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국가 중 최상위 수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0% 수준으로 절대적이다. 부존자원이 없어 우수한 인적자본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 및 생산하여 수출하는 구조가 우리 경제의 태생적 특성이자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생산한 재화 및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합산한 국내총생산(GDP) 중 제조업의 비중은 근래 28% 수준으로 독일의 22%, 일본 20%, 미국 11%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55% 선으로 겉으로 보기에 제조업의 두 배에 이르지만 들여다보면 유통, 물류, 금융 등 많은 부분이 제조업과 직결되어 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제조업을 기반으로 정보통신(ICT), 서비스업 중심으로 성장하다가 금융이 무너지며 경제 전체가 위기 상황에 빠지자 이에 대책으로 2010년 무렵부터 각국이 약속이나 한 듯이 제조업 재무장 정책에 나선 것은 우리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경제에서 제조업의 비중이나 영향은 숫자 자체보다 훨씬 크고 절대적이며, 이는 우리 경제의 경우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듯 중요한 제조업을 올바로 발전시키려면 우리나라에 만연한 제조업에 대한 심각한 오해의 불식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 제조업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정확한 전략이나 정책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제조의 의미와 정의에 대한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조라 하면 흔히 공장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것이 오해의 발단이다. 제조의 의미에는 광의의 제조와 협의의 제조가 있다. 협의의 제조는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을 의미하는 반면, 광의의 제조는 제품의 마케팅 기획, 개발, 생산, 판매, 서비스 등 가치사슬 전반을 의미한다. 제조강국 독일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인 ‘인더스트리 4.0’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자 우리나라도 벤치마킹하면서 ‘스마트 제조혁신’ 정책을 시작하였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우리나라의 ‘스마트 제조혁신’이 제조업 혁신에 목표를 두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독일은 광의의 제조에 기반하고 있고 우리는 협의의 제조가 중심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현장 견학을 가면 단골 코스로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 등 주로 공장을 둘러보고 ‘스마트 공장’이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이라 생각하는 건 큰 오해이다.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은 협의의 제조인 생산 현장의 혁명만이 아니라 광의의 제조 전반을 관통하는 비즈니스 모델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부터 독일은 기존의 대량 생산·소비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로는 대규모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강력한 원가 경쟁력을 가진 중국을 이길 수 없다는 국가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제조업 혁신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통하여 개인화 및 맞춤화 생산·소비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는 전략이 ‘인더스트리 4.0’ 정책의 요체이다. 즉, 개인화 및 맞춤화로 제품을 다양하게 소비자 개개인의 개성과 니즈에 맞추어 주되 대량 생산에 필적하는 효율로 원가를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성과 기업이 원하는 효율성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만이 아니라 마케팅 기획, 제품 개발, 판매, 서비스 등 기업의 전 기능의 혁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스마트 제조혁신’ 정책도 지금까지 주력해온 ‘스마트 공장’에서 진일보하여 ‘스마트 기업’으로 목표를 고도화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 제조혁신’의 주체도 공장장 등 생산 현장 직원만이 아니라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기업 임직원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로, 제조업 위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시급하다. 일각에서의 ‘제조업은 이제 끝났다’는 섣부른 주장은 제조업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나온 심각한 오해이다. 전통적 제조강국인 미국이 신경제를 표방하며 제조업 기반을 해외로 돌리면서 제조 경쟁력은 물론 일자리 창출 및 혁신 기반 자체를 약화시킨 것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고 중국에 글로벌 패권을 뺏길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은 제조업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이다. 미국의 이러한 자각과 반성이 미·중 패권전쟁에 돌입한 트럼프, 바이든 정부의 공통적 인식이다.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높고 수출의 제조업 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나라 경제 구조를 감안하면 제조업은 우리나라가 절대로 사수해야 하는 보루이다. 제조업이 서비스업의 수요를 견인하고 부가가치, 고용 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와 혁신의 원천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사태와 함께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며 제조업의 중요성은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다. 군사 강국도 강력한 제조업 역량이 기본인 것이다.
셋째로, 제조업 범위에 대한 오해의 불식도 시급하다. 일부 벤처투자 업계에서 투자 대상 산업 분류를 바이오, 정보통신(ICT), 모빌리티, 플랫폼, 소재, 제조 등으로 나누는 걸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이 역시 제조업을 전통 굴뚝산업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사례이다. 사실상 이 분류 중 일부 플랫폼 분야를 제외하고 모두 제조업이거나 모빌리티처럼 제조업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융합한 산업이다. 우리 정부가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미래차 산업도 대표적 제조업이다. 제조도 협의의 제조에서 벗어나 광의의 제조로 전환해야 하는 것처럼 제조업에 대한 인식도 협의의 전통 제조업에서 벗어나 광의의 새로운 첨단 제조업은 물론 최근 세계적 추세인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연관 산업을 융합한 거대한 신제조업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제조가 끝난 것이 아니라 진화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로, 정부의 제조업 정책도 이러한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진화 발전해야 한다. ‘스마트 공장’ 정책은 ‘스마트 기업’ 정책으로 진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제조업 및 연관 산업을 관장하는 정부 조직도 진화 발전이 시급하다. 제조업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ICT 산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서비스업은 기획재정부, 농수산 및 식품 산업은 농림수산식품부, 제약 바이오 산업은 보건복지부와 식약처 등 부처 간 칸막이가 높아서는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며 융합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를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정부 부처를 관통하는 협업 체계와 같은 정부 조직 및 거버넌스 혁신이 시급히 논의되어야 한다.
인식이 바뀌어야 전략과 정책이 바뀐다. 제조와 제조업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우리 기업과 정부의 전략 및 정책의 변화가 시급하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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