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 그는 2019년 이래 중국에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팀 쿡은 지난 5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쿠퍼티노 애플 본사에서 팜민찐 베트남 총리와 만났다. 애플은 곧 베트남에서 맥북 노트북을 생산할 예정이다. 더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내년에는 애플의 첫 인도 매장이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지난 9월에는 인도에서 신형 모델인 아이폰14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국 일변도로 공급망을 관리해온 애플이 미국과 중국의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에서 전략적으로 베트남과 인도를 중시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애플의 고민은 깊다. 일부 제품의 조립기지를 중국 밖으로 옮기고 있지만 중국이 다른 나라가 대체할 수 없는 강점을 가지고 있어서다. 팀 쿡은 “중국에는 숙련된 근로자와 정교한 수준의 로봇, 그리고 컴퓨터 과학 등이 있는데 이를 다른 곳에서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실토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놓고 가장 자주 언급되는 어휘 중 하나는 디커플링이나 탈중국이다. 과거 냉전 국면 때 미국과 옛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미·중 양국이 각자 진영으로 ‘헤쳐 모여’ 하면서 서로 등을 돌릴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실제는 어떨까? 두 나라 간 무역 동향을 보면 수출입이 축소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전체 교역. 2017년에만 해도 중국은 미국의 1위 통상국가로 교역 비중이 16.4%에 달했다. 올 들어 9월까지 이 수치는 13.2%로 낮아졌고 중국의 위상도 3위로 떨어졌다. 이를 수출입으로 나눠서 보자.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의 대중 수입 비중은 21.6%에서 17.0%로 하락했다. 대중 수출도 8.4%에서 7.0%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이를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 움직임으로 볼 수 있는냐다. 답은 그리 선명하지 않다. 미국의 대중 수입 추이를 들여다보자. 사상 최대치였던 때는 2018년으로 5385억 달러 규모였다. 이게 지난해에는 5049억 달러로 감소했다. 대중 수입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트럼프 행정부 당시부터 상당수 중국 제품에 고율의 보복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국 수입의존도는 여전히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관세 부과 대상이 아닌 중국 제품들이 물밀 듯이 미국으로 들어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들 품목의 수입은 무역 전쟁 이전보다 50% 이상 늘어나 전체 대중 수입품 중 47%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은 노트북, 컴퓨터 모니터, 전화기, 비디오게임 콘솔, 장난감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재택근무 증가로 이들 상품에 대한 수요가 많이 늘어난 것이 수입 급증의 주요인이다. 노트북과 컴퓨터 모니터 같은 제품은 전체 수입품 중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92%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디커플링 논의에 대한 진단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목소리는 크지만 경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국제무역체제에 편입된 게 벌써 20여 년이다. 긴 세월 동안 미·중 양국 경제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왔다. 상호 교역이 거의 없었던 미·소 냉전과 유사한 신냉전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다. 자신은 멀쩡한 채 상대에게만 상처를 입히는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가 미·중 상호 대립 체제로 재편되면 전 세계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1.5% 감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외교 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는 “경제적 디커플링은 무리한 주문”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미국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재계도 디커플링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미국 기업인은 “중국에 들어가서 13년을 보냈는데 지금에 와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디커플링은 허장성세(虛張聲勢)인가? 실제보다 부풀려 얘기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거친 공세는 기세가 등등하지만 ‘전면적인 대중 거리두기’를 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추격 속도에 제동을 걸기 위해 중국의 급소인 첨단 기술을 봉쇄하려는 ‘부분적인 기술 디커플링’ 전략이라는 시각이다. 화웨이 등 중국 IT업체에 대한 제재, 중국의 반도체 생산 및 개발 능력을 제한하려는 반도체 지원법,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안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인플레이션 축소법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취해진 조치들이다.
미·중 간 긴장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탈중국 얘기가 종종 나오고 있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올해 10개월 동안 대중국 수출은 1629억 달러로 전체 수출 중 25.3%를 차지했다. 대중 수입 비중도 22.5%를 기록했다. 교역의 4분의 1 가까이가 중국하고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코로나19로 강력한 봉쇄 조치를 취하자 대중 수출이 급감하면서 무역수지가 적자 행진을 계속하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이 지나치게 높은 대중 의존도를 낮추는 ‘감(減)중국’이지 디커플링이나 탈중국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부분적으로 중국 내 생산 공장을 베트남 등으로 옮기는 ‘중국+1’ 전략과 함께 미국이 추진하는 ‘기술동맹’에 참여하는 일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도 나서지 않고 있는 전면적 디커플링이나 탈중국은 우리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감 중국’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해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한국 기업에 대해 대중 중간재 의존도를 축소하고 수출국과 투자 지역을 중국 외 국가로 다변화하며 국내 투자를 확대할 것 등을 권고했다. ‘감 중국’ 전략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짚어볼 점은 대중 의존도를 어느 선까지 낮추는 게 적절할까 하는 것이다. 현재 GDP 기준으로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 선이다. 필자는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 경제의 몫이 의존도의 적정선이라고 본다. 현재 수출 의존도 25%는 과도하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수출 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등 적극적인 대응으로 이를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대중 수출의 구성 품목에 큰 변화를 줘야 한다. 중국의 수입 대체 전략으로 중간재 수출 전망이 밝지 않은 만큼 성장 가능성이 큰 내수 소비재 시장을 ‘대체 시장’으로 보고 파고들어야 한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처지가 된 한국 경제의 안정적인 생존 및 성장 전략이 긴요하다. 다양한 대책이 실행돼야 하겠지만 핵심은 10위권 경제 강국으로서 한국이 미·중 양국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상품, 그리고 일자리 등을 제공하는 경협 파트너가 되는 길일 것이다.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기울지 않고 균형을 잡아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고슴도치’ 같은 존재가 돼야 하며 최대의 무기는 초격차 기술 강국으로서 위상을 확보하는 것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으로선 안미경중(安美經中)은 물론 경미경중(經美經中)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미·중 대결 구도를 잘 헤쳐나가는 방법은 경제를 잘하는 길밖에 없다.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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