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내실화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5천달러이니 양적으로는 선진국을 통과한 지 한참 되었지만 제도와 관행에서는 선진국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현 정부 들어 오히려 후진화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고 있다. 주요 선진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경로가 노사의 세력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의 ‘탈상품화’와 복지국가로 요약된다면 한국 자본주의는 갈 길이 더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이미 각인된 노사관계는 협력적 동반자관계에는 근접하지도 못하고 ‘대결적이고 억압적인’ 관계로 추락하고 있다. 제도와 관행의 후진화는 결국 혁신과 성장이라는 양적 지표도 악화시킬 우려마저 있다. 이러한 후퇴에 가장 큰 책임은 제도를 설계할 권한이 있는 정부이다. 정부는 “기업의 전략부서라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더욱 우려스러운 이유이다.
자본주의 선진화의 가장 뚜렷한 지표는 노동력의 ‘탈상품화’이다. 대등한 협상관계를 기반으로 노동이 수급변동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해고의 위험에서 해방되어 고용안정을 달성하고 협상을 통한 적정임금은 물론 인간다운 안전한 노동환경 역시 보장받음은 물론 노동시장 바깥에서도 특히 노후 생활비가 보장되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탈상품화에 진입해보지도 못하고 노동자는 고용불안과 산업현장의 안전불감증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다. 갈수록 증가하는 특수고용직은 노동자이면서 노동자가 아닌 불안정한 상태에서 장래 ‘워라밸’에 대한 희망을 가꾸기가 여전히 힘들고 ‘돈을 더 벌려거든 일을 더 많이 하라’는 강압적인 훈계만을 듣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소득이 줄어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일면의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 연장근무 수당을 정상화하고 시간당 소득을 높이면 소득을 유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 자본주의가 새 정부 들어 노동배제적 관행에서 노동억압적 관행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노조를 기득권세력으로 규정하고 노동자의 저항을 사법부의 최종판단을 기다리지도 않고 정부가 나서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무너뜨리고 있다. 헌법 제33조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은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에 무력화되기 직전이다. 야당은 ‘노란봉투법’을 입법 예고하고 있지만 노동시장의 불안정화를 지향하는 현 정부의 기세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은 뻔하다. 정부가 위촉한 ‘미래노동시장위원회’의 개혁권고안에는 미래는 없고 과거만이 한껏 들어있다. 노사간 협상력의 차이가 확연한 현실을 도외시한 채 내세워지는 ‘노동시간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미사여구가 가리고 있는 실질적으로 강요된 선택,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의 형식적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현실에 대한 직시는 보이지 않는다. 권고안에 포함된 노동시간의 연장이 실행된다면 그 길이와 상관없이 2021년 ‘52시간노동’에 들떠 그리던 ‘워라밸’은 일장춘몽이 될 것이다. 미래노동시장위원회에게 노동시장은 철저하게 대상화되어 내 가족과 후손에게 당당하게 물려줄 수 있는 미래노동시장을 설계하려는 의지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미래노동시장위원회는 MZ세대를 앞세워 연공형 임금제의 불공정을 비판하고 있다. 초점은 청년층과 중년층 사이의 임금격차를 완화하는 것인데 결국 상향평준화가 될지 하향평준화가 될지가 관건이다. 지금까지 임금체계 개편은 임금상승추세를 누르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포괄임금제는 연장근무수당을 축소시키거나 폐지하여 ‘공짜노동’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탄생시켰고 최저임금 산입범위의 확대는 2024년부터 임금총액의 상승에 모래주머니를 달 것이다. 연공형 임금체계의 개편 역시 청장년 세대 전체를 본다면 임금상승을 아래에서 잡아당기는 힘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의 핵심원인의 하나가 실질임금의 감소라는 공인된 사실은 한국경제에게 임금삭감과 노동시간 연장을 자제할 것을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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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국가가 노동자의 편을 든 적도 없었지만 노동시간 연장과 임금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도 드물었다. 1980년대 이후 임금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임금인상의 속도조절이지 임금감축은 아니다. 최근 대통령이 포고한 직무급제의 도입은 총량적으로 임금감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에서 퇴행적이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더 긴 시간 일 하려는 노동자를 위해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한편, 직무급제 도입으로 임금감축을 시도한다면 노동자에게는 악순환일 뿐이다. 여기에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세제지원을 하겠다는 ‘인센티브’는 도입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간접적인 제재를 통해 결국 노동자에게 압박을 가하는 셈이다. 1351년 최고임금제를 도입하면서 노사 쌍벌제로, 하지만 노동자에게 더 큰 벌로 다스렸던 영국 에드워드 3세의 ‘노동자법’을 연상시키는 시도이다.
‘베이비부머’의 퇴직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회문제로 부각된 노인빈곤 문제는 노인 스스로 재취업이라는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가는 중에 정부가 ‘정년연장’으로 뒷정리하려는 형국에 있다. 정부가 정년연장을 공식화하기 전부터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비공식적으로 70세가 넘어서도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이나 65세 이상 일하는 노인의 비율이 각각 40%가량이 되는 현상에 미국 뉴욕타임즈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년연장은 고령화 시대에서 노인빈곤 문제를 일부 해결함과 아울러 장차 저출산으로 부족해질 노동력을 보충하는 비책이자 저임금 일자리를 창출하는 묘책이 되고 있다. 장수의 비결이 ‘늙어서도 일하기’라는 말로 위안을 삼기에는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 노인일자리는 청소, 경비 등 최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노후소득뿐만 아니라 노인세대의 보상심리까지 배려하는 연금정책과 일자리대책을 연계한 생활정책패키지가 아쉬울 뿐이다.
경제발전에 역행하는 정치는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정부정책이 법인세 인하를 포함하여 단기적인 기업이익에 매몰되어 국민 다수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혁신역량과 미래 경쟁력을 잠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노사가 갈등 속에서도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서 쌍방에 이익이 되는 타협점을 찾아갈 때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보장될 수 있다. 노동시간 연장과 임금 삭감이 없으면 존속할 수 없는 좀비기업은 존재이유를 이미 상실했다. 경제발전은 가망 없는 좀비기업을 정리하면서 생산성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규모의 경제를 저절로 실현하는 중국을 이웃으로 두고 가격경쟁, 임금경쟁으로 맞서려는 발상은 애당초 무모하다. 좀비기업의 양산이 아니라 노동이 참여하는 혁신과 삶의 질을 높이는 성장에 기여할 노동시장 개혁이 절실하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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