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 세계적 월동지 '순천만'
흑두루미는 러시아 시베리아와 중국 동북부에서 여름철에 번식하다 추운 겨울이 되면 남쪽으로 내려온다. 월동지로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일본 가고시마현 북서부에 있는 이즈미시다. 순천만은 과거 이즈미로 가는 도중 잠시 쉬어가는 경유지였지만 지금은 아예 이곳에만 머무르는 흑두루미가 많다.
1999년 80마리에 머물던 월동 흑두루미 수는 2014년(1005마리) 1000마리를, 2017년( 2176마리)엔 2000마리를 넘어섰다. 2020년(3132마리)과 2021년(3470마리)엔 3000마리 이상이 순천만을 찾았다. 순천시 순천만보전과 관계자는 "매년 3000마리 이상이 순천만에서 겨울을 보낸다"고 했다.
여기에 이즈미로 향하거나 시베리아로 돌아가기 전 중간 기착지로 활용하는 흑두루미만 5000마리 넘는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분류하는 흑두루미는 전 세계적으로 1만8000마리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40% 이상이 해마다 순천만을 찾는 것이다.
먹이 걱정도 덜어주기 위해 전봇대를 없앤 자리엔 62㏊ 규모로 대대뜰 희망농업단지를 조성하고, 여기서 재배한 벼는 수확하지 않고 남겨뒀다. 농사는 친환경농법으로 짓도록 지원했다. 군데군데 볏짚을 깔아 겨울에도 벌레 유충이 자라게 했다.
노관규 시장은 "일본 이즈미에서 겨울을 나는 흑두루미가 전봇대 전선에 걸려 죽는 사례가 많아 순천만 일대 전봇대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며 "주변 농민들이 이해하고 지지해준 덕에 사업을 시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흑두루미뿐만이 아니다. 관광객도 앞다퉈 순천을 찾았다. 순천시에 따르면 2011년 426만명 수준이던 관광객 수는 2019년 1017만명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에도 628만명 넘는 외지인이 순천을 다녀갔다.
"집단폐사 위험 낮춘다"···서식지 확대 추진
이번 겨울 이즈미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크게 유행했다.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도 이를 피하지 못했다. 매일 수십 마리가 폐사했다. 월동을 시작하는 지난해 11월 초 1만3000마리로 집계됐던 이즈미 지역 흑두루미 수는 같은 달 19일 7000~8000마리로 크게 줄었다. 국제두루미재단(ICF)에 따르면 이 사태로 흑두루미를 비롯한 겨울철새 1000여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반대로 순천만엔 흑두루미가 몰려들었다. 도래 시기가 지난 지난해 11월 18일 이후 6000마리 넘는 흑두루미가 관찰됐다. 같은 달 21일엔 9841마리가 확인됐다. 사상 최대 규모다. 생존을 위해 흑두루미 수천 마리가 바다를 건너 온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순천시 관계자는 "일본에 도착한 일부가 다시 북상해 우리나라로 역유입된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이즈미 지역 AI 유행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순천시는 최근 수용 공간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흑두루미 멸종을 막고 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것이다. 이번처럼 갑자기 많은 흑두루미가 찾아와도 분산 수용이 가능해져 AI에 따른 집단 폐사 위험을 줄일 수 있어서다. 스파이크 밀링턴 국제두루미재단 부회장도 "AI 피해를 최소화할 열쇠는 새들을 분산시키는 것"이라며 "AI가 쉽게 전파되지 못하도록 밀집을 방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시는 213억원을 들여 대대뜰 희망농업단지 옆에 있는 마을인 안풍동까지로 보호지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곳에 109㏊로 규모 인안뜰 희망농업단지를 만들어 대대뜰처럼 흑두루미 월동을 지원한다. 기존에 미나리를 키우던 비닐하우스들을 없애고 전봇대 161개를 제거한 뒤 전선 지중화에 나선다. 사업은 내년부터 2년간 추진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순천만 흑두루미 서식지는 지금보다 3배 가까이 커진다.
흑두루미 국내 월동지인 강원 철원군과 충남 서산시, 전남 여수시·광양시·고흥군·보성군과 손잡고 '한반도(남해안) 흑두루미 벨트' 구축도 추진한다. 이 역시 서식지 밀집을 막기 위한 행보다. 지난 12일엔 이들 시·군과 업무협약도 맺었다.
노 시장은 "흑두루미 서식지를 넓히면 인간 생활환경도 좋아진다"면서 "지방자치단체 힘만으론 서식지 확대가 어려운 만큼 정부도 대대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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