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업계에 따르면 1년 전 공정위가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신세계·CJ·두산·태광 등 주요 대기업 그룹과 이에 속한 IT서비스 계열사 70여곳을 상대로 한 IT서비스 일감 개방 정책은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과거부터 대기업은 시스템통합(SI) 분야 사업을 외부 협력사에 개방해 왔고, 이와 관련해 공정위가 추가로 기여한 바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공정위는 지난 2022년 1월 ‘IT서비스 분야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고 이 자리에서 “대기업집단의 IT서비스 일감이 독립·중소 비계열 회사에 경쟁 원리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개방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만든 ‘IT서비스 일감 개방 자율준수기준’을 제시하고 “일감 개방에 적극 동참하는 기업에 ‘공정거래 협약 이행평가’ 시 가점 부여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당시 공정위는 이 기준을 통해 그룹의 발주기업이 단지 자기 계열회사라는 이유로 ‘거래 상대방(IT서비스 사업 수행사)’을 결정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선정하라’고 요구했다. 효율성·보안성·긴급성이 요구되는 사업에는 종전대로 내부거래를 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해당 IT서비스 사업 발주목적, 일반적인 거래구조, 수행가능한 기업 수 등을 따져 그 조건에 맞는 기업과 경쟁입찰·수의계약을 진행하라는 것이었다.
◆IT서비스 업계 “규제 프레임으로 시작한 공정위 일감 개방, 예견된 실패”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공정위 관할인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해당하는 대기업은 원래부터 중소·중견 규모 협력사를 두고, 많은 SI 사업을 공개입찰 방식으로 외부에 개방하는 형태로 IT서비스 일감 개방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정위가 (사후에) 마련한 IT서비스 일감 개방 자율준수기준이 이에 대한 계기로 작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사실 이 기준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 부회장은 “10여년 전 이명박 정부(2008년 2월~2013년 2월) 당시 이익률이 낮은 공공 SI 사업에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IT서비스 회사의 참여가 원칙적으로 제한돼 오히려 이들의 사업 리스크가 줄고 재무적으로 견실해졌다”며 “그때 이후 골목상권 보호와 대기업 이익 공유제, 대기업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징벌적 규제 등으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이 논의되는데 SI까지 그런 업종으로 보는 건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1년 전 IT서비스 분야에 일감 개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배경으로 2018~2020년 대기업집단 IT서비스 기업의 내부거래 비중이 60%가량으로 모든 산업 평균(12%) 대비 매우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그간 합리적인 비교·분석 없이 계열 IT서비스 기업에 편중하는 거래 관행과 높은 재하도급 비중 등이 산업 발전은 물론 역량 있는 독립·전문 IT서비스 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IT서비스 업계는 이같은 공정위 판단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크다고 봤지만, 토론으로 이를 반박할 만한 이유나 근거를 공정위가 따로 제시한 적은 없다. 공정위가 IT서비스 일감 개방 자율준수 기준을 확산하겠다고 한 이래로 기존 판단에 대해 설득력을 높일 만한 근거를 확충한 것도 아니다. 왜인지 공정위는 오히려 이 정책과 관련해 4년 전 사실상 유일한 근거로 발간된 정책 연구 용역 보고서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 일감개방 근거 연구 보고서 '비공개' 기간 연장…업계는 아니라는데 '영업비밀' 주장
공정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한 문의에 “해당 보고서는 작년에 기관의 정보공개심의회 판단에 따라 2024년 10월 31일까지 비공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면서 “이 보고서는 (조사 대상) 기업의 거래처, 계약 형태, 하청 구조 등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영업상 정보가 포함돼 생산 당시 비공개 정보로 분류됐는데, 이는 정보공개법상 관련 규정에 따라 (비공개 시효 만료 시기가 도래하면) 2년 단위로 비공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공정위는 2019년 3월 이 연구용역 발주 당시 ‘과업지시서’를 통해 “국내 대기업집단 계열·비계열사 간 계약방식(경쟁입찰·수의계약) 및 계약내용(계약금액·대가산정방식), 내부시장 형성 경위, 하도급 여부(수급자·하도급금액) 등을 포함한 국내외 SI 업종 현황 파악”과 이 분야 “내부시장의 타당성 분석 검증”을 의뢰했다. 보고서 발간 후 3~4년 이상이 지난 현재 외부에 공개됐을 때 개별 기업에 심각한 손해가 발생할 만한 내용은 없다.
개별 기업의 미공개 영업상 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공개할 수 없다는 공정위의 설명을 놓고 업계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채 부회장은 “기업의 영업비밀이 누설될 수 있다면 비공개 분류되는 게 맞지만, 공정위 연구용역 보고서 분석 대상인 대기업의 IT서비스 거래 주체와 기업 별 금액 등 현황은 금융감독원 공시 의무사항으로 이미 모두 공개된 자료”라며 “세금을 쓴 정책 연구는 웬만하면 공개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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