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원의 정치사담] 비전과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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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원 기자
입력 2022-10-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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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기본사회' 비전 제시

  • 일관된 '기본' 철학...실현 위한 재정·예산은 미지수

  • 여야 이견도 확연...명분에는 대책 따르는 게 수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을 넘어 기본사회 30년을 준비할 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9월 28일 취임 후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기본사회’를 한국 사회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 대표가 꺼내든 기본사회는 “소득, 주거, 금융, 의료, 복지, 에너지, 통신 등 모든 영역에서 국민의 기본적 삶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이날 이 대표는 기본사회가 필요한 이유로 “노동이 생산의 주력인 시대에 합당했던 사회제도는 기술이 생산의 주력이 되는 시대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본사회로의 전환에 따라 한국 사회에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본사회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로 일했을 때부터 강조한 ‘기본시리즈’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의 정치 철학이 지역정치에 이어 중앙정치에서도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셈이다. 노동이 아닌 기술이 주도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이 대표 진단도 일리는 있다. 사회구성원 중 누구도 경제적으로 소외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인류 역사에 난제로 남았던 불평등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한국이 기록될 수도 있다.
 
문제는 비전의 실현 가능성이다. 늘 핵심 쟁점은 돈이었다. 기본사회에 필요한 재정과 예산이 따라주는지가 관건이다. 이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국가 역량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또 한국이 “초부자들에게 부가 더 집중되는 사회”라고 지적하며 법인세·종합부동산세 인하를 막겠다고 공언했다. 향후 특정 계층을 향한 핀셋 증세로 기본사회를 만들어갈 ‘곳간’을 채우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기본사회를 만들 만큼 국가재정에 여력이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난 몇 년간 나라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가채무는 올해 1000조원을 돌파했다. 2012~2023년 한국 국가채무 증가율은 연평균 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1.8%) 두 배 수준이다. 재정 지속가능성도 담보하기 힘든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지출이 불가피한 기본사회를 시도하자는 이 대표 제안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기 충분하다.
 
법인세·종부세 인하 저지와 관련해서도 야당이 정부·여당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대표 연설 직후 “유토피아가 될 것 같다”며 “현실적 재원 대책은 없다”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의 짧은 언급에서도 기본사회를 둘러싼 여·야간 확연한 이견을 엿볼 수 있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신·구 정쟁에 열을 올리는 국회 풍경은 여·야가 협치를 하리라는 기대를 쉽사리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다만 주 원내대표가 “이 대표의 제안 중 탄소중립특별위원회, 기후변화및탄소중립특위, 저출생인구대책특위와 같은 부분은 논의를 해서 국회에서 특위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인 만큼 정책 논의를 시작으로 이 대표가 대화의 물꼬를 틀 기회는 있다.
 
명분이 생겼다면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대책이 따라오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이 대표는 야당 수장으로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회 비전을 제시한 만큼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보도 보여야 한다. 국민은 더는 정치인의 말뿐인 약속을 보고 싶지 않다. 약속할 자신이 없으면 말을 말고, 자신이 있다면 정직하게 밀어붙이는 정치인을 이제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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