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 중인 남부 이자르2와 네커베스트하임2, 서부 엠슬란트는 2023년 4월 15일까지 운전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숄츠 정권은 지난 10월에 가동 연장을 위한 원자력법 개정안을 각의에서 결정했다. 이어 연방의회(하원)가 찬성 다수로 가결했고 이번에 정식으로 상하 양원에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메르켈 전 정권은 동일본 대지진 후인 2011년 5월에 탈원전을 결정해 단계적인 폐로 작업에 착수했다. 2022년 말까지 이자르2 등 남은 3기에 대한 운전을 정지해 ‘원자력발전 제로’를 완료시킬 계획이었다.
그 흐름을 바꾼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화력발전에서 사용하는 가스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원전 활용을 요구하는 여론이 올여름부터 높아졌다. 독일 공영방송 ARD가 지난 8월 4일 공표한 여론 조사에서는 2022년 말 이후에도 원자력발전 가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회답이 ‘수개월 연장’과 ‘장기 이용’을 합해 82%에 달했다. 2022년 말까지 원전을 모두 멈춰야 한다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숄츠 정권은 이 같은 여론과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를 심사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토대로 원전 복귀를 추진했다.
올 들어 지금까지 독일 에너지 사정을 살펴보자.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독일을 포함한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의 국영 가스프롬은 7월 하순 이후 독일로 이어지는 주요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가스 공급량을 종래 계획에서 80% 줄였다. 독일에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장 8%를 넘어 역사적인 고물가에 이르렀다. 가을부터는 가스 가격 급등이 광열비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부담이 커졌다. 자원 가격 강세로 인한 수입 증가로 소득 유출이 계속되면서 독일의 무역수지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개인소비 위축 등 실물경제도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독일의 겨울은 길고 춥다. 난방 수요가 높아지는 겨울철에 가스 저장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체 전원으로서 숄츠 정권은 원자력발전 활용론을 들고 나왔다. 숄츠 정부는 그가 이끄는 중도좌파 독일사회민주당(SPD)과 환경정당인 녹색당, 산업계와 가까운 자유민주당(FDP) 등 3당 연정 체제다. 원전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FDP다. 린트너 FDP 당수(재무장관)는 “모든 가능성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당면한 원자력발전 가동에 매우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FDP의 원전 활용 방안은 가동 중인 3기에 2024년까지 연장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원료인 농축우라늄은 러시아가 세계 생산량 가운데 50%를 차지한다. 따라서 가스에서 우라늄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러시아 의존에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녹색당은 신중론이 뿌리 깊다. SPD도 녹색당에 가까운 입장이다.
연정 내 갭을 메꾸는 절충안으로 모색된 ‘수개월간 한정 연장’은 일단 원전 운영 사업자로서는 새롭게 연료봉을 조달할 필요가 없어 실현을 위한 허들이 낮다. 하지만 전력 공급량 중에서 원자력발전 비율은 최근 10년 사이에 약 20%에서 6% 전후로 떨어져 대체 전원으로서 큰 효과는 바랄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숄츠 총리가 이끄는 SPD는 지지율이 약 20%로 제1야당 CDU(30% 미만)에 역전되었다. 겨울이 되면서 난방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민 사이에서는 숄츠 정권의 인플레이션 대책이 불충분하다는 불만이 싹트고 있다. 이 때문에 탈원전의 새로운 기한이 된 2023년 4월을 넘어 재연장론이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일본에서도 원전 환경에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경제산업성이 지난 30일 ‘원자력발전소 재건과 운전기간 연장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후 재가동조차 여의치 않아 원전은 터부시되는 분위기였다. 장래에 걸친 전력의 안정 공급과 탈탄소의 양립을 향해서 국가로서 원자력발전 활용을 다시 한번 키우겠다는 기시다 정권의 의지가 선명히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기술·자금 양면에서 관민의 역할 분담, 사용 후 핵연료 취급 등 산적한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
일본 정부는 지진 재해 후 원자력발전 신증설이나 재건을 봉인해 왔다. 최근 우크라이나 위기로 에너지 공급 불안에 직면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약점이 원전 회귀의 단초를 제공했다.
우선 원전 재건안 제시는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 상황을 타개하는 첫걸음이 된다. 정부는 간사이전력의 미하마 원자력발전소(후쿠이현)를 후보지 중 하나로 보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1~3호기 중 1·2호기는 폐로가 결정됐고 3호기는 가동된 지 40년 넘었다. 간사이전력은 ‘신증설이나 재건이 자연스럽게 필요하게 된다’는 입장에서 정부의 결정을 유도하고 있다. 문제는 원전 설계·건설에는 최소 10년 안팎의 시간과 5000억~1조엔(약 5조~10조원)에 이르는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목표가 없으면 전력회사는 움직일 수 없다. 지진 재해를 거치면서 사회 환경도 크게 변했다. 전력 시장은 자유화가 진행되어 신재생 에너지의 코스트가 점차 낮아지고 있어 원자력발전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가격 경쟁력이 없는 게 사실이다. 전력회사를 뒷받침하는 실효적인 지원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안전 확보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점도 달라지지 않았다.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새로운 경수로에 대응한 규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1~2년이 걸린다고 한다. 입지 지자체의 이해도 빼놓을 수 없다. 종래 경수로와 다른 소형 모듈로나 고온 가스로, 고속로라고 하는 원자력발전 기술은 아직 개발 단계에 있다. 재건 이외에 이러한 ‘차세대 혁신로’ 개발·건설에 대해 정부 계획안은 향후 상황을 근거로 검토한다는 표현으로 정리했다.
당분간은 운전 기간 연장에 초점을 맞춰 원전 운용을 유연하게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진 재해 후 안전심사나 재판소의 명령 등으로 정지하고 있던 기간을 완화한다. 규제위에 의한 안전심사에 합격했다면 상한선인 60년을 초과해 운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때 검토했던 상한 자체의 철폐는 신중론이 뿌리 깊기 때문에 일단 보류했다. 재가동이 끝난 원자력발전소에서 연장할 수 있는 기간은 대략 10년 이하로 운전은 최장 70년 정도까지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일본 국내 33기 원전이 모두 현행 규칙 특례로 최대 60년간 운전한다고 가정해도 2050년대에는 5기까지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원자력에 대한 신뢰 회복도 빼놓을 수 없다. 계속 늘어나는 사용 후 연료를 재사용하기 위한 공장은 가동되지 않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도 정해지지 않았다. 원전 재건 추진에는 이런 난제를 해결하는 길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경제산업성이 11월 28일 ‘향후 원자력 정책의 행동 계획안’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안전 메커니즘을 포함한 차세대 혁신로 개발·건설을 진행시켜 간다’고 명기했다. 폐로가 결정된 원전의 재건을 염두에 두고 전력의 안정 공급과 탈탄소의 양립을 목표로 한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신증설이나 재건을 ‘생각(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해 온 정책을 바꾼 것이다.
종합자원에너지조사회(경제산업상 자문기관)의 원자력 소위원회를 통해서다. 여당인 자민당과 조율해 정부의 GX(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실행회의에서 연내에 최종 결정한다고 한다.
새로운 원자력발전은 종래와 같이 원자로를 물로 식히는 경수로로의 안전성을 높인 타입을 구상하고 있다. 만일의 경우에도 녹아내린 핵연료가 외부로 누출되지 않도록 원자로 용기 아래에 ‘코어 캐처’를 구비하는 기술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본의 원자력 현장은 기술자 퇴직이 이어지면서 부품 등 공급망도 좁아지고 있다. 정부는 전력회사의 투자를 뒷받침한다.
연구개발 강화로 개발 설계부터 건설, 운전까지 지휘명령할 수 있는 사령탑 기능 확립도 내세웠다. 수명을 다한 원전의 폐로를 착실히 진행하기 위해 전력회사가 국가 인가법인에 거출금을 내고 자금을 확보하는 제도도 마련한다.
독일과 일본의 ‘탈탈(脫脫)원전=복(復)원전’은 조심스러운 반전이다. 그러나 또다시 돌리기는 어려운 모멘텀을 갖기 시작했다. 미국, 벨기에 등 여러 나라들이 동조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원전 강국 한국에는 ‘원자력 경제’의 문이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니박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장 흔들린 나라 중 하나다. 풍력 등 재생 가능 에너지의 보급 확대를 진행시키는 한편 전력 불안 고조로 메르켈 전 정권에서부터 내걸어 온 '연내 탈원자력발전’ 목표를 미뤘다. 독일의 에너지 정책은 흔들리는가. 유럽 최대 경제대국은 어디로 향할까.
독일의 실상을 그린 신간 ‘독일 2050’은 불안의 시대에 명료한 장기적 관점을 제공한다. 부제는 '기후변화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다. 독일 저널리스트 두 명의 공저로 환경의식이 높은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이 그리는 것은 기후변화가 독일 사회에 닥치는 리얼한 변화다. 산림과 수자원 등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도시와 교통, 경제에서 에너지, 그리고 정치까지 총 14장에 걸쳐 논점을 망라한다. 독일 기업의 구체적인 사례도 이해를 돕는다.
2050년은 중요한 고비다. 독일 정부는 온난화 가스 배출을 실질적으로 제로화하는 카본 뉴트럴의 달성 목표를 2050년에서 2045년으로 앞당긴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 책은 많은 독일 국민이 인생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시간 축으로서 2050년을 주목해 각론을 전개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수십 년 단위의 초장기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미치므로 정밀한 분석이나 파악이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의 경종을 단순한 예측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이 이미 50년의 미래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올여름 폭염 영향으로 물류망을 지탱하는 라인강 수위가 극단적으로 떨어져 화력발전용 석탄의 수상 수송이 막혀 발전 전망이 불안정해졌다. 폭염일이 더 늘어나면 공급망 혼란을 통한 손실은 독일 경제에 큰 위협이 된다.
이 책이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까지 독일 기온은 섭씨 약 2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2100년까지 탈탄소의 대처가 늦어지면 6도 오른다.
기후변화 대응에서는 간과하기 쉬운 문제도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의한 전력 확보는 동시에 이상기후 등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기 쉽다는 것이다. 독일은 2030년까지 전력의 80% 정도를 신재생에너지로 조달할 계획을 내세운다. ‘원자력발전이냐’ ‘신재생에너지냐'라는 양자택일의 논의를 넘어 한국에도 장기적인 전략이 요구될 것이다. <아마존 , 닛케이 등에서 발췌>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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