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네트워크 환경 조성을 위해 전체 인터넷 트래픽 가운데 5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기업이 망 투자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유럽연합(EU)과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반면 미국 정부와 빅테크는 망중립성을 다시 강조하며 맞서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와 외신 등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구글·넷플릭스 등 미국 빅테크에 망사용료를 부과하기 위한 입법 절차에 착수했다.
집행위는 입법 절차에 앞서 빅테크와 유럽 이통사에 망 투자 방안과 향후 진행 계획, 클라우드 인프라 전환에 대한 입장과 이를 위해 필요한 투자 항목 등을 제출하도록 요구할 방침이다. 특히 한국·호주 등 망사용료를 두고 빅테크와 분쟁 중인 국가의 규제당국 반응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EU 집행위의 핵심 정책으로 떠오른 빅테크 대상 망사용료 부과는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EU 주요 국가 요청으로 관련법 제정에 속도가 붙고 있다. 빅테크의 과도한 플랫폼 트래픽 점유로 EU 전체 인터넷망에 부담이 커지고 있고 후발 플랫폼 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커뮤니케이션청(오프컴)도 망중립성 원칙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지난해 10월 내비쳤다. 빅테크의 플랫폼 독점과 트래픽 증가, 5G 출시 등으로 인해 인터넷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만큼 기존 망중립성이 과연 모든 이용자 이익에 부합하는지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EU·영국 기조에 맞춰 올해 2월 열리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 행사에선 빅테크 대상 망사용료 부과가 최대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SK텔레콤(SKT)·KT 등이 속해 있는 GSMA는 MWC 2023 첫째 키노트 주제로 '공정한 미래를 위한 비전'을 선정하며 빅테크와 이통사 간 공정한 망 투자비용 분담을 요구할 것을 예고했다.
GSMA는 지난해 MWC 2022에서도 콘텐츠 업체가 정부 주도 펀드에 참여하는 형태로 인터넷사업자의 망 구축·관리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의결한 바 있다.
유럽 1위 이통사인 도이체텔레콤은 이러한 EU와 GSMA 행보를 두고 망 사용에 따른 '공정한 분담'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유럽에선 상위 6개 콘텐츠 사업자가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호세 페르난데스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은 지난 9~11일 방한 기간에 구글·넷플릭스 등 한국 내 사업자들을 만나 망중립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법적 분쟁으로 지난해 국회에서 빅테크 대상 망 투자비용 분담 관련 논의가 진행되면서 사업 수익성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자국 기업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
페르난데스 차관은 트위터를 통해 "넷플릭스·모션픽처스·국제음반산업협회(IFPI) 등 미국 콘텐츠 공급사와 만나 그들이 한국과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훌륭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지 배웠다"며 "망중립성은 우리 모두가 콘텐츠를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IRA에 이어 다시 한번 '미국 이익 우선'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빅테크와 미국 이통사도 이러한 미국 정부 기조에 맞춘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일례로 넷플릭스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미국 이통사인 버라이즌, AT&T, 컴캐스트, 타임워너케이블에 망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빅테크 측에서 망사용료를 받고 있는 버라이즌 등 미국 이통사는 지난해 GSMA 보고서 의결을 반대하기도 했다.
지난해 7건에 달하는 망사용료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전 세계 망사용료 논의를 주도한 한국은 현재 관련 논의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국정감사에서도 망사용료법을 두고 의원들 간 의견이 엇갈리며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EU·영국이 망사용료 문제를 화두로 꺼냄에 따라 미국 외 이통사의 공동 대응이 공개되는 MWC 2023 이후 국회에서도 망사용료법 관련 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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