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철의 AI 인문학] ㉑ 청소로봇 등장부터 AI 퀴즈왕 등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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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철 비엔씨티코리아 회장
입력 2022-12-2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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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는 잡일을 도와줄 금속 하인을 만들었다. 로마시대 시인 오비디우스는 여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삶의 질이 올라간다고 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선 하루 6시간 노동으로도 의식주가 해결되는 곳이 바로 유토피아라고 했다. 인류는 자신의 노동을 대신해 줄 기계를 염원했다. 인간의 노동 중 가장 귀찮은 일은 청소. 로봇은 청소를 대신하는 것부터 우리 일상에 등장했다. 청소 도우미가 로봇으로 대체된 것이다.
 

아이로봇 로봇청소기 룸바 [사진=아이로봇]


미국 MIT 교수 로드니 브룩스(Rodney Allen Brooks, 1954~)가 제자들과 창업한 아이로봇(iRobot)이라는 기업은 2002년 룸바(Roomba)라는 세계 최초 AI 청소로봇을 시장에 선보였다. 흡입식 청소방식을 채택한 룸바는 AI를 내장하여 카메라, 적외선, 물리 등 다양한 센서를 통해 장애물 감지와 거리를 판단, 충돌 회피와 구역 설정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에너지 고갈이 예견되면 스스로 독(도크)을 찾아가 자동충전 하는 기능도 갖췄다. 이후 글로벌 가전 기업이 하나 둘 비슷한 로봇 청소기를 내놓았다. 우리나라에선 2003년 LG가 국내 기업 최초로 '로보킹'을, 2006년엔 삼성이 '하우젠'을 출시했지만, 초기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 원인은 청소 능력에 있었다. 초음파 감지, 장애물 센서 등을 장착했지만 구석구석 깨끗한 청소를 하지 못했고, 흡입력이 약해 시원한 청소효과를 보기 힘들었으며, 문턱 통과나 카펫 같은 바닥 재질 구분 등이 문제였다.

2016년 등장한 LG와 삼성의 로봇은 AI와 사물인터넷 (IoT) 기능을 탑재하고 인터넷 네트워크와 연결되면서 유능한 청소 도우미로 거듭났다. 이들은 딥러닝을 이용해 사물, 공간인식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물론, 자율주행차에 활용되는 라이다(LiDAR, 물체인식센서)와 중앙처리장치(CPU)까지 탑재했다. AI로 집안 구조와 가구·가전을 정확히 인식해 자율주행 능력을 구현하고, 전선이나 반려동물 배설물과 같은 장애물은 물론 1㎤의 작은 사물까지 입체적으로 감지했다. 청소를 마친 뒤에 먼지통도 알아서 비워 주고, 내장 카메라로 반려동물의 활동까지 모니터 할 수 있다. LG는 로봇에 물걸레까지 장착해 온돌을 사랑하는 한국인의 구미를 자극했고, 공간과 사물을 정밀하게 인지하는 AI를 탑재하여 청소의 정확도를 높이고 사고의 위험을 줄였다. 여기에 음성AI까지 탑재된다면 청소기가 반려로봇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외뇌(外腦)의 탄생
스티브 잡스는 뇌를 들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열어 보는 기발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007년 애플은 손바닥에서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전화기 겸 컴퓨터를 세상에 내 놓았다. 그 이름은 아이폰. 잡스는 아이폰이 커뮤니케이션, 콘텐츠, 컴퓨터를 한데 통합한 디지털 컨버전스의 끝판왕이라 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문명을 바꿀 위대한 발명을 했음을. 아이폰은 휴대용 외뇌(外腦)였던 것이다.

고용량 메모리를 품고 무선 인터넷에 연결된 아이폰이 가져다준 세상은 지금껏 우리가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이었다. 아이폰은 실제와 가상이 중첩된 하이브리드 세상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아이폰에는 우리의 모든 기억과 추억이 저장될 수 있었다. 이미지, 동영상, 문서 등을 자유자재로 저장하고 꺼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더 이상 암기를 하거나 기억을 되살리려 고생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구글, 네이버 등 다양한 검색 사이트가 폰 위에서 작동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모르는 것이 없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 음성을 지원하는 AI까지 합세, 말만 해도 바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카톡, 위챗, 왓츠앱 등 메신저 앱으로 인간은 '텔레파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인류는 더 이상 심심할 틈이 없다. 인간은 새로운 외뇌로 아무 때나 독서, 영상/음악감상, 지식 습득, 커뮤니티 참여, 금융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은 여기서 더 나아가 AI를 탑재했고, AI와 공생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폰의 탄생으로 인간은 이제 인공 뇌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인체와 기계의 결합, '사이보그'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웬만한 신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모습을 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천리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개인 방송국, 사물을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는 염력, 언제든지 메타버스 세계를 드나들 수 있는 순간이동술, 주문만 하면 세상의 모든 물건을 가질 수 있는 마술램프까지. 이 모든 능력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외뇌를 우리 머릿속의 내뇌(內腦)와 합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 1971~)가 창업한 ‘뉴럴링크 (Neural Link)’는 생각을 업/다운로드 할 수 있는 작은 전극을 뇌의 뉴런에 이식하는 기술이다. 머스크는 나날이 발전하는 AI에 지배당하지 않고 공생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와 인체의 공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내뇌에서 생각하자마자 바로 외뇌로 즉시 연결할 수 있는 뉴럴 임플란트. 치아 임플란트 하듯이 뇌에다 실리콘 칩을 이식하는 방법이다. 손이나 음성을 쓰는 사람과 컴퓨터 간에는 정보 처리 방식이나 속도에 큰 차이가 있다. 뉴럴링크 기술로 이 간극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면 인지력이나 사고력 등 인간의 특정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뇌 성형 수술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다.

머스크는 인간 전체의 지능을 능가하는 슈퍼 AI가 나타나는 '특이점'이 오면 슈퍼 AI가 권력 행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슈퍼컴퓨터가 인간과 직접 연결되어 구동된다면 슈퍼 AI가 출현해도 AI는 결국 인간의 손바닥 안에 있을 것이라고 봤다. AI의 개념이 출현하면서부터 인류는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여 결국 인간은 AI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멸절당할 수밖에 없다는 공포에 시달려 왔다. 과연 인간은 외뇌로 무장한 것만으로 다가올 특이점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을까?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인류의 적 ‘스카이넷’이 인체와 연결되면 인류 멸절을 도발할 수 있을까? 지금은 터미네이터의 제작자가 더 재미난 시나리오를 쓸 타이밍이 왔다고 본다.
 
AI, 퀴즈왕에 등극하다
IBM은 '딥 블루'의 승리로 흥행몰이를 했지만 수익은 반짝 효과에 그쳤다. 딥 블루는 체스라는 특정 조건에서 수를 읽어내는 방법을 오롯이 ‘연산능력’에 의존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딥 블루가 최대한으로 많은 경우의 수를 단순히 계산하고 확률이 높은 쪽으로 결정하는 ‘크고 빠른 계산기’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체스만 잘 둘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실생활에 응용될 가능성은 낮았다.

IBM 과학자들이 다시 연구에 돌입한 것은 문답 시스템. 자연어로 제시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컴퓨터야 말로 실생활에 폭 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이야 쉬워 보이지만 2010년대만 해도 ‘자연어 문답’은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이 기술은 지금도 실용화 단계의 문턱에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와 구글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를 입력하면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답일 가능성이 높은’ 결과물과 여러가지 사이트를 좌판 펼치듯이 늘어 놓는다. 특정 질문에 대해 ‘이것이 답’이라고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것은 AI가 어느 것이 답이라도 확신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발된 확답형 AI가 바로 ‘왓슨(Watson)’이다.

IBM이 왓슨의 능력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선택한 '제퍼디(Jeopardy)' 쇼는 ABC에서 제작한 미국 최고 인기 퀴즈 프로그램이다. 이 쇼에서는 사람만 풀 수 있다고 여겨지는 아이러니와 수수께끼 같은 복잡하고 미묘한 단서가 주어진다. 출연자는 이런 단서를 추론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딥블루처럼 단순 연산만 하는 AI는 도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2011년 IBM 왓슨이 제퍼디 퀴즈쇼에서 인간 출연자와 대결하는 장면 [사진=IBM]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과 테스트를 거쳐 승리를 확신한 IBM은 ‘제퍼디’에 왓슨을 출연시켜 인간 챔피언과 경쟁하게 하고, 이를 전 세계에 방영하겠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극적인 효과를 끌어 올리기 위해 74연승을 기록했던 켄 제닝스, 역대 최다 상금 획득자인 브래드 루터가 경쟁 파트너로 선택되었다.

드디어 2011년 2월, 이틀에 걸쳐 방영된 제퍼디 퀴즈쇼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는 IBM이 의도한 대로 센세이션 했다. 왓슨이 7만7147달러의 상금을 획득해 2만4000달러의 제닝스와 2만1600달러의 루터를 압도하며 우승했던 것이다. 이 퀴즈쇼에서 왓슨의 우승은 컴퓨터가 단순히 계산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언어로 된 질문을 이해하고 해답을 도출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왓슨의 승리로 AI가 질문과 문맥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입증한 것이다. 인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숨은 의도를 해독하거나 질문과 문맥을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모두 기계가 해낸 것이었다. 왓슨의 제퍼디 승리로 AI는 또 한번 진화의 역사를 썼다.

제퍼디에서 왓슨이 우승하자 IBM은 ‘세상을 바꿀 AI 기술 혁명의 시작’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왓슨을 헬스케어, 금융, 법과 학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장밋빛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왔고, AI가 곧 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변화를 이끄는 주인이 될 것처럼 데시벨을 높였다. “의료 진단, 비즈니스 분석과 기술 지원 같은 분야를 왓슨이 대체하는 미래가 IBM의 비전”이라고 했고, 콜센터 상담원, 학교 선생님도 왓슨이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이라 언급했다.

왓슨은 뉴욕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병원 암센터, 휴스턴 MD앤더슨 같은 세계 최고의 병원에 속속 도입됐고, 2017년에는 한국 가천대가 왓슨을 기반으로 한 AI 암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왓슨은 8개 암 진단과 진료법 추천에서 성과를 보였다고 각종 언론에서 대서 특필했으며 연구결과는 여러 국제학술지에도 게재되었다. 하지만 왓슨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암 데이터를 다루는 것은 왓슨의 능력보다 훨씬 복잡했고, 현장에서 의료진이 입력하는 데이터는 AI가 학습하기에는 매우 비정형적이고 정확도가 낮았다. 현장에서 왓슨의 진단과 치료방법을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의사들에게는 매우 불합리한 선택이었다. 만에 하나 오류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의사가 져야 했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은 손실만 입은 채 속속 왓슨 프로젝트를 접었고, 암 정복이라는 IBM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2021년 1월 IBM은 사모펀드인 프란시스코 파트너스에 의료AI 사업부 ‘왓슨 헬스’를 매각했다. IBM이 매각으로 건진 돈은 10억 달러(약 1조4250억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IBM이 투자한 돈의 수십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왓슨의 능력에 대한 과대포장에 대해 경고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IBM 경영진은 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국 IBM이 경쟁상대로 생각하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은 AI를 통해 기업가치를 지속적으로 견인하며 빅테크 시대를 열었지만 IBM은 2011년 제퍼디 우승 이후 주가가 오히려 10% 이상 떨어진 민망한 처지가 됐다.
 

강시철 비엔씨티코리아 회장 [사진=강시철 비엔씨티코리아 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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