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극명하게 둘로 갈라진 미국 …퇴보하는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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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2-11-1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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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교수]


극단적인 지역주의, 이념 갈등, 금권선거, 그리고 보스정치. 언뜻 보면 과거와 현재의 한국 정치를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 단어들은 오늘의 미국 정치를 더욱 잘 대변한다. 이 점이 이번 화요일에 있었던 미국의 중간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푸른색의 민주당 지역에서는 여지없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고, 붉은색의 공화당 지역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미국인들은 낙태, 이민, 인종 등 첨예하게 갈라진 이념과 이슈에 따라 표를 던졌다. 펜실베이니아 등 승패를 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립 지대에 수백 억 달러에 달하는 선거 자금이 살포되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막후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후보들을 공화당 후보로 밀어붙여 보스로서 킹 메이커 역할을 했다. 모두 민주주의의 모범국이라는 미국의 위상에 맞지 않는 퇴행적인 모습이다.

그 결과 미국 중간 선거는 철저하게 둘로 갈라진 미국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대개의 중간 선거가 대통령이 속한 당에 패배를 안겨 주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다. 정파성이 극에 달한 선거 분위기에서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왔고 이에 따라 민주당이 예상보다 선전한 것이다. 공화당이 하원의 다수당 위치를 되찾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양당 간 의석수 차이는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최종 선거 결과가 나오려면 며칠이 더 걸릴 수 있는데 공화당은 435석 하원에서 10석 정도 우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수당이라 해도 입법 과정을 주도할 수 있는 절대적 우위는 아니다.

상원의 선거 결과는 더욱 치열하게 갈라져 있다. 100석의 상원 의석을 민주, 공화 양당이 50석씩 나눠 가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선거 전과 같은 결과다. 한국 시간 목요일 현재는 민주당이 48석, 공화당이 49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현재 추세라면 민주당은 애리조나, 공화당은 네바다주 의석을 추가로 차지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마지막 남은 한 자리, 즉 조지아주 의석을 갖고 또 다른 경합을 할 가능성이 높다. 2년 전처럼 조지아주 어느 후보도 50퍼센트를 얻지 못해 한 달 후 결선 투표를 하게 되는 것이다. 2년 전처럼 민주당이 이기게 되면 정확히 50 대 50의 의석 분포가 되고 이 경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권을 가지게 되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는 것이다.

최종 선거 결과를 보려면 몇 주 더 기다려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철저하게 양분된 미국 의회의 모습이다. 이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후반 2년 동안 새롭고 야심찬 국정과제를 들고 나오기는 어렵다. 현상 유지를 하면서 지난 2년간 추진하던 과제를 마무리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아직 잡힐 줄 모르는 인플레이션을 타개하기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고 여성의 낙태권을 제한하는 최근 연방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밖에도 감세, 이민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의회가 양분된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큰 성과를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외 문제에 있어서도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중국과의 대결 구도는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시진핑 주석의 세 번째 연임과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위협 등으로 양국 관계에서 긴장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공화당이 축소하기를 원하지만 이 점에서도 큰 변화는 어렵고 전쟁의 진행 상황에 따라 정책이 연동될 전망이다. 한국 자동차 업계 등에 피해를 줄 인플레이션 감축안(IRA)은 한국에게 있어 중요한 사안이지만 여기서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내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대립하는 민주, 공화 양당이지만 대외 정책에 있어서는 그 대립의 정도가 훨씬 약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미국의 정치가 퇴보하고 미국 사회가 철저하게 분열되는 이유가 무엇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사회 분열이 심화된 이유 중 하나로 전문가들은 왜곡되고 편중된 정보 유통을 들고 있다. 즉 미국인들은 자신의 이념과 신념과 맞아떨어지는 정보만을 원하고 쫓는다는 점이다. 이 점은 현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라는 명분하에 부정확하고 왜곡된 정보들이 난무하고 시민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이를 맹신하기 때문이다. 소위 울림통 효과를 통해 자신이 듣고 싶은 얘기만 듣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이 더욱 확고해지는 확증 편향 현상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통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 모두에게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적 시민들은 CNN,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진보 매체를 선호하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인사들은 폭스뉴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보수 매체를 선호한다. 이러한 성향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더욱 증폭된다. 특히 팔러, 브라이트바이트, 뉴스맥스 등 극우 보수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음모론들은 모든 것을 불신하게 만든다. 합법적인 선거 결과를 불신하고,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효과를 부정하고, 엄연한 희생자가 있는 대형 총기 사고를 정부의 조작으로 간주하는 등 결국은 작년 초 의회 난입 등 폭력적인 사태로까지 이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2년이 지난 현재에도 많은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을 도둑맞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현실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진영 논리에 휩싸여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있어 악의적이고 근거 없는 거짓 정보들이 큰 역할을 한다. 광우병,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으로 큰 사건과 이슈에 대해 이런 현상은 더욱 극심해진다. 사실의 진위 확인 없이 출처도 불분명한 정보를 맹신하고 이에 따라 행동한다. 여기에는 역시 전통 매체나 인터넷 매체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독자와 시청자들을 늘리고 계속 붙들어 놓으려는 의도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선정적인 정보를 거리낌 없이 보도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는 더욱 갈라지고 민주주의는 퇴보하게 된다. 이 점에서 오늘 한국의 모습은 미국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한국이 처음 민주주의를 미국으로부터 도입할 때 의도했던 바는 분명 아니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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