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은 그 배경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꼽았다. 또 카타르 월드컵에서 보여준 일본대표팀의 선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의 분투 등도 ‘戰’의 의미에 넣었다. 여기에다 코로나19, 물가 인상 등도 배경이 됐을 것으로 보았다. 산케이신문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도 이유가 됐다고 지적했다.
일본 국민이 고른 올해의 한자 ‘戰’은 전쟁만이 아니라 스포츠와 일상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과 힘든 삶을 포괄하는 의미인 셈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올 한해 가장 뚜렷하게 느낀 감정은 무엇보다도 전쟁의 불안과 안보 위기라는 엄연한 현실일 것이다.
국민이 ‘戰’ 자를 선택하고 난 나흘 후인 지난 16일 일본 정부가 이른바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해 적의 미사일 기지에 대한 ‘반격능력’을 부여하는 결정을 했다는 사실도 그냥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이니치신문이 정부 결정 직후인 17∼18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반격능력 보유 결정’에 대한 찬성이 59%로 반대(27%)보다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지켜온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안보정책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일본 국내외에서의 논란도 거세다.
일본 언론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논란의 핵심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우선 이번 안보 문서 개정의 총론적 의미에 대한 언론 해설은 대개 이렇다. 지금까지 일본은 방어에만, 즉 방패의 역할만 하고 공격 곧 창의 역할은 미국이 맡아왔는데 이제부터는 일본도 공격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방패 역할만 맡는 것은 변함없고, 단지 방패가 전진 배치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요미우리신문은 “중국, 북한, 러시아에 에워싸인 일본의 안보 환경이 전후 가장 긴박해졌다는 위기감이 있다”라며 “일본 정부가 반격능력 보유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억지력 향상이며,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한 뒤 미국과 협력해 역내에서 중국과 힘의 균형을 이루려 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반격능력은 실제로 어떨 때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있고, 이동식 발사차량(TEL)이 기지에서 나와서 미사일을 세웠을 경우 이것이 과연 일본을 겨냥한 것인지를 언제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실제로는 북한 미사일이 발사돼 어느 정도 날아가야 분석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영해에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 미사일이 일본 열도 위를 넘어 공해상에 떨어지는 일은 실제로 있었고 이때 경계 사이렌이 울리기도 한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면 일본의 대응은 달라질 것인가. 이렇게 되면 결국은 적의 의도와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기 위한 정보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집권 자민당과 방위성에서는 반격능력 보유 자체가 억지력을 강화한다는 데 중점을 둔다. 일본은 앞으로 미국에서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을 도입할 계획인데, 그 첫 단계로 2027년까지 순항 미사일 500발을 구매해서 조기 배치한다. 일본 이지스함은 1척에 최대 100발 정도를 실을 수 있고, 모두 8척을 보유하고 있다. 8척이 동시에 출동하는 일은 극히 드물겠지만 어쨌든 일본이 최대 800발의 순항 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주변국들이 일본을 쉽게 공격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 방위성의 시각이다. 하마다 야스카즈(浜田靖一) 방위상은 기자회견에서 “상대국의 전략, 전술적 계산을 복잡하게 해 일본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그만두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국의 군사기술이 고도화하면서 기존 미사일 방어체계만으로는 요격이 어려워져 요격과 반격을 결합한 통합 미사일 방어체제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무력 증강이 주변국을 자극할 것이 뻔하고, 자칫 반격능력이 선제공격 능력과 동일시 되어 역내 안보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 정부는 방위 전략 변화에 따른 자금 조달 계획도 함께 제시했다. 앞으로 5년간(2023~2027 회계연도) 방위비 총액을 43조엔으로 명기했는데, 이는 현행 계획(2019∼2023)에 반영된 27조4700억엔보다 56.5% 늘어난 액수다. 연간 방위비는 매년 약 1조엔씩 늘려 5년 후인 2027년엔 올해(5조3687억엔)의 2배인 11조엔 안팎이 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인도, 독일, 영국을 추월해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의 방위비 지출 국가가 되고,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 예산은 2%로 늘어나게 된다. GDP 2%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수준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3일 각의(국무회의)에서 당장 내년(회계연도 2023년 4월 시작) 방위비를 올해보다 26% 늘어난 사상 최대인 약 6조8000억엔으로 편성했다. 전체 예산 증가율 6.3%보다 4배 이상 높은 증가율이다. 이와 별도로 세외 수입 등을 모은 ‘방위력 강화 기금’을 만들어 4조6000억엔을 계상하기도 했다. 경기 침체로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일본 정부가 국정의 방향과 무게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내년도 방위비에는 적의 미사일 기지 등을 공격하기 위한 원거리 타격 능력을 갖춘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구매 비용 2113억엔이 포함됐다. 또 육상자위대가 보유한 지상 발사형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사거리를 늘리고, 지상은 물론 함정과 전투기에서도 발사할 수 있는 개량형 미사일의 개발 및 양산에도 1270억엔을 투입한다. 음속의 5배 이상 속도로 변칙 궤도로 비행해 요격이 어려운 극초음속 미사일의 개발을 위한 585억엔도 반영했다. 이런 무기들이 모두 공격용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그동안 장거리 미사일뿐 아니라 항속거리가 긴 전투기나 수송기 등은 전수방위 범주에 들지 않는다며 보유를 자제해 왔지만 앞으로 이런 브레이크는 점차 제동력을 잃게 된 것이다.
일본의 이번 반격능력 보유 선언을 놓고 방위정책의 ‘역사적’ 전환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지만,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한,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2차대전 패전 이후 군대를 군대라 하지 못하고, 자위대의 존재마저 헌법에 새기지 못한 채 전쟁을 포기한 국가가 된 일본이 ‘정상국가’ 회귀를 위해 차근차근 발걸음을 떼오다 이번에 ‘빅 스텝’을 밟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는 2010년대 들어 미·중 간 대결의 본격화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고도화 등으로 동아시아 정세가 긴장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일본의 정책 변화는 3대 안보 문서로 불리는 국가안보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 정비계획에 담겼으며, 이번의 반격능력 보유도 3대 문서 개정으로 구체화 됐다.
일본의 방위력 강화는 각종 안보 관련 법제와 문건의 정비를 통해 무력 사용의 범위와 원칙을 확장해 나가면서 동시에 방위비 증액을 통한 실질적인 군사력 증강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대외정세의 변화가 본격화되던 시기인 2013년은 일본의 현재 안보정책이 자리 잡은 원년이라고 할 만하다. 3대 안보 문서 중 가장 기본이 되면서 방위정책의 장기적 방향을 제시하는 국가안보전략이 마련된 것이 이때였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설치된 것도 이 해였다. 이제 일본은 정상국가 등정에서 정상에 있는 개헌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는 일본의 반격능력 보유가 한국의 승인 없이 일본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의 한·일관계를 고려할 때 이 문제를 우리가 이슈화한다고 해서 일본이 크게 신경 쓸 것 같지는 않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은 한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는 일본이 상당 부분 맡아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미국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일본의 반격능력 보유를 공개적으로 환영해 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대립,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등으로 격동하는 세계정세를 타고 군사강국으로 나아가는 일본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 문제를 뿌리 깊은 반일 감정만으로 대처해서는 해답이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미니박스]
1. 일본 방위비 추이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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