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우리 경제는 올해보다 더 녹록지 않은 환경에 노출돼 있다. 글로벌 경기 하강으로 수출 증가세가 크게 감소하고 투자 부진도 계속되면서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경기 둔화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고물가 지속,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고수라는 3대 변수 속에서 경기회복 모멘텀을 찾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언제든 높은 파고를 그대로 맞게 된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과거와 같은 경제위기는 없다'고 단언한다. 세계 경제 둔화에 따라 한국 경제의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건전한 대외건전성을 바탕으로 정부에서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다만 2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대출과 부동산 시장 냉각 가능성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했다. 더 이상 시장 안정화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과감한 규제완화와 구조개혁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국내외 불확실성 커지며 다시 한번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이하 김흥종) =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을 보면 최소 내년 봄까지는 강달러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르더라도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다시 오진 않을 것이다. 1400원을 웃도는 환율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고 우리는 그 수준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이하 최광해) =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으며 정부의 대외건전성 평가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나라는 2014년부터 순채권국으로 전환돼 올해 6월 기준 사상 최고치인 7441억 달러 규모의 순대외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원·달러 환율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연상시킬 정도로 높아졌지만 국내 경제가 취약해서가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 금리인상에 따른 '킹달러'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미국의 10월 물가지표가 발표된 이후 연준이 금리인상 속도 조절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로 킹달러 기조가 후퇴하고 환율이 하루 동안 무려 59원이 떨어진 사례가 대외건전성 개선으로 외환위기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이하 정중호) = 과거와 같은 외환위기가 다시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외건전성 측면에서 순외환자산과 외환보유액이 꾸준히 늘어났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이하 정규철) = 미국 금리가 가파르게 인상되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줄어들고 금융선진국인 영국에서도 국채시장이 불안정 해지기도 했다. 이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회사채 시장이 일시적으로 경색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외환위기가 발생할 정도는 아니다. 외환시장이 일시적으로 불안정해지더라도 외환위기를 방지할 만한 정책대응 여력이 있다고 본다.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이하 이승석) = 가능성이 없진 않으나 희박한 수준이다.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경제 체질 개선이 충분히 이뤄졌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이하 우석진) = 1997년과는 상황이 다른 만큼 외환위기 발생 가능성은 낮다. 다만 영국도 순식간에 위기가 찾아온 사례에서 보듯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제로는 아니다.
고환율, 고물가 상황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전망 나오고 있다. 무역수지도 악화하고 있는데 정부가 신경 써야 할 국내 불안요소로 어떤 것이 있나.
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이하 이충재) =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연준의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레고랜드 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혼란까지 더해져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부동산 PF 부실은 대출 취급 금융기관들의 부실 문제를 야기해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작지 않은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가계부채 문제를 고려하면 부동산 PF대출 부실이 부동산 가격 하락과 그에 따른 가계부실 문제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중호 = 금리인상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 내년 성장률이 2%가 채 되지 않다고 전망한 것도 금리인상 효과가 추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게 되면 기업과 가계 모두가 어려워지게 된다. 사업자 중에서도 자영업자가 힘들어지게 되고 당장 2000조원 가까운 가계부채 관리도 문제다.
글로벌 경제가 좋지 않다보니 우리나라의 수출이 부진할 우려도 있다. 특히 반도체가 많이 부진한 상황이다. 전체적으로도 실물경제가 좋지 않게 된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자금경색이 발작적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레고랜드만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하강국면 돌입과 금융회사로의 부실 전이까지 생각해봐야 한다.
김흥종 = 우리 수출의 약 24%를 차지하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 부진은 가전·반도체·자동차 등 최종재 수출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수출이 중요한데 해외의 수출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성장 여력이 많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석진 = 현재 정부는 리더십이 상실돼 있다. 이태원 사태도 그렇고, 강원도의 중도개발공사 사태도 그렇다. 정부가 조기에 개입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하지 않았다. 시장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명확하게 리더십을 세울 필요가 있다.
고환율과 고물가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인데 이 과정에서 상처 받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명확한 타깃을 위한 재정정책이 동반돼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취약차주와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이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만큼 정책 금융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정규철 = 환율이나 무역수지 등 표면적으로 나오는 수치에 직접 대응하기보다는 이면을 살펴보고 정책방향을 잡아야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건전성을 강화해 위기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다. 경기둔화 시기에는 부실기업, 한계기업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정부에서 수익성이 낮은 기업을 계속 지원해준다면 우리 경제에 부실이 더 크게 누적되고, 외부 충격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부실기업이 시장에서 구조조정이 되고 그 자리에는 유망한 신생기업이 진입할 수 있도록 하면서 경제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금리가 올라가면서 1997년, 2008년의 부동산 시장과 비교하는 이들도 많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이충재 = 최근 우리나라 건설산업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높은 물가에 대응한 금리상승과 수출 부진으로 건설 경기 침체 시그널이 켜지고, 그 와중에 부동산 시장은 정책의 재개편을 예고해 혼란을 키우고 있다.
주택은 장기간 지속됐던 상승 사이클을 지나 내년엔 수도권이 2.0%, 지방은 3.0% 하락해 전국이 2.5% 하락할 전망이다. 올해보다 내년의 하락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많은 국민이 집값이 높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높은 금리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가격에 미치는 하방 압력이 쉽게 제거되기는 어렵다.
정중호 = 부동산 시장이 대세 하락기인 것은 맞지만 최근 집값이 워낙 많이 올라서 일부 조정되거나 안정화되는 국면으로 볼 수도 있다. 시장이 완만하게 하락하면 그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빠르면 시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내년 부동산이 하락 둔화하면 시장이 안정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출과 인허가 등 시장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정부의 추가적인 규제 완화와 정책이 필요하다.
최광해 = 부동산 시장이 내년 상반기까지는 위축되나 하반기부터는 반등할 것으로 예상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는 시장금리가 하향 안정될 때 효과가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행이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를 인상하고 하반기에는 동결하겠지만, 2024년에는 경기둔화와 물가안정을 배경으로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한다. 시장금리는 이를 선반영해 내년 하반기부터 하향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 물가가 조기에 안정되면 시장금리 하락폭이 커질 수 있어 부동산 규제 완화 효과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석진 = 2008년도에는 부동산이 15~20% 조정됐다. 전 세계적으로는 30~40%까지 조정됐는데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과거와 비교해 보면 아직 조정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이승석 =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을 하게 되면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시장 중의 하나다. 집값이 빠진다는 건 주택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고 이는 소비를 위축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해 경제 전체의 역동성이 떨어지게 된다.
집값이 하락하더라도 거래는 이뤄져야 연착륙으로 이어지게 될 텐데 지금은 매도인, 매수인 모두에게 규제가 너무 많다. 이미 주택 시장은 거래 위축에 따라 관망세로 돌아섰고 거래 멈춤 현상까지 나타났다. 금리를 이길 수 있는 시장은 없다. 지금 규제를 풀어도 주택 가격이 올라간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럴 때 부동산 규제를 조금 더 풀어줘야 연착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외여건상으로는 기준금리 올려야 하지만 국내 가계대출이나 레고랜드 사태를 보면 올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폴리시믹스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인데 어떻게 보나.
우석진 = 한국은행이 금리를 안 올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똑같은 속도로 올릴 필요는 없다. 방향만 따라가면 된다. 지금의 금리 인상이 미국과 우리나라만의 문제면 우리가 쫓아가야 하지만 지금의 통화정책은 전 세계 모두의 문제다. 우리 경제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체력하에서 꾸준히 올라가면 된다.
정규철 = 한국의 물가상승세가 높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 다만 경기가 안 좋아지는 국면에서 유동성을 빠르게 줄이면 가계나 기업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통화정책에서는 금리를 천천히 올리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재정정책도 통화정책에 맞춰 긴축적일 필요가 있지만 이 시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이승석 =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우리나라도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건 알지만 반드시 따라갈 필요는 없다. 대내외 상황을 고려해 금리 인상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금리를 무작정 미국을 따라 올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다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정책 믹스를 해야 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시장에서 두 가지 기준으로 정책을 펼치다 보면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지금은 정책 믹스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금융당국이 연체율 등을 디테일하게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률이 2%, 내년엔 최악의 경우 1%대까지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경기 살리기 위해 어떤 방안에 초점을 둬야 하고, 대책은 어떤 것이 있나.
우석진 = 항상 어려울 때는 혁신을 해야 한다. 규제를 풀고 혁신하는 것이 기본적인 교과서적 해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신뢰를 받아야 한다.
정규철 = 최근 1% 후반의 성장률을 예상하는 기관이 많아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그 결과로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 내년에는 경기가 둔화되고 인플레이션도 지금보다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금리를 지금보다 천천히 인상할 필요가 있다. 경기둔화에 대응해서 경기부양 정책을 쓰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올라갈 수 있고 그러면 금리를 더 많이 인상하게 되면서 정책 간에 엇박자가 날 수 있다. 당분간은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승석 = 금리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를 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경기를 위축시키고 있는 원인들이 대외적 요인이어서 국내에서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당장은 살릴 수 없지만 조금 긴 호흡을 가지고 5~6년 뒤를 대비하는 중기 장기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금리가 이렇게 급격하게 오르면 가계 부문에서는 한계가구가 힘들게 되고 이후 취약가구가 될 수 있다. 기업 중에서는 한계기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될 텐데 이럴 때 취약 가구나 한계 기업 모두를 살리기 위해 선심성 정책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외환위기 이후 IT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구조조정 덕분이었다. 굉장히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했었다. 지금 주력 산업들은 전통 산업에 머물러 있다. 2차 전지나 바이오헬스 같은 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의존도도 너무 크다. 경제 체질이나 구조를 개선하고 개혁해 나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당장 1~2년을 걱정해서 취약가구나 한계 기업에 도움을 주는 정책 위주로 나가게 되면 미래엔 희망이 없다. 이런 위기상황일수록 넓은 안목과 긴 시각을 가져야 한다.
위기 이후 대응책도 중요하다. 과감한 규제개혁과 근본적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이충재 = 그동안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옥죄어 온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해야 한다. 각종 규제지역, 전매제한 등 행위 제한, 취득세와 보유세 등 조세제도에 대한 규제를 신속히 완화할 필요가 있다.
주택경기의 경착륙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무주택자뿐 아니라 1주택자 및 다주택자에 이르기까지 수요를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최근의 규제 완화로 수요층이 확장되는 효과를 얻었지만 시장의 움직임을 돌려세우기에는 부족했다. 시장 상황에 맞춰 임대사업자 부활, 세제 완화 등 보다 적극적인 규제 완화책을 사용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다.
정규철 = 그동안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단기적인 이슈에 집중한 측면이 있다.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을 미룬다면 경제 역동성은 저하되고 성장률은 더 빨리 하락하게 된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사회 구조가 전환되는 시기에 구조개혁은 필수적이다. 그동안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어려워 구조개혁이 미진했던 것 같다. 경제의 활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승석 =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당장 1년 이내에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는다. 중장기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구조개혁을 해야 된다. 우리나라의 유니콘 기업은 성장할 수 없는 구조가 돼있다.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는 걷어내야 한다. 규제를 두고 이익 단체들에 휘둘리지 말고 정부가 중심을 잡고 구조 개혁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부동산 시장도 지금은 규제 일변도다. 한번 거래가 멈춰서기 시작하니 주택 시장 자체가 마비가 됐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높아진 금리에 맞춰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 수준인데 과거에도 5%일 때가 많았지만 거래가 멈추진 않았다. 지금 모든 거래와 성장을 멈추게 하고 있는 규제와 장벽을 없애서 시장이 정상화되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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