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자국 이익만을 앞세운 미국에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 동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따라가는 한편 각국 정부는 미국에 발끈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맹국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과학법(Chips for science act)이다. 미국 내 산업만 증진시키는 법안인 동시에 보호무역 성향으로 외국 기업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시각이다.
◆기업들은 미국에만 투자···속 타는 각국 정부
각국 완성차 업체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재편에 미국과 북미 곳곳에 공장 신증설에 나섰다. 비싼 인건비에도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에 이르는 세액공제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장 신증설에 들어가는 기간을 고려해도 강행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기업들은 공장 설립 기간을 단축하고 빠른 양산을 통해 IRA에 대응하려고 한다. 지난달 8일 현대차그룹과 SK온은 IRA를 의식해 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2025년부터 배터리를 양산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현대차는 지난해 3월 앨라배마주 공장에 전기차 라인 증설을, 지난해 5월에는 조지아주 공장 신설 투자 계획을 공식화했다. 2023년부터 양산할 예정이던 앨라배마주 공장은 지난해 12월로, 2025년부터 양산이 이뤄질 조지아주 공장은 2024년으로 앞당겨 IRA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일본과 유럽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미국 전기차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혼다도 1000억엔(약 9700억원)을 들여 미국 오하이오주 3개 공장을 전기차 생산라인으로 탈바꿈시킨다. 해당 라인은 2025년부터 라인을 가동해 2026년 판매를 목표로 한다. 독일 완성차 업체 BMW도 미국에 17억 달러(약 2조1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문제는 IRA가 당장 올해부터 시행된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만 이들의 고민인 완성차 조립과 광물 측면에서 즉각적인 대책을 찾기는 어렵다. 전기차 1대당 7500달러(약 1000만원) 세액공제를 최대로 받기 위해 '북미 조립'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국가산 핵심 광물 사용'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동맹국마저도 불이익을 보는 현 상황에 각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우려를 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 정부는 IRA에 대해 "북미 시장에서 일본 완성차 업체를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며 "세액 공제 요건이 일본과 미국의 공통된 정책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미국 재무부에 논평했다.
IRA와 유사한 방식의 자구책이 등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4일 유럽의회 본회의에 출석해 '바이 아메리칸(Buy Amercian)' 기조와 차별적 각종 세금 감면 혜택, 북미산 생산품에 대한 보조금 혜택 등을 언급하며 "IRA가 불공정 경쟁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며 "우리는 유럽판 IRA로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도 유럽판 IRA 시행 가능성을 높게 봤다. 유러피언뉴스룸은 유럽판 "EU 혁신과 산업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 설립된 유럽 주권 기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자금이 얼마나 필요하고 추가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고 보조금 대상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등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세부 사항에 주목했다.
◆ 대중국 규제에 요동치는 반도체···향후 규제 심해질 듯
반도체도 미국 자국 중심주의로 인해 한국이 피해를 보는 대표적인 분야다. 전기차 분야가 IRA를 통해 자국으로 완성차 업체를 부르고 있다면 반도체는 노골적으로 대중국 규제를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포한 ‘반도체 산업 육성법(Chips for America Act)’으로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지원에 약 390억 달러를 지출할 계획을 밝혔다. 해당 법에 근거해 미국 내 반도체 제조 공장을 건설하면 대규모 세액 공제를 받게 된다. 문제는 해당 법에 '가드레일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 지원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공장에 첨단 시설 투자를 못하도록 규정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상무부가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을 상대로 수출 금지를 강화했다. 미국 기업이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등보다 기술 수준이 높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중국에 판매할 때는 별도로 허가를 받도록 하는 조치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 업계 1위와 2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SK하이닉스 중국 우시와 다롄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10월 미국 상무부의 예외적 조치를 통해 해당 기업에 대한 수출은 일시적으로 허용해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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