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2022년 12월 10일 기준으로 시청률이 18.2%였다. 최근 인기 드라마였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최고 시청률 17.5%보다 높았다. OTT 통합검색 콘텐츠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의 12월 5일 발표에 따르면, 11월 4주 차 통합 콘텐츠 랭킹도 1위였다. 세계인이 보는 넷플릭스에서도 시청률 상위에 올라 있다. 네이버 웹툰에 웹소설로 게재된 원작과 그에 기초한 웹툰도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중이고,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최근 종이책으로도 출간되었으며, 드라마 제작사인 래몽래인의 주가도 크게 올랐다.
“재벌집 막내아들”에 투영된 기본 모티브는 ‘환생과 복수’이다.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였던 중년의 윤현우는 2022년에 자신이 몸 바쳐 일했던 재벌 순양에 의해 살해당하지만, 그의 의식은 죽는 순간 그동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1987년으로, 즉 10살의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의 몸에 빙의한다. 판타지 소설답게 빙의 전 10살 진도준의 의식에 대한 설명은 없다. 중년의 의식이 소년의 의식으로 전이되었다는 설정으로 스토리가 전개될 뿐이다. 진도준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윤현우는 순양 가(家)에서 성장하고 향후 35년간 펼쳐질 미래에 대한 정보력으로 순양 그룹을 인수하며 차츰 자신의 복수를 실현한다.
윤현우의 의식에는 가난한 집안의 흙수저와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의 금수저의 명백한 대립 구도가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면, 본래는 흙수저이지만 금수저가 된 윤현우의 의식이 순양 가(家)의 자손인 금수저들에게 통렬한 복수극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바라보는 시청자는 두 가지 차원에서 즐겁다. 첫째, 흙수저가 금수저로 바뀐 것에 환호한다. 이는 원초적 욕구를 대변한다. 누구나 금수저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저열한 금수저를 무너뜨리는 것에 통쾌함을 느낀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금수저를 단죄하지만,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자기 자신 스스로를 주인공과 동일시할 경우, 우리가 직접 단죄하는 느낌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흙수저-금수저의 대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심각하다. 2021년 기준으로,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6.5%를 차지하지만 하위 50%는 전체 소득의 16%밖에 갖지 못한다. 특히, “영끌”로 집을 샀지만 높은 은행 금리로 밤잠을 설치는 청년들은 이렇게 자조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 이러한 표현에는 청년들이 느끼는 절망이 묻어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다음 생이라도 더 나은 삶을 갖고 싶은 청년들의 마음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드라마도 사람들의 욕망을 투영해야 인기가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청년에게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중·장년층에게도 인기가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환생과 복수”라는 판타지 드라마의 기본 모티브를 넘어 과거 한국 사회의 경제적 역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장년층의 시청자는 자신이 살아왔던 35년간의 한국 경제의 흐름을 드라마의 영상을 통해 떠올리며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정경유착에 의해 성장한 문어발식 대기업, 87헌법체제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 IMF 금융위기, IT 주식 버블, 9·11 테러 등 굵직한 현대사와 세계사가 드라마에서 펼쳐진다. 이는 드라마에 대한 친숙함을 유발한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중·장년층이 경험했던 역사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배우 이성민이 탁월하게 연기하는 순양 가(家)의 진양철 회장의 삶은 자본주의에서 사업가 정신을 보여준다. 예컨대, 진양철이 손자인 진도준에게 자신의 가슴에는 “욕심, 의심, 변심”이라는 세 개의 마음이 있다고 말하자 진도준은 자신도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에서 성공하려면 욕심이 있어야 하고, 당연한 것도 의심해 봐야 하며, 상황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중·장년층이면 이러한 대사를 들었을 때 당연히 마음에 울림이 있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생존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셋째, 송중기가 눈부시게 연기하는 진도준이 단지 금수저여서가 아니라, 능력으로 재벌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장년층은 ‘태생주의’가 아니라 ‘능력주의’를 선호한다. 물론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35년간의 ‘비대칭적 정보(asymetric information)’가 있기에 진도준은 투자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며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phronesis)’가 필요하다. 배우 송중기는 바로 이러한 진도준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송중기의 잘생긴 얼굴도 시청자의 시선을 끌지만, 그의 차분한 덕성 연기도 여성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한국을 넘어 세계인에게 사랑받았던 K-드라마의 흐름을 보면 “오징어게임”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이어지고 그 이후 “재벌집 막내아들”이 있었다. 사실 “오징어게임”은 인간의 탐욕을 다룬 기이한 드라마로서 너무나 극단적으로 자본주의에 물든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오징어게임”에 대한 반동이었다.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특별한 인간의 모습과 정의로움이 부각되는 드라마였다. 변증법적인 흐름으로 보자면, “오징어게임”이 정(正)이었다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반(反)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재벌집 막내아들”은 “오징어게임”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지양(aufheben)한 합(合)이다.
그러니까 합(合)으로서의 “재벌집 막내아들”은 “오징어게임”의 자본주의를 반영하고 있지만 잔학성을 제거했으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간미를 도입했지만 냉정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긍정했다. 이러한 스토리 텔링의 변증법적 발전이 이번에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켄 그림우드(Ken Grimwood)의 <다시 한번 리플레이(replay)>라는 소설에도 빙의 모티브가 등장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단지 한 번만 빙의되지만, <다시 한번 리플레이>에서는 주인공이 반복해서 죽고 반복해서 빙의된다. 의식이 그대로 전이된다는 설정은 동일하다. 세상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약간의 변경을 거쳐서 새롭게 태어난다. 문화적 독창성은 타자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타자의 눈으로 자신의 것을 보고 타자의 것과 자신의 것을 융합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한국적 소재를 활용한 탁월한 판타지 드라마이고, K-드라마의 새로운 변증법적 발전의 발판이 될 것이다.
장준호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뮌헨대(LMU) 정치학 박사 △미국 UC 샌디에이고 객원연구원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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