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갑질을 한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200억원의 상생기금 조성에 나선 게 신호탄이다. 구글과 카카오 등 다른 빅테크(거대 정보통신 기업)들도 조만간 경쟁당국의 사정권에 들 공산이 크다.
공정위는 9일 브로드컴과 협의를 거쳐 마련한 잠정 동의의결안을 공개하면서 의견 수렴 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동의의결은 공정위 조사·심의를 받는 사업자가 스스로 피해 구제 등의 시정 방안을 제시하면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지난해 8월 말 브로드컴의 신청을 받아들여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하고, 130여 일 동안 구체적인 시정 방안을 협의해 왔다.
브로드컴은 반도체 분야 상생기금 200억원을 조성한 뒤 향후 5년간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77억원), 중소 팹리스 창업·성장 지원(123억원)에 활용키로 했다. 또 삼성전자가 구매한 부품에 대한 기술지원·품질보증 등을 3년간 지원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10일부터 다음 달 18일까지 삼성전자 등 이해관계인과 관계부처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를 반영해 최종 동의의결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와의 장기계약 기간 중 브로드컴의 관련 매출액은 7억 달러를 상회한다. 달러당 1200원으로 계산하면 약 8400억원에 달한다. 상생기금 규모가 기대 이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심재식 공정위 제조업감시과장은 "브로드컴의 거래상지위남용 행위에 대한 법적 처분 시 최대 과징금은 175억원"이라며 "이번 상생기금은 공정위가 최대한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을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브로드컴 건은 시작에 불과하다. 공정위는 올해 반도체와 플랫폼 산업 전반에 걸쳐 경쟁 제약 요인 점검에 나선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반도체 산업에서는 경쟁자를 배제하기 위한 글로벌 빅테크들의 시도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며 "2023년에는 밸류체인(가치사슬), 전후방 산업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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