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새해 첫 주말인 7일 강원 화천군의 화천산천어축제가 시작되자 장기간 이어진 동장군의 기세도 누그러졌다.
산천어축제장 얼음 낚시터는 미세먼지로 하늘이 약간 흐렸지만, 손맛을 느끼려는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관광객들은 얼음낚시를 위해 주최 측에서 축구장 24배 크기에 미리 뚫어 놓은 수천 개의 얼음 구멍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이때 “잡았다”하고 낚싯대를 끌어 올리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면서 펄떡이는 산천어가 올라온다. 사람들은 자신이 잡은 듯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어떤 관광객은 산천어가 올라온 주위로 얼른 자리를 옮기는 순발력(?)도 보였다.
이들은 저마다의 자세로 연신 팔을 움직이며 산천어를 낚는데 몰두했다. 낚시 의자에 앉아 천천히 낚싯대를 움직이거나 아예 얼음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구멍에 낚싯대를 넣고 숨을 죽이며 산천어를 기다리는 모습은 너무도 진지했다. 한 아이는 답답했는지 고개를 숙여 얼음 구멍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3년 만에 다시 열린 축제 분위기는 여기저기서 산천어를 낚아채는 손맛에 더욱 달아올랐다. 인천 부평구에서 온 박소희 씨는 “남편은 산천어축제가 두 번째고 나는 처음인데 내가 남편보다 한 마리 더 잡았다”며 비닐봉지에 담긴 산천어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세계인의 겨울 축제답게 축제장에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았다. 이들은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옷 안에 얼음 조각을 넣으며 마냥 즐겁게 웃었다. 외국인 얼음 낚시터에서 산천어를 들고 웃거나 축제장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도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다.
서울 서초구에서 왔다는 정찬호 씨는 “산천어 손맛이 좋아서 매년 왔는데 그동안 축제가 열리지 않아 아쉬웠다”며 “오랜만에 축제가 열려서 그런지 사람도 많은 것 같고 시설도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얼음 낚시터 바로 옆 눈썰매장과 얼음썰매장에서는 두꺼운 점퍼에 목도리, 귀마개에 털모자까지 중무장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이들은 추위에 얼굴은 빨갛지만 썰매 타는 재미에 푹 빠진 덕인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눈썰매장 안전요원들이 눈썰매의 속도에 놀란 아이에게 얼른 달려가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경기 포천시의 김수현 어린이는 “부모님과 왔는데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너무 무서워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형(안전요원)이 괜찮냐고 물어봐서 마음이 좋았다”고 귀띔하며 눈썰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음썰매장은 아이들의 천국이 아니라 어른들의 천국이었다. 얼음썰매장에서는 부모들이 아이가 탄 썰매를 끌어주는 장면이 아니었다. 루돌프가 된 아이들은 힘들지도 않은지 엄마 또는 아빠가 탄 썰매를 끌어준다. 부모도 미안한지 내려서 아이를 태우고 밀어주고 끌어주며 옛 추억을 되새기는 것 같다.
서울 강동구에서 온 장용철 씨는 “우리 아들이 10살인데 내가 그 나이 때 집 근처 한강 부근에서 아버지가 썰매를 태워줬던 기억이 난다”며 “지금 아들과 썰매를 타니까 어렸을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얼음판에 한참을 즐기다 보면 얼은 몸을 녹이는데 어묵만 한 메뉴도 없다. 어묵은 추운 겨울이 되면 꼭 생각나는 길거리 대표 음식이기도 하다. 특히 화천군은 축제 기간 선보일 산천어를 이용한 회, 회덮밥, 매운탕, 해물전, 어묵탕 등 여러 메뉴를 개발했다. 이 중에 어묵탕을 먹기 위해 화천군 새마을지회에서 운영하는 음식 부스에 들렸는데 줄을 서야 했다.
한용 화천군 사내면 새마을협의회장은 “어묵은 추워야 제맛이다”라며 “축제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다른 메뉴도 많이 찾지만, 어묵이 인기가 제일 좋다”고 전했다.
산천어 맨손 잡기에 도전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유영하는 산천어를 잡기 위해서는 살을 에는 듯한 얼음물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 이 체험에 참여한 사람이 산천어를 잡자마자 산천어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성취도로 입가에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구경꾼들은 박수를 보내며 응원했고 이곳은 어느새 체험객 열기로 가득했다.
늦은 오후지만 실내 얼음 조각 광장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얼음 조각의 웅장함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화천읍 서화산 다목적 광장에 마련된 이 얼음 광장은 중국 하얼빈 빙등 전문가 그룹 26명이 망치와 정으로 거대한 얼음 조각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총면적 1,700㎡의 실내에 가로 120㎝, 세로 55㎝, 두께 25㎝의 각얼음 8500개가 동원됐다고 한다. 얼음 조각 1개의 무게는 135㎏에 달한다. 이러한 예술 공간에서 형형색색의 빛을 품은 얼음 조각들이 살아 숨 쉬는 같아 관람객들은 만족해했다.
충남 당진의 서지원씨는 “세계 최대의 실내빙등이라고 해서 궁금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고 축제에 오기를 잘했다”며 만족하면서도 “주차를 하는 데 너무 불편하다”고 아쉬워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관광객들이 선등거리로 몰렸다. 오후 6시가 되자 지역 군장병들이 선등거리 내에 설치된 무대에서 공연을 펼쳤다. 화천군은 이번 축제를 어느 해보다 화려해진 야간 페스티벌로 준비했다. 페스티벌의 테마는 ‘응답하라! 어게인 선등거리’로 매주 금, 토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진행한다.
선등거리 하늘에는 화천군민의 염원과 희망을 담은 2만5000여 개의 산천어가 강을 거슬러 힘차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족과 연인, 친구들은 화천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산천어등 아래에서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화천군은 산천어 축제 개막 첫날인 7일 오후 6시까지 약 12만9000명이 축제장을 찾았다고 8일 밝혔다. 13년 연속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은 화천산천어축제. 이름값을 하는 겨울 축제에 관광객들은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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