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안성시의회 예산삭감은 '조자룡 헌 칼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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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강대웅 기자
입력 2023-0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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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묻지도 따지지도 마 식' 무차별 예산 삭감, 사상 초유 가용예산 16.3%, 392억원 삭감

  • 김보라 시장 공약예산 대거 포함, '주민 대다수 찬성 안성도시공사 설립 지연'

  • 당장 일자리 복지·예산 차질 불가피

김보라 안성시장이 지난해 12월 16일 시의회의 예산삭감과 관련해 긴급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안성시]

지난해 예산안 처리를 두고 경기도 내 일부 시·군 의회가 심한 내홍을 겪었다.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구성된 의회와 자치단체장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하면서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대립은 수 없는 파행도 불러왔다. 예산안 심의가 늦어졌고 행정사무 감사도 건성으로 치러졌다.
 
심지어 단체장 공약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하거나 반영하지 않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러면서 기 싸움으로까지 이어져 반목은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됐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새해가 됐지만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갈등을 빚는 지자체는 단체장이 교체되거나 의회 여야 의석수 변화가 많은 지역이 대부분이다.
 
그중 안성시가 특히 심했다. 그러면서 의회가 집행부 견제를 넘어 다수의 힘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안성시 의회 구성은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 5명 더불어민주당 소속 3명 등 모두 8명이다. 의원 구성이 민선 7기와 정반대 분포다. 반면 김보라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재선 시장이다.
 
그러다 보니 출범부터 갈등이 심상치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안성시민의 최대 숙원이라는 안성도시공사 설립 문제다. 김 시장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공약으로 내세웠고 민선 8기 시장 취임 후 도시공사 설립 및 운영조례 안을 시의회에 제출했으나 의회는 위원회에 상정조차 안 했다. 그리고 지난 회기에 부결된 안건이라는 이유를 댔다. 곧 갈등은 표면화됐다.
 
이런 앙금이 가시기도 전에 지난해 12월 중순 의회는 올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392억원이라는 지역 역사상 최대규모의 예산을 삭감했다. (아주경제 2022년 12월 16일 보도) 이는 안성시 가용예산 2400억 중 16.3%에 해당하는 예산으로 사상 초유였다. 그렇다고 삭감된 예산이 선심성 행정 예산도 아니다. 안성시민들에게 절대 필요한 첨단산업·교통·일자리·복지예산들이다.
 
세부 예산안을 보면 더 기가 막힌다. △소규모 응급 복구사업 △청소년 진로체험·청년취업 및 주거지원 △문화 공연 및 어르신 생활체육 운영 △안성시 지속가능발전 기본전략 수립 △기간제근로자 인건비 △진사리 주거환경 개선 및 학생 아침 간식 사업 △교량 유지보수·노후 가로등 교체 사업 등도 포함되어 있어서다.

특히 시민과의 소통 수단인 읍면동 정책공감 토크 및 안성 소식지 제작 예산이 삭감됐고 300억원 규모의 농촌협약사업 관련 인건비와 매년 개최된 종목별 체육대회가 안성시장기라는 타이틀이 붙었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됐다.
 
하지만 이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더욱 이해 못 할 부분은 민선 8기 공약사업 삭감으로는 반도체 산업 육성과 아동친화도시 구축, 농업종합행정타운 조성사업 등이 포함돼 여성과 청년, 농업인 등 각계각층을 위한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됐다는 사실이다. 또 시민 78%나 찬성하고 있는 안성도시공사 설립 조례안, 공영마을버스 사업 관련 조례안 등 다수의 조례안을 미상정 혹은 부결시켰다.
 
의회의 예산안 삭감이 결정되자 김보라 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브리핑을 통해 강력히 반발하고 시민 호소에 나섰다. "누구를 위한 심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 든다"며 시의회의 집행부 발목잡기와 무분별한 예산삭감에 분노와 서운함을 표시하는 등 의회를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김 시장이 예산삭감의 부당성을 주장한 데 이어 다른 당 같은 의원들도 다수당인 국민의힘의 횡포라는 주장을 폈다.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치단체와 의회 간 필요한 예산에 대한 시각은 다를 수 있다. 시의회는 집행부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시민으로부터 위임받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에 정치적 노선이 다르다고 또는 감정의 골이 깊다고 서로를 무시했다는 사감(私感)이 깔려 있다면 공인으로서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예산은 주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엄중한 사안이다. 시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천명한 의원들로선 취할 태도도 아니다.
 
물론 김보라 시장의 예산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무분별한 선심성 예산이기 때문에 삭감한 것인데 시장이 이를 비난하는 것은 의회 기능에 대한 도전이라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예산삭감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와는 거리가 멀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안성시는 이 같은 사업을 위해 사례 조사,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사전 행정절차 진행 등 세밀한 과정을 거쳐 예산안을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이상 소요된 사업도 부지기수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제출된 사업이지만 의회에서조차 충분한 논의나 명확한 사유 없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예산이 삭감됐다는 것은 의회의 또 다른 의도를 엿보기에 충분하다. 시의회 안팎에서 시민이 위임한 권한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는 비아냥도 그래서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특정 의원들의 불편한 심기가 예산 책정과 정책 찬반의 기준이 돼선 곤란하다. 이는 시민의 대리자로 집행부 견제 기능에 충실하겠다는 선의마저 오염될 수 있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지방 정치인들은 흔히 소신을 자주 앞세운다. 하지만 소신은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믿음이 바탕이 돼 이루어져야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소속당의 지시만으로 펼치는 소신은 지방정치에서 그리 필요치 않다, 지방정치는 지역발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의회는 대의제다. 지역주민의 뜻을 대신해서 행사하라는 자리다. 한데도 사업의 지역 이익을 따지기도 전에 노선을 달리하는 시장의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소요 예산을 삭감하는 건 주민을 배신하는 일이다. 주민에게 먼저 물어야 함이 당연하다는 의미도 된다.
 
예산을 둘러싼 지자체와 의회의 감정 섞인 싸움은 결국 안성 시민의 손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예산 심의를 통해 집행부를 견제하는 것은 의회의 고유 역할이다. 하지만 견제의 목적은 균형을 통한 원만한 정치에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으로선 추경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시민들의 눈과 귀가 안성시와 안성시의회에 쏠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대립보다는 상생과 화합으로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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