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發 에너지 대란 해법 찾기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상열 에너지경제연구원 미래전략연구팀장
입력 2022-12-27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이상열 에너지경제연구원 미래전략연구팀장[사진=에너지경제연구원]

지난 3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한 전략을 담은 입법 문서(REPowerEU)를 발표했다. 대규모 LNG 수입 확대 및 수요 절감 등으로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대체하고, 11월까지 동절기를 대비해 역내 가스 저장 시설의 80% 이상을 채우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당시 매우 도전적인 목표로 보였으나 유럽 각국이 국제 LNG 시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어 10월에 이미 90%에 육박하는 비축률을 달성했다. 그러나 가격 프리미엄에 기반한 유럽의 물량 확보 우선 정책은 역내 에너지 요금 인상 요인이 됐고, 일부 국가들은 최대 10배가 넘는 전기·가스 요금 폭등을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유럽의 글로벌 LNG 시장 진입은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낮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에너지 수급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던 파키스탄은 LNG 현물 구매 여력이 없어 순환 정전, 상업시설 제한 운영, 근로시간 단축 등을 시행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는 7월 이후 LNG 수입 자체를 중단함에 따라 광범위한 정전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LNG 수입의 대부분이 장기 계약으로 이뤄지고 구매력도 있어 당장의 수급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지만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은 국민 경제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1월까지 역대 최대 수출 규모를 달성했음에도 에너지 수입액 급증으로 금융 위기 이후 첫 연간 무역수지 적자가 확실시되고 있다. 특히 전년 대비 에너지 수입 비용의 ‘상승분’만 약 75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반도체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연간 1200억 달러 수준인 점을 상기하면 허망한 감정마저 몰려온다.

에너지 대란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이 체감하는 위기의식은 현실의 그것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가장 큰 원인은 단연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기·가스 요금이다. 글로벌 위기가 단기간에 그칠 경우 에너지 요금 억제는 경제와 물가 안정에 효과적인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현재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우호국 간 에너지 공급망 재편은 상당한 비용을 수반하게 되며 청정에너지에 대한 투자 가속화 또한 전통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구축(驅逐)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높은 글로벌 에너지 가격의 뉴노멀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에너지의 93%를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국제 가격이 아무리 높게 치솟아도 수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전기·가스 요금의 단계적 정상화를 통한 합리적 가격 체계를 확립해 에너지 소비 왜곡을 막고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을 위한 유인을 확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에너지 수입 수요를 최소화해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사채 발행액 허용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관련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공기업들의 적자 감당 여력을 일시적으로 확대해 당장의 공급 안정성을 제고할 계획이지만 원가주의 요금 체계의 뒷받침 없이는 국가 재정만 악화시키는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유럽이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에도 불구하고 비축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수요 감소를 유도한 가스 가격 폭등이었음을 상기하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