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상승과 설계 변경 등으로 공사비가 당초 계약 당시보다 증가하면서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오는 8월 입주를 앞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도 추가 공사비를 둘러싸고 난항을 겪는 모습이다. 공사비 증액에 대한 입장 차는 민간 정비사업뿐 아니라 공공발주도 마찬가지다.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래미안 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통합재건축)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최근 조합에 '공사비 증액 협상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으면 일반 분양 대금이 들어오는 통장의 사업비 인출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앞서 삼성물산은 지난해 8월 조합의 요구에 따라 단지 고급화를 위해 공사비를 추가 투입했다. 추가 공사비 규모는 1500억원 수준으로, 도급 계약서상 공사비 1조1277억원보다 10%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삼성물산은 공사비 증액과 관련해 한국부동산원에 검증해 재협상할 것을 당시 조합과 협의했지만, 조합 내분으로 조합장과 부조합장이 모두 공석이 되면서 조합이 한국부동산원의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을 신청하지 않는 등 반년 가까이 협상이 진척되지 않았다. 조합이 사업비를 통장에서 인출하려면 시공사 인감이 필요한데 삼성물산이 이를 막는 초강수를 둔 것은 협상에 속도를 내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사업 수주 이후 공사비가 늘어난 곳은 래미안원베일리만이 아니다. 지난달만 해도 공사비 증액을 골자로 '단일판매·공급계약 기재정정' 공시를 낸 시공능력평가 상위 30위권 건설사가 13개 업체, 52건에 달한다. KCC건설이 8건으로 가장 많았고, DL건설(7건), 금호건설·동부건설·삼성엔지니어링(각 5건),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삼성물산(각 4건)의 순이었다.
건설사들이 공사비를 증액한 배경에는 시멘트·철근·레미콘 등 원자재값 급등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공사에 투입되는 원자재·노무·장비원가 등 건설공사비지수는 최근 2년간 20%가량 올랐다. 주요 원자재인 시멘트도 지난 2021년 톤(t)당 7만8800원이었으나 지난해 2월 9만3000원, 11월 10만5000원 수준까지 인상됐다. 정부도 이러한 원자재 가격 급등을 반영해 지난해에만 기본형건축비를 3월 2.64%, 7월 1.53%, 9월 2.53% 인상했을 정도다. 기본형건축비는 택지비·가산비용을 제외하고 건축공사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으로 분양가 산정 기준이 되는데, 한 해에 세 차례나 인상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 반응이다.
공사비 증액으로 갈등을 겪는 사업장도 여럿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달 서울 강서구 방화6구역 재건축사업 공사비 34.8% 인상을 요구했지만 조합이 이를 거부하며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신반포4지구)’ 재건축 사업 시공을 맡은 GS건설은 최근 조합에 공사비 4700억원 증액과 공사 기간 10개월 연장을 요구했는데, 조합은 한국부동산원에 검증을 의뢰한 상태로 계약 사항 변경에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견 건설사 가운데는 공공기관이 발주한 시공사업에 대한 공사비 증액이 눈에 띈다. 도시정비사업에서 대형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주 경쟁력이 밀리는 중견 건설사의 경우, 비교적 사업 리스크가 낮고 경기 영향을 덜 받는 공공 공사 발주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다 보니 계약 금액이 낮아지고 결국 도중에 공사비를 증액하는 구조가 되기 쉽다는 분석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도급 공사에서 원자재 가격이 10% 오르면 건설사의 영업이익률은 약 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공공 공사는 국민 세금으로 진행되다 보니 공사비가 더 엄격하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며 "민간 주택정비사업 등에 비해 수익성이 많이 떨어지고, 사업 진행 도중 여러 차례 증액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은데 발주처와 입장차가 안 좁혀져 사업 추진이 더딘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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