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임기 만료를 불과 몇 달 앞두고 고집을 일부 꺾었다. BOJ가 일본 장기 국채 금리 허용선을 기존 0.25%에서 0.5%로 상향 조정하면서 엔화 가치가 급등하는 등 글로벌 금융 시장이 요동쳤다.
BOJ는 20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범위 상한선을 0.25%에서 0.5%로 확대했다. 기준금리는 마이너스(-) 0.1%로 유지하되 장기금리 허용선을 올려 완화적 통화정책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BOJ는 이번 조치를 통해 완화적 통화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뒤 엔화 가치는 발표 직전 달러당 137.16엔에서 133.11엔까지 상승하는 등 급등했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0.25%에서 0.46%로 뛰었다. 엔화 가치 강세는 일본의 기업과 가계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번 BOJ의 결정은 시장이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블룸버그통신이 조사한 경제학자 47명은 BOJ가 기존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일본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신선식품 제외)가 전년 동월보다 3.6% 상승하면서 1982년 2월(3.6%) 이후 40년 8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이 꿈틀대는 상황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일본 경제 전 부문에서 물가가 크게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BOJ의 결정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야기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간 BOJ가 주요 중앙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비둘기 정책을 고수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차입 비용을 낮게 유지하는 데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닻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일본 주식 시장에서는 금융기관들의 주가가 실적 개선 기대에 오름세를 보였다.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의 주가는 장 중 한때 6년 만에 최고치인 9.6%나 올랐다. 미즈호 파이낸셜그룹의 주가도 4%가량 상승했다.
앞서 교도통신은 지난 17일 일본 정부가 신임 BOJ 총재가 취임하는 내년 4월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10여 년간 추진해온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지난 2013년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 정부와 BOJ가 발표한 공동 성명을 개정할 계획이란 설명이다. 해당 공동 성명은 물가 상승률 2%를 이른 시기에 달성하는 것이 목표로, 이는 초저금리 정책 유지의 근거가 됐다.
S&P 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의 다구치 하루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BOJ가 채권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현 정책을 지속하기 어려운 점은 확실하다”며 “(BOJ와) 정부의 공동성명을 다시 한번 살펴볼 때다”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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