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근로시간 관리를 현행 '일주일'에서 최대 '연' 단위로 개편하라는 권고가 나왔다.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여러 해 근무한 공로)형 임금체계는 직무·성과 중심으로 바꿀 것도 권고했다. 노동계는 "노골적 친기업 행보"라며 반발했다.
미래노동연구회 "주 52시간제 · 호봉제 손봐야" 권고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주 52시간제 개편을 포함한 노동시장 개혁 정부 권고문을 발표했다. 연구회는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 과제를 논의하고자 지난 7월 발족한 교수 연구단체다.
연구회는 근로시간과 관련해 "노사 자율적 선택권 확대를 통해 일 효율성을 높이고, 충분한 휴식을 누리도록 해 근로시간 총량을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기본 40시간과 최대 연장 12시간을 뜻하는 '주 52시간제' 개편 방안을 내놨다.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시기에 연장근무를 몰아서 할 수 있다.
다만 관리 단위가 길어짐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장시간 연속 근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장근로시간 총량을 비례적으로 감축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1주 12시간인 연장근로시간은 한 달이면 52시간이 된다. 연구회는 분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90%인 140시간, 반기 단위는 80%인 250시간, 연 단위는 70%인 440시간만 연장근로를 허용하도록 했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해야 한다고도 제시했다.
연구회는 노동자가 근로일과 출퇴근 시간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을 모든 업종에서 3개월 이내로 확대할 것도 권고했다.
임금체계도 손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무엇보다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는 기업 신규 채용 기회를 제약하고 중·고령 노동자 고용 유지에 부정적이며, 남녀 간 임금 격차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연공성 완화와 직무·숙련 등을 반영하는 임금체계로 개편을 지원하고, 임금체계가 없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위한 공정한 임금체계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회는 △중소기업과 근로자에 대한 임금체계 구축 지원 △업종별 임금체계 개편 지원 △공정한 평가·보상 확산 지원 △60세 이상 계속 고용을 위한 임금체계 관련 제도 개편 모색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상생임금위원회 설치 △직무별 시장임금 정보 제공을 위한 시스템 구축을 정부에 제안했다.
정부 "조속히 입법안 마련"···노동계 "친기업 행보" 비판
연구회 권고 내용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이나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과 궤를 같이한다. 이에 따라 이날 권고문은 사실상 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내세운 '노동개혁'의 큰 틀이 될 전망이다.
고용부는 권고문에 담긴 과제들을 검토해 연내 혹은 내년 초에 입법 일정 등을 담은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본인 페이스북에 "권고문에 담긴 임금과 근로시간 제도는 이른 시일 내 입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동시장 개혁을 온 힘을 다해 기필코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추가 과제도 조속히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면서 "노사 동참을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동계는 연구회가 내놓은 권고안에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사용자의 노동시간 활용 재량권을 넓혀 집중적 장시간 노동은 더욱 심화하고 이는 고용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근로시간 개편안에 반발했다. 임금체계 개편안에 대해서도 "사용자단체의 오랜 숙원 과제인 임금 억제 정책에 정부가 맞장구를 쳐준 모양새에 불과하다"며 "노동계를 배제한 채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제로 회귀하는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추진하는 노골적인 친기업 행보"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 역시 지난 8일 한국노총과 공동 개최한 토론회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유연근무제 확대 등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압축·집중노동과 장시간 노동이 결합한 '유연 장시간노동체제'라는 최악의 노동시간체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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