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위기 경고등이 커지고 있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이른바 3고로 인한 파장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며 추락하는 실물경제와 경색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금융시장을 보면 위기가 이미 목전에 와 있는 상황이다. 실물 금융 외환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한마디로 퍼펙트 스톰의 목전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전년동기비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있어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1월 1일 발표한 10월 수출입 통계에 의하면 수출이 2년 만에 감소로 전환된 반면 수입은 여전히 증가세다. 특히 수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주요국 통화 긴축 등 글로벌 경기 둔화 영향으로 전년 대비 –5.7%로 감소했다.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약세 영향 등으로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마저 작년 동월 대비 무려 17.4%나 감소했다. 석유화학도 25.5% 감소해 타격을 입었다. 지역별 수출은 유럽연합(10.3%), 미국(6.6%)에서 증가했으나 중국(-15.7%)과 일본(-13.1%), 아세안(-5.8%)에서는 감소했다. 한국은 수출이 감소할 때 경제위기가 발생했다. 1998년 동아시아외환위기 2001년 IT버블 붕괴 2009년 글로벌금융위기 2012년 남유럽재정위기 때도 예외 없이 한국 수출은 감소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면 내년이 위험하다.
반면 10월 수입은 전년 대비 10% 가깝게 늘어났다. 3대 에너지원인 원유·가스·석탄의 수입액이 전년(109억3000만 달러) 대비 46억 달러나 증가한 155억3000만 달러로 집계돼 수입 증가세를 주도했다. 무역수지는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이후 25년 만에 가장 긴 적자 기간이 이어지고 있다.
생산 감소에도 소비 투자 수출 감소로 제조업 재고는 전월 대비 0.2% 증가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9.5% 증가했다. 제조업 재고 증가는 반도체 재고의 기여도가 컸다. 9월 반도체 재고는 작년 9월과 비교하면 54.7%나 증가했다. 앞으로의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경기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2로 0.1포인트 하락해 경기 회복 흐름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수출과 제조업이 둔화 흐름을 보이고 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소비 회복 흐름이 지연되고 있어 향후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금융시장도 살얼음판이다. 3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월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4조8429억원으로 집계됐다.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더 많은 순상환 상태로 접어든 것이다. 금융투자협회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가장 많은 금액이 순상환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발행된 회사채 264건 중 40건은 모집 금액을 채우지 못했다. 우량 채권으로 꼽히는 LG유플러스가 10월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처음으로 미매각된 게 대표적이다. SK인천석유화학 DGB금융지주 SK증권 등은 회사채 발행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수요예측을 가까스로 넘긴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발행 금리를 감수하고 있다. 교보증권(AA-급) 등 AA급 채권도 연 6%대 중반의 고금리를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회사채 시장 냉각기가 이어지자 정부는 공공기관을 상대로 회사채 발행 자제를 요청하는 등 지원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한전채, 산업금융채 등 신용도가 높은 특수채에 자금이 몰려 회사채 발행을 어렵게 하는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한 취지다. 이러한 대책이 곧바로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누적 적자가 큰 한국전력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산업은행도 산금채를 제외하면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금융시장 경색에 대처해 정부가 50조원+α, 한은이 40조원 규모의 지원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 23일 정부는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20조원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한국증권금융의 증권사 유동성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HF)의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으로 구성된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한국은행도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한국은행이 한국은행과의 대출이나 차액결제 거래를 위해 맡겨놓는 담보 증권 대상에 은행채와 한전채 등 공공기관채가 추가됐다. 이번에 담보증권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국내 은행의 자산 확보 여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의 추산에 따르면 적격담보증권으로 27조원, 차익결제이행용 비율 인상 3개월 유예로 7조5000억원 등 모두 34조5000억원 정도의 은행권 담보 부담 축소와 유동성 여력 확보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한은은 증권사·증권금융 등을 대상으로 RP(환매조건부채권)도 약 6조원 규모로 매입하기로 했다.
외환시장도 살얼음판이기는 마찬가지다. 한때 달러당 144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넉넉지 못한 외환보유액에도 불구하고 한은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1410원대 아래로 내리고 있다. 일본 엔화도 달러당 엔화 환율이 150엔 선을 돌파해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자 지난 9월에 이어 지난달에도 두 차례 비공식개입에 나서 엔달러 환율이 147엔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넘어서면 동아시아에서 외국투자자금의 유출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원화 엔화 모두 한계점에 임박한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FOMC 회의 결과에 주목하며 관망하고 있다.
이처럼 실물경제 금융시장 외환시장 모두 살얼음판을 건너고 있는데 여소야대 국회는 정쟁으로 경제살리기법안에는 관심이 없는 듯이 보여 안타깝다. 여야는 반도체지원법과 법인세인하법은 심사에도 착수하지 않고 있다. 11월 4일이면 국회에 일명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법’이 발의된 지 만 3개월을 맞는다. 이 기간 약 90건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반도체지원법은 포함되지 않았다. 반도체지원법은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묶은 패키지 법안이다. 반도체 특화 단지 조성 과정에서 기업들에 미국 등 선진국처럼 세제 지원 혜택을 높이고, 반도체 인재 양성에 필요한 규제 완화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담겼다. 그중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은 발의된 지 한 달이 넘은 9월 19일에서야 소관 상임위인 국회 산자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되어 이날 회의 때 한 번 논의한 게 전부다. 이후 세부 심사를 위해 산자위 내 소위원회로 회부됐지만, 그 뒤로는 심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3년이 넘도록 첫 삽도 못 뜨고 있다. 반도체산업을 경제안보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 대만 등과 너무 대조적이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기재위(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재벌 감세’라며 제동을 걸고 있어서다. 소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규제·노동 등 구조 개혁 방안을 포함해 기업들의 족쇄를 제거하기 위한 방안을 즉각 논의해야 한다.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총체적 경제 위기 속에 언제까지 경제 살리기 법안들을 방치할 것인가. 설상가상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애도는 당연히 우선되어야 하고 재발방지 대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자칫 다시 정쟁으로 가열되는 경우 경제살리기법은 기약할 수 없게 될 우려도 없지 않다. 이러다 대내외 경제환경이 퍼펙트 스톰 속으로 빠져들고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닥치지 않을까 큰 걱정이다.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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