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흥국생명의 조기상환권(콜옵션) 행사 연기 등 보험권에도 자금조달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이 관련 업계의 유동성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보험업계는 자금시장 경색 리스크가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체 채권 매각을 자제시키기 위한 당국의 노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동성 규제를 완화시킴으로써 보험사들의 채권 매도를 막아 시장 안정을 도모하려는 행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3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삼성생명 등 생명보험업계와 '금융시장 점검 등을 위한 보험업권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금융당국은 유동성 자산 인정범위를 활성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만기 3개월 이상 채권도 즉시 현금화 가능한 자산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행 기준으로는 만기 3개월 이하 자산만 유동성 자산에 해당한다. 지난 28일 손해보험업계와의 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공언한 금융당국은 생보업계에도 해당 방안을 동일하게 도입하기로 했다.
보험권은 일단 해당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유동성 자산의 인정범위가 넓어진 만큼 보험사가 단기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금 동원력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최근 보험권은 보험계약 건수 및 수입보험료 등 매출이 줄며 유동성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생보업계의 경우 주력 상품인 변액보험 매출 감소 영향이 실적 하락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생보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생보사들의 변액 초회보험료는 8551억7400만원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3조6216억5800만원) 대비 76.38% 줄어든 수치를 보였다. 이 같은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보험사들의 수입보험료는 전년 동기 대비 1조7580억원 감소하기도 했다. 흥국생명이 최근 자체 자금으로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하기에 무리가 있어, 콜옵션 행사를 연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일각에선 당국의 이번 결정이 보험권의 채권 매각을 봉쇄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채권시장의 유동성이 급락한 현 시점에 보험사들의 채권 물량이 쏟아지면, 시장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 현금 확보를 위해선 채권 매도도 필요한데, 이를 놓고 당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보험료 수입 감소로 자금 확보 필요성이 커지고, 금리 상승 여파에 보험사들의 채권 처분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만 2조원에 달하는 채권을 보험사들이 매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규제 완화로 현금 동원력이 커져 관련 유동성 비율이 표면적으로 높아질 수 있겠지만, 금리상승기 속 채권 손실 및 처분이 불가피해 채권 매도를 통한 자금 수혈 움직임도 보험사 입장에서는 필요하다"며 "이번 결정으로 당국에 눈치를 보며 채권 매도에 나서야 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흥국생명 사태로 특히 한국물 중 국내 보험사에 대한 글로벌 투자 심리가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라며 "최근 금융시장 흐름상 순수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기 위해선 채권 매도가 가장 좋은 대안으로 꼽힌다. 신규 채권 발행을 한다해도, 레고랜드발 채권시장이 완전히 망가진 상황 속 딜 성사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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