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영국의 집권 보수당(conservatives) 대표 겸 새 총리로 선출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42)은 골드만삭스와 헤지펀드 등에서 근무한 초엘리트 금융인 출신이다. 인도계 이민 3세로 억만장자의 딸과 결혼해 부부의 재산이 1조가 넘는 슈퍼리치인 그가 40대 초반의 나이에, 그것도 비(非)백인이자 힌두교도가 최초로 영국 정치의 수장에 오른 과정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매우 이례적이다. 몇주 전 영국은 식민지였던 인도에게 세계 경제 5위의 경제 대국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수낵의 총리 등극은 인도의 부상(浮上)과 영국이 최근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일화이기도 하다.
2015년 35세의 나이에 보수당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수낵은 자신은 완전한 영국인이지만 종교는 힌두교이고 문화유산은 인도에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2020년 보리스 존슨 총리에 의해 내각의 실질적 2인자인 재무장관( Chancellor)에 파격 발탁된다. 언론에서 힌두교도라는 점이 부각되고 경험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고리타분'한 이미지의 전임 재무장관들과는 달리 솔직하고 절제된 언어와 신선한 외모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그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대규모 부양책을 주도하면서 차기 지도자로 부상한다. 그는 올해 여름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건 도박을 결심한다. 존슨 총리가 각종 추문에 휩싸이자 그의 보수당 대표직 사퇴를 이끌어 냈고 본인은 차기 총리 경선에 도전장을 내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리즈 트러스 전 총리에 밀리며 고배를 마신다. 패배를 인정하고 잠시 후선에 물러나 있던 그에게 한 달 반 만에 대망의 기회가 저절로 찾아왔다.
새 내각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경기 부양을 한다며 성급히 내놓은 450억 파운드(약 72조원) 규모의 파격적 감세안은 '제2의 마거릿 대처'를 자처하던 트러스의 발목을 잡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10일간의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트러스와 그의 정치적 동지인 쿼지 콰텡 재무장관이 준비했던 소위 '미니 예산'은 그 이름과 정반대로 후폭풍이 어마어마했다. 고물가와 부실한 재정에 시달려온 영국에 대규모 감세를 통해 경제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트러스의 의도는 현실을 무시한 헛발질 정책이었다. 대규모 감세와 지출을 위한 정부의 재원 마련은 국채발행뿐인데 금리인상 기조에서 이러한 조치는 물가 상승을 부추길 뿐 아니라 정부 부채만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가 국내외에서 동시에 쏟아졌다.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국채시장이 마비되자 트러스는 워싱턴에서 IMF 회의에 참석 중이던 콰텡 재무장관을 급히 불러들여 해임시켰다. 그리고 존슨 총리 후임을 선출하는 당내 경선에서 8위로 조기 탈락한 제레미 헌트 후보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보건사회부장관을, 테레사 메이 내각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헌트 후보는 재무장관에 임명되자 문제의 '미니 예산'을 사실상 전면 파기했다. 시장은 비로소 안정을 찾았지만 트러스 총리의 참담한 경제 실책으로 정부와 여당의 신뢰와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의 사임은 시간문제라고 조롱하며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는 양상추와 트러스 사진을 놓고 어느 쪽이 오래가는지 유튜브 생중계를 올리기도 했다. 마침내 트러스 총리는 44일 만에 낙마하면서 영국의 최단명 총리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수낵은 2016년 6월 진행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후 5번째 영국의 총리이다. 그가 브렉시트 이후 혼돈에 빠진 보수당을 제대로 이끌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보수당은 정치적 고비 때마다 총리를 압박하고 교체하면서 당내 균열이 생기고, 영국인들의 신뢰도는 뚝 떨어졌다. 올해에는 총리가 2번이나 불명예 퇴진하면서 최근 유고브가 진행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19%로 노동당(56%)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야당은 집권 보수당의 수장이 잇따라 사퇴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했다며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위기에 빠진 보수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수낵 총리가 경제난과 당내 분열을 수습하고 다음 총선(2025년 1월 예정)에서 노동당에 승리할 수 있을지 전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은 1832년 토리당이 이름을 바꾸어 생긴 정당이다. 전신까지 따져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으로 간주된다. 2010년 이후 12년째 장기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당내 경선에선 2차대전 이후 최장수 총리인 '철의 여인' 대처의 열풍이 불었다. 1970년대 후반 케인스주의적 경제정책과 복지국가형 사회보장체제로 경쟁력이 하락하던 영국을 감세와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 국가 경제를 다시 일으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야심가인 트러스 전 총리는 '철의 여인'을 모방하려다 섣부르고 무모한 정책으로 경제에 큰 풍파만 일으키고 퇴진했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원조국가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불황이던 제조업이 몰락하고 금융과 서비스 중심으로 경제가 개편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자 영국 정치권은 유럽연합(EU)과의 연대를 탓하기 시작했다. 보수당은 영국의 EU 탈퇴 논란으로 오랫동안 당내 갈등을 노출하다가 2016년 당시 반대파이던 데이비드 케머런 총리는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투표 결과 브렉시트가 가결되자 케머런 총리와 당 원로들이 물러나고 테레사 메이 총리가 등장했으나 당내 갈등은 더욱 커졌다.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다고 해서 브렉시트가 바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역과 관세 체제, 이민,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 등 새로운 무역법 마련을 위한 협상은 험난하기만 했다. EU와 영국 간의 합의서는 영국 의회에서 3번이나 연기되었다가, 2021년 1월 31일 영국의 EU 탈퇴가 공식화 된다. 그후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11월 EU와의 47년 동반자 관계는 끝이 났다. 보리스 전 총리는 그리도 말썽 많던 브렉시트 협상을 완결하겠다는 공약으로 2019년 조기 총선에서 압승을 했다. 현재 영국 경제가 악화일로 상황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를 두고 '브렉시트의 저주'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U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면 영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해지면서 무역대국으로 변할 것이라는 보수당 강경론자들의 주장은 오늘날 날개 없이 추락하는 영국의 모습을 보면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분명하다. 트러스 전 총리는 애초 브렉시트 반대파였다가 강력한 옹호론자로 변신한 인물이다. 존슨 전 총리가 끝없이 불거지는 스캔들로 물러나자 보수당 내 우파들은 트러스 지원에 나섰다. 그러다가 트러스의 경제정책 실패로 시장이 요동치자 보수당 내 우파들도 트러스의 사임을 요구한 중도파들의 주장에 동조했다. 지금의 영국 위기가 근본적으로 브렉시트 갈등에서 출발한 것이 맞다면 이를 밀어붙인 보수당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낵은 10월 25일(현지시간) 오전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총리로 임명된 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 앞에서 첫 대국민 연설을 했다. 그는 "성장 추구는 숭고한 목표이지만 리즈 트러스 총리는 몇 가지 잘못을 했고 나는 이를 바로잡으라고 총리로 뽑혔다"며 영국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안정과 신뢰를 정부 핵심 의제로 삼을 것이며, 이는 앞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다 소비 위축으로 영국은 이미 트러스 전 총리가 취임했던 9월부터 경기 침체의 길로 들어섰다. 수낵 새 총리에게는 경제 살리기 못지않게 어려운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 정부와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또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부채 문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건전한 재정정책이 필수이다.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국 정부는 오랫동안 긴축재정을 펼쳐온지라 향후 지출을 계속 줄이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 가계에 대한 지원 축소는 정치적으로 너무 민감한 사안이다. 헌트 재무장관이 취임 이후 트러스의 감세안 규모 450억 파운드에서 320억 파운드를 철회했지만 여전히 긴축강도를 늦추기는 힘든 상황이다. 결국 사회복지나 국방비 예산을 축소하거나 인기 없는 정책인 증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수낵에게는 불편한 선택이다. 헌트 재무장관은 이미 법인세가 내년 봄 19%에서 25% 인상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은 영국이 경기 부양책을 포기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외치며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1992년 독일이 통일 후유증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 마르크화가 폭등했다. 이때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며 자국 통화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영국은 시장과 대결을 택했다가 조지 소로스를 필두로 한 세계 헤지펀드의 융단 폭격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30년이 지나 영국은 비슷한 위기를 자초했다. 글로벌 금리인상과 긴축 재정에 역행하며 홀로 확장 재정을 택했다가 시장에 굴복한 것이다. 지금 영국의 위기가 단순히 트러스 전 총리 한 사람의 패착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근본적 원인은 영국의 전반적인 국가 경쟁력 약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세계 금융시장이 극도로 예민할 때는 단 한번의 잘못 던진 '돌팔매'도 거대한 분노의 파도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우리 정책당국자들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가 향하는 길목 곳곳은 지뢰밭이기 때문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