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여름을 전후로 해서 빅4라 불리며 개봉한 국내 텐트폴 영화 4편(‘외계+인 1부’,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개봉일 순))을 포함해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2’, 8백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스타의 힘을 보여준 ‘탑건: 매버릭’, 개봉 2주 만에 500만을 돌파한 ‘아바타: 물의 길’ 등 기대작이 연이어 개봉한 해였다. 화제를 불러 모으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이전으로 관객 수를 회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이용자들은 OTT를 통해 영화를 보는 것이 이용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아바타: 물의 길’이 관객을 어느 정도까지 동원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극장 관객 수의 급감은 영상시장이 OTT가 주도하는 스트리밍 생태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영상시장을 OTT가 주도하고 있긴 하지만 OTT 시장은 코로나 기간 동안 급성장한 여파로 인해 성장세가 꺾이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SVOD(구독형 주문형 비디오) 시장의 성장 정체는 광고요금제 도입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국내를 포함한 주요국에서 광고요금제를 도입했고, 국내에서는 많은 이들이 넷플릭스의 광고요금제 도입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넷플릭스와 경쟁하고 있는 국내 OTT 사업자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고, 많은 규제 속에서 광고를 하고 있는 국내 레거시 방송사업자들도 넷플릭스 광고요금제 도입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기간 동안 미디어 이용량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면서 레거시 방송 이용량도 늘어났고, 국내의 경우 줄어들던 방송광고가 코로나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반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인해 2022년 방송광고는 2021년에 비해 상당 부분 감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방송광고는 방송산업 자체의 경쟁력과도 연관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가의 경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국내에서 방송광고 매출은 GDP 대비 0.3% 이하 규모였다. 2012년 GDP 대비 0.26%였던 국내 방송광고 매출 규모는 2021년 GDP 대비 0.15%로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했다(방송통신위원회 (2022). <2021년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 디지털 광고 시장의 성장으로 방송광고가 전체 광고 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감소해 온 것이다. 2021년 코로나 기간 동안의 방송 시청량 증가로 방송광고가 반등했지만 거리두기 해제로 인한 야외 활동 증가와 경기침체는 방송광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이 미디어 분야에서 거둔 성과는 값진 것이었다. K-팝(POP)의 존재감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K-콘텐츠의 인지도는 십여년 전에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전체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미디어 분야도 어려움을 겪겠지만 대한민국이 미디어 분야에서 보여준 성과를 고려할 때 기회 요인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생태계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미디어 분야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미디어 분야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과 특수성이다. 미디어 분야가 산업화되어 있는 국가는 흔치 않다. 전체 미디어 시장에서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만이 내수 시장에서 자국의 콘텐츠를 가지고 글로벌 사업자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처럼 미디어 분야에서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를 찾기는 더욱 힘들다. 미디어 분야는 고용 창출 효과가 크고 연관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국가의 소프트 파워를 높이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같은 미디어 분야의 중요성과 특수성을 고려한 인식 제고가 필요하며, 이에 기반한 투자와 지원 그리고 규제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디어 분야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속가능성이다. 콘텐츠를 포함한 미디어 분야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내수 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투자에 리스크가 큰 미디어 분야의 특성은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규제 개선이다. 국내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들은 여전히 낡은 규제 속에서 OTT 사업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불리한 환경에 놓여 있다. 필자가 다른 지면을 통해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들이 규제로 인해 디지털 기반 인터넷 사업자들에 비해 열등재로 느껴지는 상황은 시급히 개선될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이 큰 미디어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는 산적해 있는 정책 과제들의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둬온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에 2023년은 중대한 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도전 속에서 기회 요인을 발굴하고 이를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으로 만들어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창희 필자 주요 이력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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