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전선’이 관리하는 베트남 선거는 5무(五無)가 특징이다. 첫째, 현수막이 없다. 재활용이 안 되는 현수막은 선거 후에 처리하기 곤란한 쓰레기가 된다. 친환경 소재로 재활용되면 그래도 나은 편이나 재활용되는 양은 많지 않다. 쓰레기로 소각하면 온실가스 배출로 대기 환경이 오염된다. 현수막으로 걸려 있을 때는 도로 미관을 해치고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베트남에는 거리에 선거 현수막이 하나도 걸리지 않아 폐해가 없다. 둘째, 선거운동원이 없다. 선거 때만 되면 확성기를 틀고 노래와 율동으로 유권자 시선을 끌기 위해 거리마다 시끄럽게 하는 선거운동원이 전혀 없다. 조용한 선거가 기본이다. 셋째, 선거유세와 선거 벽보가 없다. 유권자들 앞에서 목청을 돋우는 선거유세가 없으니 당연히 유세용 차량도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입후보자의 인생 역정이 어떠했는가? 그동안 국가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가? 하는 점이 국회의원 입후보자 추천에 가장 중요한 척도다. 선거용 벽보로 담벼락을 도배하는 일이 없다. 선거 벽보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나 주거지 공용 알림판과 투표 장소에 A4 용지 크기에 인쇄한 후보자 이력을 게시하는 게 고작이다. 넷째, 연설비, 홍보물 제작비, 방송 광고비 등에 들어간 선거비용을 득표율에 따라 보전해주는 선거 공영제가 없어 선거로 인한 국고 낭비가 없다. 선거 공영제는 재력 없이 입후보하지 못하는 유능한 사람에게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주고자 하는 입법 취지는 좋은데 베트남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유능한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다섯째, 재·보궐 선거가 없다. 당선인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 당선이 무효가 되어 재선거를 치르거나 선출된 의원의 사퇴, 사망, 실형 선고 등으로 인해 그 직위를 잃어 공석 상태가 되어도 보궐선거를 실시하지 않는다. 유권자는 선거구별 의원 정수만큼 입후보자에게 투표하고, 50% 이상 득표한 후보자 가운데 다수 득표자 순으로 당선자가 정해진다. 따라서 선거구별로 50% 이상을 득표한 후보자가 없을 때에도 결선 투표 제도가 없어 해당 선거구는 국회의원이 공석이다.
◼ 조국전선의 국회의원 후보 추천 조건
베트남에서 5년마다 한 번 실시되는 선거에서 국회의원과 함께 시‧군‧현(縣) 의원도 동시에 선출한다. 선거에 출마하려면 ‘조국전선’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현재 베트남 조국전선중앙위원회 도반찌엔 위원장(59)은 소수민족인 산지우(Sán Dìu)족 출신이다. ‘조국전선’은 입후보 신청자 자질을 심사할 때 신청자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 과거 경력을 면밀하게 검증한다. 예를 들면 신청자 가족 가운데 프랑스 식민시대에 프랑스 측에 조력했거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때 적국과 내통한 자가 있으면 추천에서 제외된다. 범법자, 병역기피자, 이중국적자, 체납자, 파렴치범, 공금 횡령, 밀수범, 토지사기범, 마약사범, 폭력범 등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자들은 초기에 걸러진다. ‘조국전선’은 엄격한 입후보자 자격 심사기준을 통하여 자질을 갖춘 국회의원 입후보자를 추천하여 국회 품격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심사의 기준은 첫째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헌법을 수호할 애국심과 충성심이 있는가? 그리고 국가의 공업화와 현대화 사업을 견인하고, 국민을 잘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민주화, 문명화와 공정한 사회 건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둘째는 법을 집행하는 데 근검염정(勤儉廉正)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도덕적 품성이 있는가? 관료주의, 탈법행위, 부정부패와 공직자들의 권위적인 태도를 척결할 투쟁성이 있는가? ‘근검염정(勤儉廉正)’과 ‘지공무사(至公無私)’는 호찌민 주석 국가 통치의 기본 행동 철학이었다. 결국 ‘조국전선’은 호찌민 주석의 정치 철학에 부합하는 인물들을 추천하고, 추천된 후보들 가운데서 국가를 이끌어갈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것이다. 셋째는 국정을 책임지는 국회의원의 임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 즉,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의견을 듣고, 국민에게 대중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가?다. 국민과 소통하는 능력과 도덕성을 국회의원의 추천 잣대로 삼고 있어 국민에게 지탄받는 국회의원이 당선되는 일이 없다.
◼ 특권 없는 베트남 국회의원
또한 베트남에는 다수결주의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숨어 당리당략에 따라 절차를 어겨가며 편법으로 법을 제정하는 야합 정치는 없다. '위안부' 피해자 복지를 위한 기부금을 횡령하고도 특권을 누리고 있는 국회의원은 베트남에 있을 수가 없다. 한국은 정치가 나라를 병들게 한다.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킨다. 표를 의식한 퍼주기식 인기 영합주의 정책이 국고를 탕진하고 민생을 어렵게 한다. 베트남 국회의원들은 국가 경제 발전과 국방을 위해서는 오로지 한 덩어리가 된다. 반면에 한국 정치인들은 미국, 중국을 살피며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익만 챙긴다. 누가 사드 배치나 쿼드 가입 문제를 언급하면 중국의 경제 보복을 말하며 반대한다. 안보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다. 경제 보복을 우려해 중국 눈치를 본다. 베트남에는 중국에 편향적인 정치인은 없다. 베트남 국민은 과거 역사에서 외세를 이용해 왕위를 보존하려 했다가 나라를 망치고 백성들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 왕을 잘 기억하고 있다. 레(黎) 왕조(1428~1788) 마지막 왕 찌에우통(昭統·1765~1793)은 떠이선(西山) 농민혁명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1788년 청나라에 황태후를 보내 원병을 요청하였다. 찌에우통은 원병으로 온 청나라 군사 29만명을 등에 업고 떠이선(西山) 농민혁명군에 협조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였다. 이에 응우옌후에 장군이 이끄는 떠이선 군은 1789년 정월 청나라 군을 기습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예기치 않은 청나라군의 대패는 찌에우통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찌에우통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신하 25명과 함께 패퇴하는 청나라 군사를 따라 연경으로 갔다. 그러나 청나라는 떠이선 군과 전쟁이 재발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들을 철저히 외면하였고, 찌에우통은 치욕적인 삶을 살다가 1793년 이국에서 생을 마쳤다. 왕이 매국노가 된 것이다. 베트남 역사서인 황려일통지(Hoàng Lê nhất thống chí·皇黎一統志)는 찌에우통에 대해 “예부터 이제까지 이렇게도 비참했던 왕은 일찍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찌에우통은 베트남 민족에게 치욕을 준 왕이었다. 비록 청나라 지배를 받을지언정 찌에우통은 허수아비 왕으로라도 왕위를 연명하려고 했다. 청나라로 가지 않고 박닌성 고향으로 피신했던 왕비는 1804년 찌에우통 시신이 돌아오자 염습을 마친 뒤 음독하여 39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자고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국가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외세에 의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중국에 의존해 독립을 유지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정치인의 역량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부족하고 애국심, 애민정신이 없으면 경제인들이 땀 흘려 일궈 놓은 수출 규모 세계 7위, 경제 규모 세계 11위라는 성과도, 한류 열풍으로 올라간 대한민국 위상도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된다. 한국 국회의원 가운데에도 유능하고 민족의 미래를 설계할 줄 아는 뛰어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인재들이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국민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의 난맥상이 화면을 통해 실시간 방영되면서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이후에야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데 반하여 베트남은 선출 전에 의원의 자질을 철저하게 심사하여 후보로 추천한다. 베트남은 어떤 경우에도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제도화해 놓았다.
2024년 4월 10일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각 정당에서는 공천심사를 엄격히 해서 국회의원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 애국심을 검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여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이고 국회의원 특권을 국회의원 스스로가 포기한다면 대한민국은 1등 국가를 목표로 고공비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가 비상하는 대한민국의 날개를 잡고 있으면 안 된다. 국회를 혁신하는 것이 국가를 도약시키는 첩경이다. 베트남은 조국전선이 국가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국격을 살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베트남조국전선은 ‘홍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추동력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 국회의원의 자질과 국격은 ‘조국전선’이 지킨다.
안경환 필자 주요 이력
▷한국글로벌학교(KGS) 이사장 ▷하노이 명예시민 ▷전 조선대 교수 ▷전 한국베트남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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