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유럽의 글로벌 LNG 시장 진입은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낮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에너지 수급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던 파키스탄은 LNG 현물 구매 여력이 없어 순환 정전, 상업시설 제한 운영, 근로시간 단축 등을 시행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는 7월 이후 LNG 수입 자체를 중단함에 따라 광범위한 정전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LNG 수입의 대부분이 장기 계약으로 이뤄지고 구매력도 있어 당장의 수급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지만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은 국민 경제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1월까지 역대 최대 수출 규모를 달성했음에도 에너지 수입액 급증으로 금융 위기 이후 첫 연간 무역수지 적자가 확실시되고 있다. 특히 전년 대비 에너지 수입 비용의 ‘상승분’만 약 75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반도체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연간 1200억 달러 수준인 점을 상기하면 허망한 감정마저 몰려온다.
에너지 대란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이 체감하는 위기의식은 현실의 그것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가장 큰 원인은 단연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기·가스 요금이다. 글로벌 위기가 단기간에 그칠 경우 에너지 요금 억제는 경제와 물가 안정에 효과적인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현재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우호국 간 에너지 공급망 재편은 상당한 비용을 수반하게 되며 청정에너지에 대한 투자 가속화 또한 전통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구축(驅逐)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사채 발행액 허용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관련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공기업들의 적자 감당 여력을 일시적으로 확대해 당장의 공급 안정성을 제고할 계획이지만 원가주의 요금 체계의 뒷받침 없이는 국가 재정만 악화시키는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유럽이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에도 불구하고 비축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수요 감소를 유도한 가스 가격 폭등이었음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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