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가천대에 따르면, 회고록은 일제 강점기, 중농 가정 둘째 딸로 태어나 6·25 전쟁 중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 미국 유학 후 한국 최초 여의사 의료법인을 설립해 수도권 4위 규모에 해당하는 가천대를 설립하고, 의료·교육·문화·봉사·언론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공익재단인 ‘가천길재단’을 만든 이 총장의 한 세기를 담고 있다.
이 총장은 이 시대의 특별한 현역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초등학교를 일본어책으로 배운 세대로, 매우 희귀한(?) 현역 대학 총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상은 구닥다리가 아니다. 그는 대학의 미래, 급변하는 인공지능 세상, 나아가 21세기 문명에 대해 새로운 통찰과 아이디어를 발신(發信)한다.
1978년 이 총장은 국내 여성의사로서는 최초로 의료법인을 설립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맥락이 숨어 있을까. 이에 대해 이 총장은 “의료 법인이 아니면 병원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고 한 단계 낮은 의원(醫院)이라는 이름을 써야 했다"며, "무엇보다 의사들이 의료 법인 설립을 기피했던 이유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인 서정주가 ‘자화상’에서 설파한 것처럼 사람은 ‘읽고’, ‘읽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 세대는 이 총장으로부터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우선 ‘애국심’이 가장 쉽게 읽힌다. ‘애국’은 이길여 총장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이 총장은 "인생의 각 단계에서 최고가 되는 꿈을 꾸며 살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밤잠을 잊고 노력했다"고 지난날을 회고한다.
그는 성공 비결 중의 하나로 잘 웃는 것을 꼽는다. 웃음은 거짓말을 못하고, 진정으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활짝 웃으며 다가가면 상대방도 좋아하게 돼 있다는 게 바로 그 이유다.
이 총장은 "지금껏 만난 환자가 그랬고, 의료 또는 교육 관계자, 기자들이 그랬다"며,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분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걸 제가 느끼겠더라고"덧붙였다.
한편, 가천대 총장으로 재직중인 이 총장은 현재 가천의대 길병원, 가천문화재단, 가천박물관,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가천미추홀봉사단 등에 이르기까지, 의료·교육·문화·봉사·봉사론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공익재단인 ‘가천길재단’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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