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장사를 했지만 이런 불황은 처음이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월 1000만원을 벌었는데 이제 400만원도 손에 쥐기 힘들다. 옆 가게들이 비어 나가는 것을 보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27일 오전 11시 서울 중계동 아파트 주변 상가에서 만난 박민호씨(가명·51)는 최근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화요리점을 운영하는 그는 리오프닝이 매출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수개월째 상황은 나이지지 않고 있다. 매출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건비, 식자재비용이 크게 오른 것도 부담이다.
박씨는 "원래 식자재값이 한 달에 대략 15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기본 2200만원이 넘게 든다. 고정 비용이 늘면서 생활비가 부족해 8월에는 3000만원 대출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엔데믹으로 명동, 홍대 등 중심 상권 매출은 본격적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동네상권은 오히려 매출감소와 수익성 악화에 시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이던 시기가 오히려 골목상권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동네에서 소비하는 이들이 늘었던 덕이다. 그러나 리오프닝으로 정상 출근하는 이들이 늘면서 동네상권이 급격히 침체하고 있다.
실제 한국외식산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음식점업 체감 시장경기지수는 지난 10월 57.9로 지난 5월(84.2) 대비 26.3포인트 떨어졌다. 고물가, 인건비 상승, 구인난 등으로 '삼중고'를 겪으며 실질적인 이익이 추락한 탓이다. 골목상권의 부진은 본격적인 소비 위축의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68.6%가 올해 자영업자 매출 실적이 지난해보다 감소했다고 답했다. 작년보다 증가했다고 답한 자영업자는 31.4%에 그쳤다.
전경련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25%로 자영업자의 체감 경기가 서민 경제의 '바로미터'라고 볼 수 있다"며 "이번 조사 결과 자영업의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중계동 다른 상가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주변에 아파트가 1만 가구 이상 있지만 대형마트 상가나 아웃렛 주변으로 고객이 몰리는 '양극화'가 더 심화됐다.
홈플러스 중계점 옆 한 대형 상가 지하 식당가는 돈가스집, 백반집 등 두세 집 건너 하나가 문을 닫았다. 한때 배달 폭주로 호황을 이뤘던 이들 가게에는 이제 '임대 문의'라고 씌어있는 전단지와 전화번호만이 내걸렸다.
일부 점포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간판이 수시로 바뀌었다. 우후죽순 생겼던 '밀키트 전문점'은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으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는 배달 전문 치킨점으로 점포가 바뀌었다.
노원 중계동 한 공인중개사는 "공실이 오래되면 권리금이 없는 무권리 점포가 늘어나는데 현재 이곳 주변 상가는 월세와 권리금이 점점 내려가는 추세"라며 "장사가 안되는 점포는 주인이 바뀌기 마련인데 최근 주인이 바뀌는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변 상가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도 "원자재가 상승이 제일 힘든 부분인데 달걀 가격이 작년보다 많이 올랐고 시금치 등 야채 가격도 크게 상승했다"며 "그러면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지역 장사는 오는 손님이 오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관악구 신림동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학가 고시촌에는 학생들이 하나둘 방을 빼고 나가면서 곳곳에 임대딱지가 붙은 식당이 즐비했다. 대부분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영업 종료를 선택한 것이다.
카페나 빵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유가격 인상에 생크림 대란으로 4000원짜리 라떼류를 팔면 원재료 비용만 절반가량이 빠져 나간다. 동네 상권이기에 경쟁 점포 때문에 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신림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몇년 전만 해도 식사시간대가 아니어도 손님이 북적였는데 요즘은 점심 저녁시간대에나 조금 차는 수준"이라며 "손님은 날로 줄어드는데 식자재 가격이나 인건비, 전기요금, 가스비 등 고정 비용 부담은 점점 커져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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