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딸이 이태원에 간 뒤 연락두절입니다. 일대 병원부터 다 돌아보는 중이에요."
30일 오전 6시 40분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50대 여성 안모씨는 애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안씨는 이날 새벽 딸의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 장례식장 여러 곳을 돌았지만 딸의 생사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아직 사망자들의 신원 확인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병원은 참사가 발생한 전날(29일)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연락이 끊긴 가족과 지인을 찾기 위해 수소문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새벽부터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병원에 달려온 사상자 유가족들은 "이럴 리가 없다"며 오열하기도 했다. 유족들이 모여들자 경찰은 외부인 단속을 위해 장례식장 입구의 경비 태세를 강화했다.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동과 1.3km 거리에 위치한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란 국적 사망자 1명을 포함, 시신 총 6구가 안치된 상태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이태원 참사 관련 실종 신고는 3000건을 넘은 상태다. 오전 7시 270건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폭증하고 있다. 실종자와 연락이 두절된 가족 및 지인들은 사망자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병원 응급실, 장례식장을 직접 찾아도 명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안씨는 처음 순천향대 병원을 찾은 후 4~5시간 동안 서울시내 다른 병원들을 다니며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들을 살펴봤지만, 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경찰에선 실종 신고를 하고 기다리면 연락을 준다고 했다"며 "그런데 가족 입장에선 어느 병원에 딸이 있는지 모르니 여러 병원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병원을 찾은 베트남 여성 A씨는 "언니가 어제 이태원에 갔는데, 15시간 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연락이 끊겼다"며 "병원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는 중인데 인적사항 확인이 안 된다"고 말했다. 스리랑카에서 온 B씨는 같은 국적의 친구를 찾기 위해 서울시내 온 병원을 돌고 있었다. B씨는 "이곳엔 스리랑카 국적 사망자가 없다는 얘길 들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며 "뉴스에 나온 병원들을 모두 가볼 예정"이라며 서둘렀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위치한 서울대학교병원의 상황도 비슷했다. 오전 11시께 외국인 남성 두 명과 함께 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러시아 출신 20대 여성 C씨는 "사촌이 어제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방문한 뒤 사고를 당했는데, 친구가 병원에 데려다줬다는 것까지만 들은 후로 연락이 안 된다"며 "대체 어딨는지 모르니 가까운 병원부터 다 돌고 있다"고 말했다. C씨는 기자에게 사망자 명단이라도 확인할 수 없냐고 절박하게 물은 뒤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 측은 신원 확인된 고인의 유족, 지인이 아닌 이상 사망자 안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오전 내내 시민들이 찾아와 물었지만 사망자 정보를 알려드릴 수 없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같은 병원 응급실 관계자는 "오늘 오전부터 이태원 실종자 가족, 지인들이 응급실을 많이 찾아왔다"면서도 "정부·경찰 측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하고 돌려보냈다"고 했다.
앞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앞두고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이 사고로 이날 오후 1시 기준으로 151명이 사망하고 103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했다.
사망자 151명은 순천향대병원, 이대목동병원, 서울대병원 등을 포함한 수도권 36개 병원으로 분산돼 안치된 상태다. 실종자 접수처는 한남동 주민센터에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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