 ‘이새끼’라고 부른다면 이율배반이다. 국익에 영향을 미칠 게 빤한 혼잣말을 꼭 보도해야 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언론 또한 국익과 알 권리를 놓고 고민 끝에 결정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보도가 적절했는지 판단은 국민들 몫이다.

정치인들에게 말은 중요한 전달 수단이다. 정치 언어에는 신념과 철학, 지적 수준 그리고 수양 정도가 담겨 있다. 때(time)와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걸맞은 정치언어는 핵심이다. TPO를 벗어날 때 정치인의 말은 막말과 망언이 된다. 정치영역에서 공적 말하기와 사적 말하기를 구분하는 건 상식에 속한다. 한데 여의도 정치 언어는 거칠고 천박하다. 얼마 전 수해 현장에서 한 정치인은 “비 좀 더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했다. 또 다른 정치인은 “임대 주택에는 정신질환자가 많이 나온다”고 했다.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말들이다. 또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가고 망하면 인천간다)’, “5·18 유공자는 괴물집단”, “저딴 게 대통령”,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을 찜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징하게 해 처먹는다”,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세요. 징글징글해요”라는 막말과 망언은 품격을 잃었다.

윤 대통령은 직업 정치인이 아니다. 평생을 수사검사로 생활해왔기에 검찰 언어가 더 익숙하다. 범죄자를 상대하는 검찰 언어는 거칠 수밖에 없다. 이따금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얼마 전 윤 대통령이 자신을 “이새끼” “저새끼”로 불렀다고 했다. 당시 설마 했던 국민들은 이번 유엔총회 순방 외교에서 불거진 “이새끼” 발언을 통해 개연성에 공감하게 됐다. 정치인의 언어가 중요하다면 대통령의 말은 한층 무게를 갖는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은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을 도모하며 국격을 높여야 한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고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을 통해 국민과 접촉면을 넓혀 왔다. 출근길 약식 회견은 참신한 시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 “과거에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같은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소통 의지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 국가 정상 가운데 우리만큼 언론을 외면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부는 물론이고 ‘광화문 시대’를 약속했던 문재인 진보정권 또한 언론을 기피한 역대 최악으로 기록됐다. 일상적 만남을 회피했고 연례 기자회견조차 질문자와 질문 순서, 내용을 사전 협의하고 각본에 따라 벌이는 퍼포먼스에 그쳤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된 대표는 주권자의 질문에 답하고 국정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 국민은 이를 통해 최고 책임자가 어떤 생각으로 국정에 임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윤 대통령이 각본 없이 기자들 앞에서 견해를 밝히는 건 반길 일이다. 중요한 건 소통 내용과 질이다. 비속어 파문을 계기로 윤 대통령은 품격 있는 대통령의 언어를 고민해야 한다. 평생 수사검사로서 몸에 밴 언어습관을 바꾸고 정제된 말을 다듬어야 한다. 과거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총리는 “국가 지도자의 언어에는 지문 박힌 표현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혼과 진심을 담으라는 뜻이다. 국가 지도자의 통치 행위는 말과 글로 완성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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